한국침략의 원흉으로 배정자를 양녀 겸 애첩으로 데리고 놀았던 이토 히로부미(마차 왼쪽에 앉은 사람). 사진은 그가 '을사조약' 체결 직후인 1905년 11월 29일 일본정부의 칙사로 경성역(현 서울역)에 도착해 마차에 오른 모습이다. 그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당시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육군대장)으로 나중에 제2대 조선총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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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침략의 원흉으로 배정자를 양녀 겸 애첩으로 데리고 놀았던 이토 히로부미(마차 왼쪽에 앉은 사람). 사진은 그가 '을사조약' 체결 직후인 1905년 11월 29일 일본정부의 칙사로 경성역(현 서울역)에 도착해 마차에 오른 모습이다. 그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당시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육군대장)으로 나중에 제2대 조선총독을 지냈다.
한국침략의 원흉으로 배정자를 양녀 겸 애첩으로 데리고 놀았던 이토 히로부미(마차 왼쪽에 앉은 사람). 사진은 그가 '을사조약' 체결 직후인 1905년 11월 29일 일본정부의 칙사로 경성역(현 서울역)에 도착해 마차에 오른 모습이다. 그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당시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육군대장)으로 나중에 제2대 조선총독을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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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침략의 원흉으로 배정자를 양녀 겸 애첩으로 데리고 놀았던 이토 히로부미(마차 왼쪽에 앉은 사람). 사진은 그가 '을사조약' 체결 직후인 1905년 11월 29일 일본정부의 칙사로 경성역(현 서울역)에 도착해 마차에 오른 모습이다. 그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당시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육군대장)으로 나중에 제2대 조선총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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