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 삶는 양에 따라 집안 손 크기도 짐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남도는 장꽝(장독대)에 명절이나 대사 한번 치르면 꼬막 껍데기 즐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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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삶는 양에 따라 집안 손 크기도 짐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남도는 장꽝(장독대)에 명절이나 대사 한번 치르면 꼬막 껍데기 즐비했습니다.
꼬막 삶는 양에 따라 집안 손 크기도 짐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남도는 장꽝(장독대)에 명절이나 대사 한번 치르면 꼬막 껍데기 즐비했습니다. ⓒ김규환 200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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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삶는 양에 따라 집안 손 크기도 짐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남도는 장꽝(장독대)에 명절이나 대사 한번 치르면 꼬막 껍데기 즐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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