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석이 처음 발견되어 보고된 조선총독부 조사 보고서에서 진흥왕척경비 또는 진흥왕순수관경비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시대 금서룡은 '군신 회합이 이루어지긴 했더라도 명칭은 진흥왕순수관경비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병도는 '순수비라는 명칭이 옳다.'고 하였다. 약간의 성격을 달리하였지만 순수비 또는 순수관경비로 보고 있다. 일제시대 보고서에서 사용된 척경비란 용어를 오늘날까지 '공식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는 만옥정공원 언덕배기에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다. ⓒ박종국 2008.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