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분군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도굴되었거나, 주변이 경작지로 변해 성격 파악이 어렵다. 송현동 고분군을 비롯한 창녕지방 고분군은 약탈적인 발굴과 도굴을 겪었다. 예를 들면 1918년 엄청난 양의 유물에 대한 도굴행위를 시작으로 권력과 결탁한 도굴행위가 대낮에도 공공연하게 행하여졌으며, 도굴한 유물의 대부분은 상인의 손을 거쳐 일본에 유출되었다. 송현동고분군은 봉토는 대형분이고 세 멱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뚜껑돌을 여러 개 놓은위 막지 않은 벽을 통해 안치하고 나머지 벽을 쌓아 막는 방법인 횡구식 석실분으로 무덤의 혀태와 구조 출토 유물들은 교동 고분군과 비슷하다.
ⓒ박종국 2008.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