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 가창면과 경북 청도군 사이를 넘는 고개를 팔조령이라 부른다. 여덟 명 이상이 모여서 넘어가야 산적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고개의 대구 쪽 산비탈에 석주사가 있다. 조선 시대의 팔조령 고갯길은 석주사 천불전 뒤에서 고개마루로 이어졌다. 지금의 자동차 도로와는 다르다.팔조령 터널과 구도로가 나눠지는 지점의 조금 위쪽에 나 있는 길로 들어서면 석주사가 나온다. 물론 길 입구에 석주사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찾기는 쉽다. 임진왜란 당시 팔조령을 넘는 고개길은 이 절 천불전(사진에서 보는 천왕문 오른쪽 뒤편 법당) 뒤쪽에서 북봉대(팔조령 봉수대)로 나 있었다. 그런데 이 길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좁은 산길로 여겨지겠지만 조선시대의 '경부고속도로'인 영남대로의 일부였다. 일본군이 임진왜란 때 이 고개를 넘어 대구로 진격한 것도 이 길이 가장 넓은 대로였기 때문이다. ⓒ정만진 201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