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은 대구 지역은 물론 경상도 일원의 의병들이 모여 전체 전략을 논의한 곳이었다. 전쟁 중 세 차례 의병장 모임이 있었는데 이를 "팔공산 회맹"이라 한다. 대구 의병들은 팔공산 부인사(사진)에 의병소(의병 본부)를 설치하여 산으로 피란온 대구 부민들을 보호하였다. 1592년 내내 일본군은 팔공산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이눌은 경주 의병장이지만 팔공산 아래 전투에 참전했고, 그때 부상을 입어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만진 2017.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