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맨 왼쪽이 박기순이다. 들불야학 교사들은 청소년 노동자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에게 다시 노동자의 삶을 배운다는 뜻을 담아 강학(講學)이라 했다. 들불야학은 1978년 광주시 서구 광천동성당 교리실을 빌려 문을 열었다. 이 야학을 맨 처음 꾸리자고 팔을 걷어붙인 이가 박기순(당시 전남대학교 사학과 3학년)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들불야학을 연 해 12월 26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세 해 뒤 1982년 2월 20일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올린다. 영혼결혼식 때 창작노래극 ‘넋풀이’를 했는데, 이 노래극을 소설가 황석영 집에서 녹음했다. 노래 일곱 곡 가운데 가장 마지막 대미곡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윤정모가 《누나의 오월》에서 누나 이름을 ‘기순’이라 한 것은 들불야학의 박기순을 염두에 두고 지었을 것이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 2018.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