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유튜브 채널 'BBC News 코리아'는 다큐멘터리 <버닝썬:케이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BBC는 일명 '버닝썬 게이트'를 폭로한 박효실 스포츠서울 기자와 강경윤 SBS 연예뉴스 기자의 증언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성범죄, 마약, 경찰 유착. 사회의 부조리한 이면을 연결하자 '버닝썬 게이트'가 열렸다. 조직적으로 행해진 성범죄 속 가해자들은 어떻게 처벌을 면했는지, 피해자들은 어떻게 연대하였는지 낱낱이 파헤쳤다.
 
한국에만 있는 표현, 'Molka(몰카)'
 
 BBC 탐사보도팀 'BBC Eye'가 제작한 새 다큐멘터리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하다'

BBC 탐사보도팀 'BBC Eye'가 제작한 새 다큐멘터리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하다' ⓒ BBC 유튜브 갈무리

 
시작은 정준영이 KBS 예능에서 '요물 막내'로 활약하던 2016년이다. '경미(가명)'라는 여성은 정씨가 성관계 영상을 유포할까 두려워해 그를 고소한다. 하지만 경찰은 정씨가 핵심 증거인 휴대폰을 사설 포렌식 업체에 맡겼다는 말에 증거물 확보 대신 보고서를 요청한다. 증거가 없으면 무고죄는 가중 처벌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에 '경미'는 고소를 취하한다.

이후 정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둘 사이의 장난이었다. 나만 떳떳하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여론은 정씨를 동정했고, 피해자와 고발한 기자를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삭제된 줄 알았던 정씨 휴대폰 속 파일을 누군가 제보했고, 그 안에는 성범죄를 공모하는 케이팝 스타들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빅뱅 승리, FT아일랜드 최종훈, 정준영, 그 외의 지인들이 초대된 카카오톡 대화방에선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고 성범죄를 모의했다. 그들은 피해자를 무력화한 후, 성폭행하고 모욕하며 여성을 장난감처럼 다루고 피해 영상을 전리품처럼 과시했다. 리조트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다양한 구도로 그 현장을 불법 촬영하여 함께 오지 않은 승리에게 전송하기도 했다.

이후 그들은 함께 '밀당포차'라는 주점을 개업하게 된다. '밀당포차'가 성공하자, 승리는 강남에 '버닝썬' 클럽을 연다. 해당 클럽에서 일한 직원들은 '버닝썬'의 실체를 고발했다. VIP 남성 고객을 위해 여성 손님의 모습을 불법 촬영하여 전송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인 여성을 숨겨진 룸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그곳에선 이른바 '물뽕(GHB, 감마히드록시 뷰티르산)'이라 불리는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이 벌어졌다.

피해 여성 A씨는 술 한두 잔 만에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보니 한 남성과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는 A씨를 성폭행했고, "집에 보내달라"는 A씨의 요청에 사진을 찍으면 보내주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A씨는 웃는 얼굴에 브이를 한 채 사진을 찍었고 이후 해당 사진은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의 증거가 된다. "물뽕을 먹고 정신이 나간 여자애들을 거의 매일 봤다"는 직원의 증언처럼 '버닝썬'에선 약물 성폭력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2019년 01월, '버닝썬'을 찾은 한 고객이 직원들에게 폭행당하는 영상이 공개되었고 곧이어 의식을 잃은 한 여성이 직원에 의해 끌려가는 CCTV 영상이 퍼지며 '버닝썬 게이트'가 시작되었다. 그후 '버닝썬'에서 촬영된 불법 촬영물이 음란물 사이트에 유포되며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진다.
 
구하라의 연대... 여성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수사 이전까지 정준영, 최종훈, 승리는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들을 도와주는 '경찰총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총장'의 정체를 밝힌 건 고(故) 구하라였다. 구씨는 최종훈씨와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고 직접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에게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라"고 설득했다. 이를 통해 '경찰총장'이라 불린 윤규근 총경의 정체가 밝혀졌고, 케이팝 스타들의 성추문인 줄 알았던 이 사건이 정경유착인 사실이 드러났다.

'버닝썬 게이트'는 2016년 정준영 몰카 촬영 의혹을 보도한 박효실 기자, 그들의 카톡방 내역을 폭로한 강경윤 기자, 그리고 경찰 유착관계를 밝힌 고 구하라의 힘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그들은 폭로 이후 악성 댓글과 비난 문자, 전화에 시달렸고 직업적 명예가 실추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버텼고, 가해자들은 심판대 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단죄는 이미 끝났다.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승리는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고 지난해 2월 출소했다. 출소 후 그는 해외에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정준영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지난 3월 만기 출소햇다. 최종훈은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았고 2021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경찰총장'이라 불린 윤규근은 2000만 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성범죄가 '놀이'가 되는 것... 강간 문화의 실체
 
 '버닝썬 게이트'는 한국의 강간 문화를 폭로했다.

'버닝썬 게이트'는 한국의 강간 문화를 폭로했다. ⓒ PIXABAY

 
승리, 정준영, 최종훈은 불법 촬영물 공유와 약물 성폭력을 '일상 놀이'처럼 행했다. "진짜 인생 태어나서 제일 웃겼네", "거기서 플래시를 왜 터뜨려ㅋㅋㅋ", "그 여자애 뇌진탕 걸린 줄 알고 개쫄" 등 한 여성을 성폭행한 후 나눈 대화는 시종일관 장난스러웠다.

하지만 '버닝썬 게이트'가 폭로한 건 일부 스타들의 악행이 아니다. 성범죄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였다. '버닝썬 게이트'는 한국의 강간 문화를 폭로했다. 강간 문화란 피해자 비난, 성적 대상화, 강간의 일반화처럼 강간이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성폭력이 끼치는 해악을 거부하는 것이다. "승리의 카톡이 죄라면 대한민국 남자는 다 죄인"이란 클럽 버닝썬 대표의 말처럼 그들의 범죄 행위는 일상적이며 동시에 일부 사람들의 일탈 행위로 규명되었다. 또한 '버닝썬 게이트' 안에서도 '더 범죄인 것'과 '덜 범죄인 것'이 나뉘었다.

언론은 해당 사건을 '인성 의심', '추악한 민낯', '도착적 성향'이라 보도하며 평범한 우리들과 동떨어진, 화려한 스타들의 악행으로 규정했다. 또한 그들와 같은 단체방에 속해있던 남성 연예인들에 대해 수사 촉구가 아닌 "운이 나빴다"는 동정 여론이 일었다. "정준영은 그렇다쳐도 승리, 용준형은 왜 욕하나요?"라는 실제 포털사이트 지식질문처럼 직접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성매매 알선이나 불법 촬영물 시청 정도는 범죄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실히 드러났다.

단톡방에서 불법 영상물을 공유하거나, 혹은 여성에 대한 비하나 혐오 발언을 나누는 것. 이는 매일같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범죄다. 2020년 부산 모 대학교에서 남학생들이 단톡방에 같은 학과 여학생의 신체를 촬영해 게재하고 A4용지 400장에 달하는 음담패설을 했다. 2023년 서울시립대 재학생들이 단톡방에서 같은 동아리 내 여학생들을 성희롱하며 "버닝썬처럼 보안 관리 잘하자"라고 서로 입단속했다. 

'버닝썬 게이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활동가는 "우리 여성들에게 모든 장소는 클럽 버닝썬"이라 발언했다. 버닝썬에서 벌어진 범죄는 일상에 있다. 2021년 '물뽕'의 관세청 적발은 20년보다 61배 가량 증가했고, '약물에 의한 성범죄 의뢰'는 17년보다 2배 가량 늘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2022년 기준 1만 605건으로, 1년 사이에 2배 규모로 커졌다.

우리는 여전히 '버닝썬 게이트' 안에서, 성범죄를 장난처럼 치부하는 강간 문화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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