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연기와 인생의 주연, 조연은 따로 없습니다. 액터 인사이드는 연기를 해오며 온갖 희로애락을 겪었을 배우들을 응원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영화 <좋.댓.구>에서 오태경을 연기한 배우 오태경.

영화 <좋.댓.구>에서 오태경을 연기한 배우 오태경. ⓒ (주)키다리스튜디오


 
1988년 연기를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을 훌쩍 넘겼다. 드라마 <육남매>의 창희 역으로 당시 대중에게 크게 각인된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상업, 독립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다만 2019년 이후 소식이 뜸하다 싶더니 본인 주연작인 영화를 네 편이나 들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이중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좋.댓.구>가 오는 12일 개봉한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좋아요, 댓글, 구독 설정의 줄임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오태경'을 연기했다. <올드보이>의 최민식 아역, <알포인트> 등 중저예산 스릴러 영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가,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난 이후 다소 역할의 비중이 줄게된 실제 그의 인생 일부를 차용한 캐릭터다.
 
6일 서울 성동구에서 만난 오태경은 사뭇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극장 개봉이어서일까. 무엇보다도 배우가 직접 본인을 연기해야만 하는 작품이 나름 부담일 수도 있었을 터. 우선 <좋.댓.구> 이야기로 운을 뗐다. 아역 배우 출신의 오태경이 유튜버가 된 이후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처음 그가 이 작품을 제안받은 건 2020년 초였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다바친 작업

"지금 제작사 대표님이 전활 주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면식이 없던 사이였다. 작지만 의미있는 영화가 있는데 시나리오는 없고, 만나서 이야기해보자고 하시더라. 혹시 사기인가? 싶었다. 배우가 정해져야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라고 하셨는데 직접 뵙고 소재는 재밌을 것 같은데 어떻게 영화가 나올지 감이 안 잡힌다고 하니 영화 <서치>를 참고하라고 하셨다. 바로 다음날 트리트먼트를 보내주셨는데 재밌겠더라. 오태경으로 나와야 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거꾸로 생각해서 안 할 이유도 없었다."
 
오태경이 수락하자마자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됐고, 지금의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한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딴 배역을 맡는다는 건 확률적으로도 드물다. 오태경은 "내 이름을 딴 캐릭터를 앞으로 또 해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며 "국내영화 중엔 황정민 선배 본인의 이름을 사용한 <인질>이 있는데 그건 아예 극영화고, 차인표 선배님의 <차인표>가 그나마 이 영화랑 비슷할 것 같은데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고 말했다.
 
"감독님께 물었다. 다른 아역 배우 출신들이 많은데 왜 나냐고. 첫 번째 이유가 비록 형식이 일반적이진 않지만 영화기에 그 매체와 결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솔직한데 제 출연작에 <올드보이>가 있잖나. 올해가 개봉 20주년이기도 하고, 홍보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거였다.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생전 처음 접하는 유튜버 연기. 게다가 <좋.댓.구>가 모바일 화면이나 PC 화면을 그대로 구현해 사건을 진행하는 '스크린 플레이' 방식이기에 감독이나 배우 입장에선 상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픽이나 특수효과가 어떻게 입혀질지 가늠이 안 돼서다. 게다가 유튜버라는 설정상 직접 카메라를 들고 실제로 촬영하면서 이곳저곳을 누벼야 하기도 했다.
 
"유튜버 오태경은 연기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지금이야 제작사에서 계속 압박(?)해서 SNS를 하고 있지만, 그다지 친숙하지 않거든. 날 것 그대로를 보여야 하는지 과장되게 해야 하는지 그 선을 찾는 게 힘들었다. 고민이 들 때마다 실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생각했다. 오태경이 연기한 오태경처럼 말이다. 감독님도 빈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고민하는 모습이 종종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지만 내심 고민의 흔적이 영화에 많이 묻어 있어 보였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를 촬영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어 보였다. 2018년 9월 지금의 반려인을 만난 오태경은 육아와 연기를 병행하며 나름 강행군 아닌 강행군 중이었다.
 
"촬영 막판일 때 아내가 울었다. 내가 계속 넋이 나가서 집에 들어오고, 집에 오면 계속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괜찮은 거 맞냐며 걱정하더라. 솔직히 많은 작품을 했지만 가장 지독하게 연기했던 것 같다. 거의 막바지일 땐 고문당하는 기분까지 들더라. 제 모습이 너무 많이 나오기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마흔살 오태경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그래서 더욱 무섭더라.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관객분들 절반 이상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다음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좋.댓.구>의 관련 이미지.

영화 <좋.댓.구>의 관련 이미지. ⓒ ㈜키다리스튜디오


 
영화에 특별 혹은 우정 출연하는 박찬욱 감독이나 여러 영화인 섭외도 오태경이 직접 했다는 후문이다. <올드보이> 인연으로 배우 최민식에게도 의사를 타진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오태경은 "제작사 대표님이 영화 정보를 흘려놓고 제가 연락드리는 방식이었다"며 "너무 감사드린다. 최민식 선배님은 너무 정중하게 말씀주셔서 제안한 제가 죄송할 정도였다. 다음에 소주 한 잔 얻어먹기로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안 그래도 이번 부천영화제에서 최민식 선배님 특별전이 있어서 찾아 뵀다. 여러 사람과 함께 대기실에 들어가면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혼자 들어갔지. 때마침 <좋.댓.구>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영화를 이미 알고 계시더라. '야, 기왕 할 거면 오대수 가발 좀 좋은 걸 쓰지 그랬냐'며 웃으며 말씀하셔서 '예산이 없어서요'라고 답했다(웃음). 그렇게 한참 수다를 나눴다. 올해가 <올드보이> 20주년인데 보니까 지금 제 나이일 때 선배님이 <올드보이>를 찍으신 거더라. 그땐 제가 철없을 때라 현장에서 오히려 형님 형님 하며 따라다녔는데, 나이가 드니 더 어려워진다. 존경하는 선배님인데 이젠 연기 장인처럼 느껴지더라."
 
'연기적' 사춘기를 지나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그의 35년 연기 경력에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2007)를 촬영할 때 그는 감독으로부터 "연기가 너무 즉흥적인게 티가 난다"라는 지적을 받는다. 대사를 외운 후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로 연기해왔던 그에겐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나오긴 했지만, 훨씬 전부터 연기를 경험했고 제대로 연기를 배워본 적 없이 현장에서 익힌 것으로 연기자 생활을 이어나간 게 일종의 한계점에 도달했던 것.
 
집안 형편 또한 풍족하지 않았기에 고등학교 입학 무렵엔 커피숍, PC방, 고깃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해 온 그다. 7살 데뷔 때야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된 후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연기하기도 했지만, 점차 연기가 좋아졌고, 이후 그는 한 번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좋.댓.구> 초반엔 이런 그의 개인사가 짤막하게 언급되기도 한다. 그렇게 좋아했던 연기였는데 <황진이>에서 나름 연기적 사춘기를 만나게 된 셈이다.
  
 영화 <좋.댓.구>에서 오태경을 연기한 배우 오태경.

영화 <좋.댓.구>에서 오태경을 연기한 배우 오태경. ⓒ (주)키다리스튜디오


 
"<황진이> 때야 말그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온 고민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연기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초적 고민을 하게 했다. 사실 지금 제 연기관은 노영석 감독님 <조난자들>(2014) 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 결혼이란 걸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뭔가 인간적으로 좀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내 가족이 생기니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보통의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가장이라는 감정도 생기고 신기했다.
 
결국 연기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여기에 배우 개인의 성향과 성격이 묻어날 수밖에 없기에 지난 3-4년간 내가 인간적으로 성장했다면 연기적으로도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좋.댓.구>를 보면 1퍼센트 정도는 성장한 게 보이는 것 같다(웃음). 아이가 태어나던 때에 이전 소속사를 나오고 혼자 활동했었다. 육아로 한창 정신 없던 시기를 지나고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려던 찰나 < 2035 >라는 작품이 들어왔고, 마친 뒤 다시 알아보려는데 <찬란한 나의 복수> 제안이 왔다. 그리고 <좋.댓.구>까지 마치고 일이 안 들어오면서 아 이젠 진짜 회사를 알아봐야 하는구나 싶어서 지금의 소속사를 정하게 됐다."

 
그가 그 시간에 참여했던 작품이 모두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어쩌다 보니 코로나19 팬데믹 때 활발하게 활동했다"며 그는 "<좋.댓.구> 이후 좋은 기회가 열리길 기원하며 남은 홍보활동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오태경 좋.댓.구 최민식 부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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