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마음 놓고 즐긴 후에도 '그래도 좀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5월 1일 개봉 예정인 에밀리 블런트,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스턴트맨>도 그런 영화다. 큼직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스턴트맨>이 가지는 의의와 강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점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얼굴 없는 제작진에 보내는 헌사
 
 영화 <스턴트맨> 포스터

영화 <스턴트맨> 포스터 ⓒ 유니버설 픽처스

 
<스턴트맨>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영화 촬영 현장을 다룬 본작의 주인공은 '명품 배우'가 아니라 그를 대신해 온갖 험한 액션을 소화해 내는 스턴트맨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스턴트맨 '콜트'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 다음 여자친구 '조디'를 비롯한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고 지낸다. 그는 갈등 끝에 영화감독이 된 '조디'의 촬영장에 돌아가지만, 기대했던 재회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라진 주연 배우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이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콜트의 이야기가 <스턴트맨>의 주 내용이다.
 
본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스턴트맨을 비롯해 '얼굴 없는 제작진'에 보내는 찬사일 것이다. 영화는 별도의 오프닝 없이 <아토믹 블론드> 등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에 관여한 다른 영화들의 촬영 현장 몽타주로 시작하며, 엔딩 크레디트에 기존의 순서를 깨고 여타 제작진보다 실제 스턴트 대역들의 이름을 먼저 올린다. 소재에 맞게 참여한 아티스트들을 존중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미소를 자아낼 만하다. 
 
스토리 면에서도 <스턴트맨>은 치밀한 만듦새를 자랑한다. 버려지는 대사 하나 없이 모든 복선을 회수하는데,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영화를 봐 온 사람들이라면 저항 없이 웃고야 말 농담들을 곳곳에 녹여내어 '팝콘 무비'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스턴트맨>은 할리우드를 오랫동안 지탱해 왔던 액션 영화들과 관객들에 대한 하나의 러브레터처럼 느껴진다.
 
시의성은 적절, 메시지 전달 방식은 글쎄
 
 영화 <스턴트맨> 공식 스틸컷.

영화 <스턴트맨> 공식 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스턴트맨>이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대역이라는 소재, 그리고 AI를 위시한 딥페이크 기술은 시의적절하게 작품 속에 녹아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스턴트맨>은 '개인의 신화'를 해체하고자 하는 사조에 기반한 영화이다. 책 한 권을 내기까지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등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필요한 것처럼, 영화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협력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를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칭하는 작가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개인의 신화'에 대한 저항이다.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켄 로치는 자신이 아니라 '팀'의 작품임을 거듭 설명하고자 한 바 있고,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2022년 영화 <타르> 역시 제작진 크레디트를 영화의 맨 앞으로 가져와 구조적 변혁을 시도했다. <스턴트맨> 또한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이를 앞세워 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본작에 대한 안타까움은 영화 내에서의 부족함이 아니라 무언가를 더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가능성에서 기인한다.
 
대표적인 결함 중 하나는 바로 대표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개인의 신화'를 부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대표자가 필요하다. 202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프로레슬러 출신의 배우 존 시나는 영화계 의상 디자이너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제공하기 위한 '임금 평등 캠페인'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나체로 시상을 이어간 바 있다. 이처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플랫폼을 확보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동료들을 위해 나서야 하는 것이다.
 
<스턴트맨>에서는 주연 라이언 레이놀즈가 이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의 캐릭터 '콜트'가 시원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스타의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의 유쾌한 반란이어야 할 본작이 또다시 '스타 주인공'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콜트는 작중 자타공인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스턴트맨이고, 사고와 이별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고는 하지만, 이가 무색하게 전형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작중 인물 모두가 콜트에게 의지하고, 콜트가 사건을 해결하기를 기도하는 모습은 그를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영웅으로 보이게 만든다.
 
스타 배우-제작자로 대표되는 독선적 리더십'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작중 주·조연이 역할을 고루 나누어 가지고 '팀워크다운 팀워크'를 보여주었어야 한다. 전개가 단순해야 하는 액션 영화 특성상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인물 구도를 '평등한 협력관계'가 아니라 '라이언 고슬링과 조력자들'로 설정한 것은 분명 아쉬운 지점이다. 소재가 지니는 무게감에 조금만 더 집중했더라면, <스턴트맨>은 배우의 초상권을 AI에게 넘기는 정책에 맞서 거리로 나선 미국배우조합-미국작가조합의 2023년 7월 파업처럼 아름다운 연대의 순간을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아쉬운 여성 캐릭터 운용과 성인지 감수성

<스턴트맨>의 특성상 위와 같은 주제 전달 과정의 결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가 하면 변명의 여지 없는 한계점 또한 존재한다. 바로 작중 여성 인물들의 취급이다. 에밀리 블런트가 분한 인물 '조디'는 거대 자본 영화를 감독하는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 그리고 애잔한 이별 노래를 부르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는 등 다면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 조디는 콜트가 '되찾아야 할' 전 여자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두 주연 배우의 열연이 조디와 콜트 간의 관계에 생명을 덧입혀 주었지만, 둘의 로맨스 라인이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임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탄생한 이래로 헤어진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 '독해진' 여성 인물, 그리고 남자에게 '보상처럼' 주어지는 여성 캐릭터를 수도 없이 봐 오지 않았는가. <스턴트맨>의 조디가 이러한 전형의 여실 없는 재탕임은 분명해 보인다.
 
또, 작중의 한 시점에서는 특정 인물이 엉망이 된 현장을 둘러보며 실존 배우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싸움을 언급하기도 한다. 가벼운 오마주로 점철되었던 본작이니만큼 이 역시 농담으로 넣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엄연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가정폭력 사건을 유머로 소비하는 것은 '선을 넘었다'라고 판단할 만하다. 만약 해당 농담을 사용하는 인물의 몰상식함을 비난하고자 이런 장면을 넣었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제작진은 실존 인물의 이름을 적절히 변형하거나 가상의 배우를 만드는 등 최소한의 감수성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이는 본작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이 사용한 방법이니만큼, 노련하게 논란을 피해 갈 수 있었던 이들이 굳이 실존 인물들의 사례를 가져온 것은 '부주의'가 아니라 '선택'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영화 <스턴트맨>이 가지는 의의와 그 결점들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갖은 아쉬움이 존재하지만, <스턴트맨>이 다가오는 여름을 맞아 관객들을 시원한 액션의 세계로 보낼 영화임은 분명해 보인다.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하면 두 시간 뒤, 키스의 노래 < I Was Made For Lovin' You >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턴트맨>의 메시지를 압축했다고도 볼 수 있는, 작중 한 인물이 콜트에게 던지는 대사를 인용해 본다.
 
"그거 오스카는 줘?"
영화 스턴트맨 에밀리블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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