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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련두꺼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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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련두꺼비열전

-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12.3 계엄 당일부터 시작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등 광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열정과 헌신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항쟁 역사가 오늘날 살아서 계승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 민주항쟁 정신이 세대를 이어서 오늘날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소중한 자산이다. 이를 외국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이라고 부르며 칭송하고 있다. - 민청련동지회에는 민청련 활동 중 정권으로부터 당한 폭압의 결과로 활동 중 혹은 그 이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이 있다. 그 분들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민주항쟁 정신의 계승에 작으나마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민청련 두꺼비 열전]을 편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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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화 '모든 면에서 민주적'이었던 사람, 김선택

    [민청련두꺼비열전] 맑은 영혼, 김선택

    민청련은 1983년 9월에 창립했는데, 김선택은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운동권이 극소수였던 서강대 출신 김선택은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1983년 말쯤 선택은 장준영으로부터 처음으로 민청련 참여를 권유받았다.민청련 ...
    25.12.02 10:32 ㅣ 권형택(demoyouth)
  • 28화 "우리 아들이 나쁜 일을 한 건 아니구나"... 민주화 운동가 김선택의 고난의 길

    [민청련두꺼비열전] 맑은 영혼, 김선택 ②

    195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김선택은 서강대 경제학과에 입학하며 민주화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형제교회에서 만난 장준영 등 운동권 선배들과 교류하며 학생운동의 조직화에 힘썼고, 1978년 대학연합시위를 주도했다. 1979년 청주교도소 수감 후 석방되어 1980년 '서울의 봄' 시위에 참여했으며, 김의기 열사 투신 후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활동을 이어왔다. 김선택은 '운동하려면 공부부터 하라'는 철학으로 후배들에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학습을 강조했다....
    25.11.26 12:02 ㅣ 권형택(demoyouth)
  • 27화 김선택, 험난한 세상에 궂은일 도맡은 살림꾼

    <민청련두꺼비열전> 맑은 영혼, 김선택 (1)

    1991년 김기설의 분신 이후 노태우 정권은 강기훈을 유서대필자로 지목하며 사건을 조작했다. 김선택은 김기설의 장례를 치른 후 수배자 신분으로 2년간 도피하다 체포됐다. 이후 그는 유서대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료집 발간,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등 끊임없이 노력했다. 결국 2014년, 사건 발생 23년 만에 서울고등법원은 강기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선택의 평생에 걸친 투쟁으로 민주화운동 탄압을 위해 조작된 사건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진 것이다....
    25.11.18 11:35 ㅣ 권형택(demoyouth)
  • 26화 지독한 원칙주의자의 유일한 예외, 아내 박혜숙

    [민청련두꺼비열전] 천하를 아우르는 넓은 품, 최민화 ③

    최민화는 1983년 김근태에게 삼고초려하여 민청련 창립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민청련 상임위원장으로서 기사연 통일문제 사건 해결에 앞장섰고, 김영삼의 출마 제의도 거절했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었으나, 아내 박혜숙과의 결혼은 유일한 예외였다. 암 투병 중에도 하루 1만 5천보 걷기 등 자신의 원칙을 지켰으며,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즐겨 불렀다. 최민화는 민주화 운동의 '해결사'로서 어려운 상황에서 기꺼이 책임을 맡아 해결하는 삶을 살았다....
    25.11.11 12:30 ㅣ 김성환(demoyouth)
  • 25화 '남영동도 별거 아니네'... 대공분실 수사관을 가르친 남자

    [민청련두꺼비열전] 천하를 아우르는 넓은 품, 최민화 ②

    최민화는 1969년부터 1987년까지 18년 동안 6년 6개월을 감옥과 군대에서 보낸 민주화운동가다. 1975년 '미인계 사건'에서 보여준 대담함, 감시 형사에게 대못을 박은 각목을 휘두른 저항, 그리고 보안사 대공분실에서 수사관들을 조종하며 박처원 대공수사단장에게 경고장을 날린 용기는 그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는 함석헌, 장준하 등에게서 배운 원칙을 지키며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25.11.05 13:50 ㅣ 김성환(demoyouth)
  • 24화 '들녘 같은 사람' 최민화

    [민청련두꺼비열전] 천하를 아우르는 넓은 품, 최민화

    최민화는 민청련 출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 중 한 사람이다. 창립을 앞두고 민청련을 이끌고 나갈 수장을 선정하는 일이 마지막 과제로 떠올랐을 때, 그가 김근태를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의장을 맡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민청련 활동 내...
    25.10.28 10:38 ㅣ 김성환(demoyouth)
  • 23화 물 만난 물고기 같던 정치인 박문숙... 그가 홀로 투병하고 떠난 이유

    [민청련두꺼비열전] 김병곤의 평생동지 박문숙

    1981년 3월 결혼한 박문숙은 10년이 채 안 되는 결혼생활 끝에 1990년 12월 남편 김병곤과 사별했다. 그 짧은 결혼생활 중에서도 2년 반은 투옥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나머지 기간도 늘 바빴고, 마지막 투병한 기간을 빼고 나면 가족과 함께 단란...
    25.10.21 10:30 ㅣ 조명자(demoyouth)
  • 22화 투사 김병곤을 지탱한 전천후 전사 박문숙

    [민청련두꺼비열전] 김병곤의 평생동지 박문숙

    1985년 12월 민가협은 민청련 탄압사건으로 구속된 남자들의 아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민청련 여자들은 공동투쟁을 하는 민가협 회원들 특히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 회원을 모시는 일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사는 지역도, 형편도, 성격도 ...
    25.10.14 10:53 ㅣ 조명자(demoyouth)
  • 21화 남자들이 잡혀가자 여자들이 나타났다, 민청련 여자 박문숙

    [민청련두꺼비열전] 김병곤의 평생동지 박문숙

    2014년 4월 1일 밤 10시쯤이었다. 늦은 밤 집에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민청련 동지 김설이였다."언니, 지금 문숙이 딸 은희 전화 받았는데 문숙이가 위독하대. 암이 전신에 퍼져 그동안 입원해 있었나 봐. 독한 년이 아이들 입단속 시켜 ...
    25.10.08 14:13 ㅣ 조명자(demoyouth)
  • 20화 "죽게 내버려두지 왜 살려놔서 이 고생을 시키냐?"

    [민청련두꺼비열전] 아픈 사람들 보듬은 약사 박혜숙, 눈을 감다

    1987년 초, 죽음을 예감한 혜숙이 하루는 남편한테 경제상황을 고백했다."당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집안을 잘 건사했어야 하는데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 당신 월급과 상여금은 꼬박꼬박 수령해서 수배 중인 동지들 도와주고... 그러다 보니 빚을...
    25.09.30 10:50 ㅣ 조명자(demoyouth)
  • 19화 민주화 위해 삶 바친 여인의 유언 "6개월 만 더, 아이가 날 기억하게..."

    [민청련두꺼비열전] 민청련 여성들의 연대로 조직 지켜낸 박혜숙, 위암 투병 중에도 자녀 위한 삶 붙잡아

    1980년대 전두환 독재 시절, 박혜숙은 세민약국을 운영하며 남편 최민화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 1985년 민청련에 대한 대대적 탄압으로 남편과 주요 간부들이 연행되자, 박혜숙을 비롯한 민청련 여성들이 조직을 지켜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박혜숙은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게 된다. 48kg이던 체중이 34kg까지 떨어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고, 막내아들이 엄마를 기억할 수 있도록 최소한 6개월은 더 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박혜숙의 이야기는 민주화운동 속 여성들의 헌신과 투쟁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언이다....
    25.09.23 11:44 ㅣ 조명자(demoyouth)
  • 18화 폭압의 세상 속에 꽃핀 박혜숙의 화양연화

    민청련두꺼비열전, 아픈 사람들 보듬은 약사 박혜숙1

    그 해 9월, 초가을 햇살은 찐득한 열기를 뿜으며 사정 없이 팔뚝을 휘어감았다. 마석 모란공원, 혜숙이 잠들 직사각형 묘터는 이미 반듯하게 파여 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갓 오십. 남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남편바라기가, 엄마 손...
    25.09.16 10:08 ㅣ 조명자(demoyouth)
  • 17화 40년 삶을 온전히 바친 '직업적 운동가' 이범영

    [민청련두꺼비열전] 영원한 청년 이범영③

    민청련의 창립 초기부터 조직사업을 담당했던 이범영은 표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을 '직업적 운동가'로 여기며 모든 역량을 운동에 바쳤다. 1985년부터 민청련 집행국장을 맡아 투쟁을 이끌었고, 여러 차례 수배생활을 하면서도 조직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88년 민청련 의장, 1992년 한청협 초대 의장을 역임하며 대중적 청년운동을 건설했다. 1993년 담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1994년 8월 12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5.09.09 10:36 ㅣ 권형택(demoyouth)
  • 16화 "죽을 때 아쉬움 없이 죽어야 한다" 열여덟 살 이범영의 결심

    [민청련두꺼비열전] 영원한 청년 이범영 ②

    1954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이범영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서울법대에 입학했으나, 1976년 졸업장을 포기하고 감옥행을 택했다. 대학 시절부터 농촌법학회 활동을 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1983년에는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창립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공개된 집행부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막후에서 민청련 활동을 기획하고 비공개 회원 조직을 관리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진지하고 정의감이 강했던 이범영은 유신독재와 맞서 싸우며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25.09.02 10:59 ㅣ 권형택(demoyouth)
  • 15화 이범영, 산사의 새벽 이슬처럼 맑은 영혼

    [민청련두꺼비열전] 영원한 청년 이범영 ①

    1976년 12월 8일, 서울대 법대 4학년 이범영, 박석운, 백계문은 '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하며 유신헌법 철폐, 긴급조치 해제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서울법대 삼총사 사건'으로 알려진 이 시위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균열을 내고 민주화운동의 물꼬를 텄다. 주동자들은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범영은 이후 민청련 등 청년운동을 이끌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1994년 40세로 세상을 떠났다....
    25.08.26 10:46 ㅣ 권형택(demoyouth)
  • 14화 "구차한 삶은 저리 가라" 백완승의 당당한 삶과 투쟁

    [민청련두꺼비열전] 운동권의 여장부 백완승 ③

    백완승은 결혼 후 생계를 위해 논장서점을 운영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압수수색에 맞서 출판문화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고려대 졸업 후에도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1994년 무주 군수 선거와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2014년부터는 노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밥알단' 활동에 참여했다. 민청련동지회 송년회 기획 등 문화활동에도 힘썼다.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아 신장 종양이 발견됐을 때는 이미 말기였고, 202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25.08.19 10:54 ㅣ 김성환(demoyouth)
  • 13화 부부 사이임에도 비밀로... '말뚝이' 백완승의 '그날'

    [민청련두꺼비열전] 운동권의 여장부 백완승②

    백완승은 1979년 박정희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고려대 시위를 주동하다 구속되었으나, 10.26사건 이후 풀려났다. 1980년 '서울의 봄' 시기에 그는 민속학연구회를 이끌며 '궁정동 말뚝이' 탈춤극을 창작해 30여 차례 공연했다. 5월 17일 전두환의 쿠데타 이후 체포된 백완승은 성북경찰서에서 '통닭구이' 등 극심한 고문을 당해 흉골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1983년 박강희와 결혼한 그는 민청련 창립에 참여했으며, 임신 6개월 상태에서도 경찰 포위망을 뚫고 창립식에 참석했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금도 거부하며 원칙을 지킨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25.08.12 12:17 ㅣ 김성환(demoyouth)
  • 12화 백완승, 호텔 침대 시트 찢어 플래카드를 만들다

    민청련두꺼비열전, 운동권의 여장부 백완승1

    백완승 하면 생전에 그들 알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인상이 있다. 역도 선수를 연상시키는 넉넉한 풍채에, 부리부리한 눈과 두툼한 입술, 그리고 우렁우렁한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외모에 대한 이러한 기억으로 그의 일생 ...
    25.08.05 10:24 ㅣ 김성환(demo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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