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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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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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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은 많이 지체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새삼 역사의 준엄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청년세대와 함께 우리 근현대사의 정맥인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고자 한다. 횃불→촛불→응원봉으로 이어지는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는 길에 뜻 있는 분들의 동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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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9화 오밀조밀한 일본군 정보망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9] 정확한 정보와 일본 정부의 치밀한 작전에 의해 진행된 한국침탈

    일본 낭인패와 밀정, 군사들이 수집한 각종 정보는 주한 일본 영사관을 통해 즉각 일본정부에 보고되고 필요한 지침을 하달받아 이를 시행하였다.다음에 인용한 '보고서'와 '지침'을 살펴보면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학살에 따른 병력증원 ...
    26.05.09 20:55 ㅣ 김삼웅(solwar)
  • 68화 거세지는 동학농민군의 저항에 조직적 학살 자행한 일본군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8] 동학농민군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일본군

    일본군은 초기에는 관군을 앞세워서 한국인들끼리 상잔을 벌이도록 하고 자신들은 무기를 대주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등 후방 지원을 하다가 전국 각처에서 동학농민군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전략을 바꾸어 직접 동학농민군의 진압에 나섰다....
    26.05.08 15:33 ㅣ 김삼웅(solwar)
  • 67화 근대식 무기인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7] 낡은 화승총을 비롯 죽창이나 농기구로 무장한 동학농민군

    동학농민군은 근대식 무기인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대항하여 40~50 차례에 걸쳐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낡은 화승총을 비롯 죽창이나 농기구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에 비해 일본군은 스나이더 소총과 무라타 소총 등 현대식 ...
    26.05.07 15:17 ㅣ 김삼웅(solwar)
  • 66화 청주성에서 일본군에 패배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6] 김개남은 그런 뒤 11월에 들어와 북상을 시도하였다

    김개남은 삼례의 2차 봉기에 합류하지 않고 남원에서 머물다가 10월에 전봉준이 북상하자 14일 5만 병력을 이끌고 임실을 거쳐 16일 전주성에 입성하였다. 전주성에서 새로 부임해 임지로 오던 남원부사 이용헌을 처형하고 고부군수 양필환...
    26.05.06 15:09 ㅣ 김삼웅(solwar)
  • 65화 어용부대 '민보군' 진압하느라 북상 늦어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5]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 삼례를 택한 것은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가 전봉준의 활동 근거지인 전주나 김개남의 정예군이 있는 남원이 아닌 삼례를 택한 것은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전주부 바로 외곽에 위치한 데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했던...
    26.05.05 21:58 ㅣ 김삼웅(solwar)
  • 64화 동학군 2차 봉기의 배경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4] 고종은 무능하고 나약하고 부패한 군주였다

    고종은 무능하고 나약하고 부패한 군주였다. 일부 학자들이 근대화를 추진한 개명군주라고 떠받들지만, 전체를 보지 않고 특정한 부분만 과장한 단견이다. 일본의 압력으로 친부 흥선대원군에게 섭정을 맡겼으나 왕권은 이미 권위를 잃고 국...
    26.05.04 15:23 ㅣ 김삼웅(solwar)
  • 63화 제2차봉기, 항일구국투쟁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3] 종주권이 청국에서 일본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고,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었다.

    일본군은 6월 21일(금) 자정 동소문에 불을 지르고 경복궁을 침입하여 왕을 연금하고 운현궁으로 물려가 대원군을 강제로 입궐시켰다. 고종을 협박하여 모든 정무를 대원군에게 맡긴다는 교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친청파 대신들을 섬으로 유...
    26.05.03 20:45 ㅣ 김삼웅(solwar)
  • 62화 '공화제의 첫걸음' 집강소 운영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2] 짧은 기간이지만 동학군의 집강소 운영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동학군의 집강소 운영은 소중한 경험이었다.공화제로 갈 수 있는 훈련기간이기도 했다. 전봉준은 특유의 지도력을 발휘하여 농민군 통치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53개 군현에 공문을 보내 노략질과 토색질하는 무뢰잡배...
    26.05.02 20:41 ㅣ 김삼웅(solwar)
  • 61화 일본군 경복궁 점령에 '척왜깃발'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1] 전봉준은 '좌우도 도집강'의 명의로 합의된 명령을 하달하였다.

    '전주화약'으로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서 철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5월 13일 일본육군소장 오시마 요시마사가 보병 3,000명과 기병 300명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하고, 5월 23일에는 일본공사가 광무황제에게 내정개혁을 요구하고 ...
    26.05.01 13:46 ㅣ 김삼웅(solwar)
  • 60화 전봉준, 비무장으로 나주성 들어가 담판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0]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였다

    전주에서 철병한 농민군은 7월 15일 남원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전라도 53개가 고을에 집강소가 설치된 뒤에 이들의 사기진작과 폐정개혁의 추진, 그리고 적폐의 시정을 위한 집회였다. 수만 명이 모였다. 봉기 이래 남원 집회처럼 많은 ...
    26.04.30 15:15 ㅣ 김삼웅(solwar)
  • 59화 55개 군현에 농민자치 집강소 설치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9] 부패 관리들을 쫒아내고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동학교도와 양심적인 관리가 함께 일하는 합작기관

    동학혁명군은 전투과정에서 점령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부패 관리들을 쫒아내고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동학교도와 양심적인 관리가 함께 일하는 합작기관이었다.호남지역 53개 군현에서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농민이 권력을 장악하고 ...
    26.04.29 17:04 ㅣ 김삼웅(solwar)
  • 58화 손병희와 전봉준 의형제 맺어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8] 일본군은 동학군이 활동한 전국 여러 지역에서 동학농민군과 동학도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무차별 학살하였다.

    때를 기다리던 북접 소속 동학인들은 도처에서 속속 모여들었다. 최시형의 명령과 함께 손병희·손천민·이종훈 등의 지휘 아래 북접 동학농민군은 관아를 습격하고 무기를 빼앗는 등 삽시간에 경기도 일원을 위협하였다. 9월 중순부터 10월...
    26.04.28 23:06 ㅣ 김삼웅(solwar)
  • 57화 북접의 혁명 참여... 천군만마의 격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7] 최시형은 각포 두령들에게 9월 18일 보은의 청산으로 모이라는 동원령을 내렸다

    최시형은 1894년 9월 18일 북접 동학도들에게 청산 집결을 명령하고 초유문을 발령했다. 교조신원과 보국안민을 위해 남접 전봉준과 합세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손병희는 북접 중군통령으로 임명되어 10만 동학농민군을 총지휘하게 되었다. 북접군은 보은 수비병을 격파한 후 2대로 나뉘어 진군, 논산에서 남접군과 합류했다. 이로써 동학혁명은 남북접이 함께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손병희는 종교지도자에서 혁명가로 전환하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26.04.27 15:54 ㅣ 김삼웅(solwar)
  • 56화 무장일본군의 출병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6] 철군하지 않고 눌러앉아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 등 조선침략의 첨병 역할을 했다.

    고종 정부의 원병 요청 국서는 원세개를 통해 청국 정부에 전달되었다.당시 청나라의 실권자인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은 5월 1일(음) 수사제독(水師提督) 정여창(丁汝昌)에게 군함을 이끌고 인천으로 출동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와 함께 ...
    26.04.26 17:55 ㅣ 김삼웅(solwar)
  • 55화 농민군 전주성 철병에 관한 논점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5]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철병은 동학혁명사의 일대 변곡점이었다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철병은 동학혁명사의 일대 변곡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와 동아시아 정세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이와 관련하여 한 연구가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전봉준이 꽤 오래 전부터 농민의 대군에 의한 상경(上京)을...
    26.04.26 08:52 ㅣ 김삼웅(solwar)
  • 54화 '전주화약' 맺고 철군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4] <폐정개혁 13개조>의 개혁안을 제시함으로써 결코 일방적인 '패배의 철병'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청군에 이어 일본군의 내침 소식에 동학군은 논란 끝에 전주성 철군을 결정하였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외군의 출병소식이었다. 아무리 제폭구민과 광제창생을 위하여 일어선 혁명이라 해도 외군의 출병으로 국가안위가 위협받는 상황...
    26.04.24 15:29 ㅣ 김삼웅(solwar)
  • 53화 전주성 입성, '폐정개혁' 맺어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3] 이 개혁안은 전봉준이 오래 전부터 다듬어 온 꿈이고 포부였다

    6월 중순 어느 날, 때 이른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민들은 벼를 심고 밭갈이를 하여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관찰사 김학진은 전봉준을 전주감영으로 초청하였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철수하였지만 다시 떨치고 일...
    26.04.23 15:15 ㅣ 김삼웅(solwar)
  • 52화 전봉준과 김개남의 노선 갈등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2] 정세는 여러 가지로 김개남에게 불리했다

    동학혁명사의 연구 과정에서 중대한 미스테리의 하나는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우두머리와 흥선대원군과의 밀약설·묵계설·암묵설·내통설 등 이른바 '연계설'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접촉'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
    26.04.22 15:16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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