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0 20:48최종 업데이트 22.09.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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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2020년 한 해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집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어릴 적 앨범을 꺼내 지난 추억을 나누었다.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몇십 년 전 일들을 엊그제 일처럼 기억하셨다. 어머니 친구들도 만나 그들이 지나온 삶의 여정에 대해 들었다.

해방둥이 세대인 그들은 셋방살이, 내 집 마련, 아파트 이주를 경험하고 강남 진입에 성공한 우리 사회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주택 마련은 삶의 목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 세대에게 집은 일차적으로 '사는 곳'으로서의 거주 공간이지만, 이와 동시에 자식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사는 것'으로서 생계 수단이다. 


어머니 동창들은 대부분 자식들을 위해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따로 마련해 놓으셨다고 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투기를 할 만큼 배포가 크지 못했고 그럴 만한 금전적인 여유도 없었다. 다들 빠듯한 월급쟁이 생활에 뽀글이 파마머리로 1년을 버텼다.

남편들도 단벌신사이기는 마찬가지였고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아무리 졸라도 사주지 않았다. 외식도 1년에 몇 번 특별한 날에만 했다. 어쩌다 받는 보너스는 전부 은행 금리가 높은 적금에 묶어두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곗돈을 부었다. 오로지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해. 그때는 다 그랬다고 하셨다.

오죽하면, 2014년 8월 23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한 인터뷰이는 '자식이 대학에 불합격한 슬픔보다 아파트에 당첨된 기쁨이 더 컸다'고 했을까. 한결같이 입을 모아 자식들에게 셋방살이의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셋돈을 못 구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은행 문턱은 한없이 높기만 했다.

주택이 가진 자산적 가치
  
세월은 흘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세대와 달리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기를 바랐던, X세대인 나와 내 친구들은 주택이 상품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집은 역시 사는 것이라고,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우리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내 집 마련에 있지 않다. 어렵게 마련한 집이 어디에 위치하는지가 바로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말해준다.

1990년대 '신인류'로 불리던 X세대는 주거환경이 뛰어난 서초와 강남권의 입성을 서두르고, X세대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자기 취향이 뚜렷한 밀레니얼이 서울에서 최대 주택 구매층으로 떠올랐다. 기존 세대와 달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삶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밀레니얼에게도 주택이 갖고 있는 자산적 가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강남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사회적 욕망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강남의 과열된 주택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정부의 온갖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했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될수록, 소수에게만 자가 보유의 기회가 주어지는 강남 아파트의 자산적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문재인 정부는 20개 넘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2017년 5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강남 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의 아파트 가격은 큰 폭으로 올랐다. 정부가 주택가격을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리, 더 빨리 달아났다. 매매가격뿐만 아니라 전셋값도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12-2021 월별 주택 전세 가격 증감률 ⓒ 한국부동산원

 
2020년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된 주택 임대차 3법 발표 이후, 서울의 전셋값은 6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전세대란이 일어났던 2013년 이후 최장 기록을 보였다. 임대차 3법은 ▲ 계약갱신청구권제(임차인 보호 기간을 2+2년으로 연장)  ▲ 전월세 상한제(임대료 상승 폭 연 5%로 제한) ▲ 임대차 신고제(주택 임대차 계약 시 30일 이내로 관청에 신고해야 할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부동산 거래 신고법 개정안이다.

실거주 의무 강화 등 규제 역풍에 수억 원씩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울을 떠나는 '전세난민'이 오히려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경기도 주요 도시의 전셋값도 덩달아 폭등했다. 서울로 출퇴근이 편리한 수용성(수원, 용인, 성남)이 전셋값 상승을 주도하였고, 비교적 저렴한 전세가 많았던 인천도 급등했다.

KB 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3.3㎡(1평)당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017년 5월 2533만 원에서 2021년 8월 4017만 원으로 상승했다. 1평당 전세가격이 4000만 원을 넘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초구의 경우 같은 기간 2428만 원에서 3825만 원으로 상승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1년 동안 강남구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1년 동안 약 2억 원, 그리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의 기간 동안 약 4억 원이 올랐다. 올해 들어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서울지역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세가가 하락세를 보이던 와중에도 강남, 서초구는 최근까지 내내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8월에 들어서야 보합으로 전환됐다. 
 

2017년 5월 ~ 2021년 8월 서울 서초구 3.3㎡당 전세가격변화 ⓒ KB부동산


주택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집착

한 지인이 강남 아파트를 '돈을 찍어내는 기계'라고 표현했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1년에 1000만 원도 모으기 어려운 평범한 직장인이 무슨 수로 1년에 2억 원을 모을 수 있단 말인가? 주택을 굳이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던 지인은 최근 들어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본인이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걸 담보로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강남의 똘똘한 아파트 한 채가 모든 생활 – 나이 드신 부모님을 돌보는 일부터 사업자금, 자신의 노후 생활 등 - 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울의 미친 아파트 가격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부모님은 강남은 고사하고 왜 서울에 아파트 한 채도 없는 걸까"라고 중얼거리게 된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주거를 포함한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던,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발전국가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주택이 거주 공간의 기능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연금' 혹은 '복지'의 형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택을 기반으로 한 복지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택이 지닌 자산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정부로부터 한 번도 제대로 보호받아 보지 못한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부보다는 '나' 자신을 믿고 싶은 거다. 복지에 대한 '권리'보다 '책임'을 강요받았던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당연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2017년 무더운 여름,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내년(2018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임대사업자로 등록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은 좀 팔라"고 권고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핏대 선 얼굴이 화면 가득했다. 그러나 8.2 부동산 대책을 시작으로 계속된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은 안 그래도 뜨겁게 불붙은 부동산 시장의 불길을 더욱더 거세게 번지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주택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집착은 왜 수그러들지 않는 걸까?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려준 '셋방살이'의 설움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고, 세입자로 겪는 주거 불안정은 집은 역시 '사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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