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발언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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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인들이 투표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을 때는 보다 더 심각한 경우다. 왜냐하면, 민주헌법에 의해 보장된, 아니 어떻게 보면 요구되는 국민들의 선거권 행사를 일부 사회집단에 한해서 부인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공직으로 뽑아 달라는 정치인의 입에서.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물론 나 안찍을 사람은 (투표장에) 안와도 괜찮지만..."이라고 한 유세 발언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나중에 그가 했던 의회정치 그 자체를 무시하는 듯할 수도 있는 이른바 '탈여의도 정치' 발언이 더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최근에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말실수는 국민들의 눈살을 또 다시 찌푸리게 했다. 절대 다수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뉴욕에서 감염병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 행사에 참석하고 나온 윤 대통령이 한국 외교단 구성원들을 향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
핵폭탄급 비속어 논란이 터진 거다. 더군다나 외교의 국제무대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더욱 심각했다. 외교는 해당국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국제무대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도 포함한다. 공공외교의 대상은 다른 나라 국민뿐만 아니라 자국 국민들도 역시 중요한 청중이기 때문이다.
이후 일어난 소모적인 정쟁들을 다 차치하고 대통령의 이번 말실수는 두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욕설의 대상이 결국 미국 의회 의원이었든 한국 국회의 의원이었든 윤 대통령의 무의식에서라도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라는 제도에 대한 인식이 섬뜩해 보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예전에 '이 XX, 저 XX'라는 불경 언사,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 '박정희식 국정운영을 배우겠다', '박근혜의 명예회복 하겠다'는 발언들은 일정한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즉, 그동안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민주주의 운영에 대해 막연한 걱정만으로 존재했던 것들이 갑자기 현실화할 수도 있는 구체적인 우려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두번째 주요 관점은 사후 대응방식이다. 정치심리학 연구를 보면 정치인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전술은 4가지가 있다. 변명과 남 탓하기, 정당화와 물타기, 고발인의 신뢰성 떨어뜨리기,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자진 고백과 용서구하기이다. 각 전술의 신뢰회복 효과는 사고가 일어난 상황과 사고를 친 정치인의 성별에 따라 다른데, 보편적으로 가장 잘 통하는 것은 역시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선동정치의 각본 그대로 답습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대통령실과 대통령 그리고 여당이 채택한 수습전술은 안타깝게도 진정한 사과만 빼고 나머지 방식을 모두 동원했다. 처음에는 대통령실에서 뒷부분을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 했고, 나중에는 앞부분을 '이 XX들이'가 아니라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통령 본인은 아예 기억상실의 변명까지 대며 잘못을 절대 부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사와 국민들은 이런 해명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반응은 싸늘했고 이미 낮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저로 하락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윤석열 정부의 이 'XX 외교참사'를 계기로 바로 대통령과 외교부장관에게 비판과 비난을 퍼부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욕설, 비속어 논란 책임전가 규탄 현업 언론단체 긴급 공동기자회견’이 9월 2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그러자 대통령과 여당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사건을 괜히 키웠다. 특히, 그렇게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애용하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막말을 가장 먼저 보도한 MBC라는 '메신저'에게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우려고 한다. '고발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전술을 통해 위험천만한 선동정치의 각본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이 의아하기 짝이 없다.
모든 정치적 문제마저 죄와 벌로 판단하려는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우려로만 끝나지 않으리라는 염려를 자아낸다. 더군다나 해외 언론에서 더 이상 문제로 삼지 않으려던 찰나에 대통령 쪽에서 이렇게 누워서 침 뱉듯 국내에서 불필요하게 문제를 확대시키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언론자유를 침해한다는 등의 비판을 국제적으로 자처하고 말았다.
이번 XX 외교참사는 쉽게 피할 수 있었는데 결국 현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현안들을 삼킨 블랙홀의 시국파탄까지 가게 됐다. 실은 이런 비속어 논란에 뒤따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굳이 별도로 연구에 의지하지 않고 상식만으로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행동을 경계하고 삼간다는 '신독(愼獨)'의 경지까지 오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세계도시 뉴욕 한복판에서 개최된 온 세상이 주목한 국제행사에서, 대통령의 북미 순방을 공식적으로 취재하는 풀 취재단의 카메라 앞에서라도 절제하고 자신을 규율할 줄 알아야 했다. 이런 기대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에게 과한 것인가?
* 이 글은 모두 필자가 한글로 작성했으며 편집자가 약간의 교정·교열만 했음을 밝힙니다.
▲하네스 모슬러 /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하네스 모슬러
필자소개: 이 글을 쓴 하네스 모슬러는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University of Duisburg-Essen) 정치학과와 동아시아연구소(IN-EAST) 교수이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입니다. 관심 분야는 한국정치와 사회이고 최근의 연구주제는 선거제도, 개헌, 기억의 정치, 시민교육, 포퓰리즘 등입니다. 최근 저서로는 <Politics of Memory in Korea>(편저), <South Korea's Democracy Challenge>(편저), <The Quality of Democracy in Korea>(공편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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