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6 11:28최종 업데이트 23.02.0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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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버들. 양버들 표찰이 붙어 있는 몇 안 되는 나무들. 이 나무들 앞에는 "이곳의 양버들 3그루와 갯버들은 2013년 9월 1일 열대림 보호 홍보를 위하여 서울에 방문한 아마존 부족장 후니쿠이와 그 친구들 및 서울환경연합이 함께 심은 것이다"라는 설명을 적은 팻말이 서 있다. 서강대교 남단. ⓒ 성낙선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나무들과 인사를 나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듯이, 나무를 만날 때마다 손을 내밀어 그 거친 몸통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꺼끌꺼끌한 수피에서 세월이 만져진다. 내 피부도 그처럼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나무와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무가 꼭 내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귓전을 스치는 건 그냥 바람소리다.

언제나 그렇다. 나무가 인간인 내게 말을 걸어올 리가 없다. 그래도 섭섭한 마음은 없다. 설령 나무가 무슨 말인가를 한다고 해도, 그 말을 알아들을 능력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 방식으로 인사를 건넸으니 나무도 또 그만의 방식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을 거라 헤아려 짐작하고,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조용히 돌아갈 뿐이다.
   

양버들. 서강대교 남단. ⓒ 성낙선

 
내가 한강에서 만나게 되는 나무는 주로 양버들과 버드나무다. 이들 나무는 무엇보다 수형이 남다르게 생긴 게 특징이다. 보통 나무들과는 크게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무가 가진 눈으로 보면, 외계에서 온 생물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만큼 독특하다. 이들은 개체 수에서도 다른 나무들을 압도한다. 당연히 오래, 그리고 자주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돌리는 곳마다 이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걸 피할 수 없다.

양버들은 마치 환영 인사라도 나온 것처럼 길가에 한 줄로 죽 도열해 있는 모습이 정겹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을 빗질하는 것 같은 광경도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그런 양버들을 보고 싸리빗자루를 땅에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다고들 말한다. 내 눈에는 때로 그 모습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나는 그 모습에서 하늘 높이 수직으로 솟구치는 상승감을 맛본다. 

양버들과 미루나무의 차이 
        

양버들. 언론에 "미루나무 산책로"로 보도돼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촌한강공원. ⓒ 성낙선

 
그런데 그렇게 멋진 양버들을 제 이름이 아닌 남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빈번해 안타깝다. 사람들이 양버들을 미루나무로 알고, 또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숱하다. 당장 검색어로 미루나무를 쳐 봐도, 관련 이미지로 양버들이 뜨는 걸 볼 수 있다. 양버들과 미루나무는 둘 다 수입종이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로 들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일제가 신작로를 만들면서 가로수로 이들 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양버들과 미루나무를 보면서 옛날 고향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양버들이라는 이름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의미가, 미루나무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미루나무는 원래 이름이 '미류나무'인데, '버드나무 류'자가 단모음화하면서 굳어진 이름이다. 이름에 내포된 의미가 비슷해 더 헷갈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양버들과 미루나무 모두 똑같이 손해를 보고 살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양버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나무 데크를 뚫고 그 위로 솟아오른 양버들. 선유도공원. ⓒ 성낙선

 

미루나무. 선유도공원. 양버들에 비해 가지가 옆으로 좀 더 벌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한강에서 미루나무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 ⓒ 성낙선

 
양버들은 한강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양버들을 두고 '미루나무'라고 부르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표찰이 붙어 있는 양버들 중에 제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 상당수 '미루나무'라고 적혀 있다. 그에 반해 미루나무는 거의 '미루나무'다. 미루나무에 양버들 표찰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건 찾기 힘들다. 양버들 편에서 보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양버들이 입을 열어 말을 할 줄 알게 된다면, 한탄이 그 키만큼이나 길게 늘어졌을 것이다.

심지어 한 양버들 나무 몸통에는 '미루나무(양버들)'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었는데, 그 표찰이 마치 "이 나무는 양버들이야, 그런데 미루나무라고 불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더 큰 아이러니는 정작 한강에서 미루나무를 찾아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개체 수가 양버들에 한참 못 미치는 데다, 대체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가 한참 모자라는 미루나무가 그 이름만으로 위세를 떠는 형세다.
     

미루나무. 암사생태공원 내 강변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산책로에 심어져 있다. ⓒ 성낙선

 
이름뿐만 아니라, 양버들과 미루나무는 그 이파리마저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둘 다 세모 모양을 하고 있는데, 얼핏 봐선 구분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두 나무가 수형에서는 비교적 또렷한 차이를 보여줘 그나마 다행이다. 양버들은 가지가 몸통에 바짝 붙어 거의 수직으로 뻗어 있는 데 비해, 미루나무는 가지가 몸통에서 조금 더 벌어져 옆으로 뻗어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양버들이 잘 다듬어 단정해 보이는 머리 모양이라면, 미루나무는 약간 흐트러져 산만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사실 나무 형태만 놓고 보면, 그렇게 구분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미루나무'라는 이름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걸 굳이 양버들이라고 불러 감흥을 깰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왕 이름을 지어 부를 거면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옳다. 누구든 정확한 명칭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저 양버들을 미루나무라고 부르고, 미루나무를 양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한강에서 양버들을 마주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양버들 산책로. 반포한강공원. 최근 몇 년 새 한강에서 양버들을 보는 일이 흔해졌다. ⓒ 성낙선

 

양버들 숲. 바람의 숲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서강대교 남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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