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9 15:25최종 업데이트 22.11.2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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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복덕방에는 단골고객인 치맛바람, 즉 '복부인'들이 있다.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무상출입하는 상류층부인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라고 한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복부인'의 등장은 1970년대 강남개발의 열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봉관(2019)에 따르면, 복부인이라는 용어는 1978년을 전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8년 2월 2일자 <동아일보>에서는 "복부인은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무상출입하는 상류층 부인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라고 한다. 투기꾼과 복부인들은 복덕방에서 좋은 벌이가 있다는 정보만 들어오면 몰려들어 법석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강남개발은 과밀화되어 가는 강북의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시키고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의 남서울 개발계획에 따라 시작되었다. 2015년 개봉된 영화 <강남 1970>에서 알 수 있듯이 강남개발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인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정부, 재벌, 그 다음이 건설업자,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와 복부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복부인'만이 투기의 주역으로 지목되어 사회적인 지탄을 받은 것일까?

투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부인이었다. "사철 태가 크고 굵은 안경을 즐겨 끼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며… 약간은 콧소리를 내는 듯하고 삿대질을 곧잘 하며 자신만만한 팔자걸음을 흔히 걷는다…"(백명희, 1978)라는 묘사에서 나타나듯이 사회적으로 복부인은 다소 천박하고 허영심이 넘치는 여성으로 정형화되어 인식되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에서도 커다란 선글라스,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로 복부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복부인으로 대표되는 투기부인을 혐오하는 대중심리에 대해 연구한 김주희(2019)는 "한국사회에서 탐욕스럽고 혐오스러운 투기꾼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한국사회에서 '투기'는 여성의 비규범적 경제활동으로 병폐화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복부인의 존재는 "금융시장을 합리화하고자 한 정부와 자본이 세운 허수아비일 뿐이었다"고 주장하였다.

흥미로운 건, 한국과 비슷한 경향이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엔화 약세 시기에 기준 금리 6~7%였던 호주와 뉴질랜드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들을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렀으며, 중국에서도 2010년 이후 국제 금시장에서 금 사재기를 통해 금값을 폭등시킨 주역으로 '다마(아주머니)'를 지목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돈과 여유를 즐기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비계층으로, 재테크 주체로 부상한 중년 여성을 일컫는다.

전봉관(2019)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독 투기의 영역에서만큼은 모두 여성이 주도한 것으로 지목되는 '기형적인 여성혐오 현상'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한국 부동산 투기의 '얼굴마담'
 

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 ⓒ 세경흥업


197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복부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는데, 내 집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생계형 복부인과 부동산 투기를 통해 크게 이익을 보게 되면서 결국 가정을 버리게 되는 탈선형 복부인이다.

탈선형 복부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중산층을 이루는 대부분의 가정에는 생계형 복부인으로서의 어머니가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들에게 집은 일차적으로 '사는 곳'으로서의 거주 공간이지만, 이와 동시에 자식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사는 것'으로서 생계수단인 것이다.

비록 최시현(2021)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투기적 주택 실천이 부동산 자산의 축적을 통해 자가 소유를 상징으로 하는 중산층 가족주의에 이바지하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져 왔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생계형 복부인으로서의 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꿈꾸었던 딸세대들도 월세입자와 전세입자로 겪는 주거 불안정으로 인해 마침내 집은 역시 '사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현실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임은 '아내'에게 전가된다. 본인과 상의하지 않고 '아내'가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이며, 본인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식으로 해명한다.

하지만 어떤 아내가 몇십억이나 되는 돈을 남편과 상의 한마디 하지 않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부동산에 투자 혹은 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를 주도했다고 간주되는 '복부인'이라는 상류층 부인계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복부인은 전봉관(2019)의 표현대로 "한국 부동산 투기의 위계에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는 '얼굴마담'"이었을 뿐인 것이다. 거대한 부동산 투기의 피라미드 상부를 차지하는 이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희생양'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김주희 (2019) ‘투기부인’이라는 허수아비 정치: 두 편의 사적 다큐멘터리 분석을 중심으로. 젠더와 문화. 12(1):111-148.
백명희 (1978. 12. 7) 복부인론. 조선일보. 전봉관 (2019) 주거의 투기화, 투기의 여성화: 1970~1980년대 한국 서사에 나타난 복부인의 형상화 양상 연구. 대중서사연구 25(4): 321-359에서 재인용.
이장원(2022. 4. 22) 잠자던 와타나베 부인 깨어날까. 연합인포맥스.
전봉관 (2019) 주거의 투기화, 투기의 여성화: 1970~1980년대 한국 서사에 나타난 복부인의 형상화 양상 연구. 대중서사연구. 25(4): 321-359.
최시현(2021) 주택장(housing field)의 정치경제학: 도시중산층의 젠더화된 투기아비투스. 공간과 사회. 31(3):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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