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2 11:53최종 업데이트 22.12.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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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프로 바둑 기사들은 바둑을 다 둔 후에는 반드시 복기를 한다. 이겨서 기쁜 승자도, 져서 슬픈 패자도 이 절차를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음 대국에서 좋은 바둑을 두려면 지난 대국에서 범한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두는 것이 더 나았을지 알아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모두의 머릿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길게 보면 9년, 짧게 보면 6년 동안 지속된 부동산 투기 광풍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요즘, 그동안 이런저런 모양으로 정책 제안 및 수립에 참여했던 사람들 속에서 '악수'를 두지는 않았는지, 더 좋은 '수'는 없었는지 복기하는 이가 등장할 법하다. 하지만 어디서도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우니 참 이상하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공급부족론'

필자가 보기에 지난 투기 광풍의 시대는 사이비 해결책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그중에서 제일 황당한 주장은 '공급부족론'이었다. 이 견해는 집값 폭등의 원인을 주택 공급 부족에서 찾고, 해결책을 주택 공급 확대에서 찾는다.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는데도 공급부족론자들은 주택 수요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 채 공급 부족만을 뇌까린다. 공급 부족이 집값 폭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려면 수요 쪽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주택 공급이 뚜렷하게 감소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공급부족론자들은 주택 수요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밝히지도 않았고, 주택 공급이 뚜렷하게 감소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하지 않았다'라기보다는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주거안정 실현방안인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2022.8.16 ⓒ 연합뉴스

 
사실 최근 몇 년간 공급부족론이 기대고 있는 논거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한국 부동산 시장을 지배했다. 투기 억제 장치가 전면 해제된 상태에서 시중 유동성이 유례없이 증가하자, 부동산 투기가 발발해 주택 수요를 급속히 팽창시켰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 이후의 정부들과 비교할 때, 문재인 정부 임기 중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집값 폭등의 직접적 원인은 투기적 가수요의 급팽창으로 인한 '수요 초과'였음에도, 주야장천 공급 부족을 노래했으니 그 주창자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공급부족론의 영향은 광범위했고 위력은 강력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 견해가 진실인 양 보도하는 언론사들이 태반이었으며,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도 대부분 이에 의거해 시장을 진단하고 대책을 제시했다.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까지 공급부족론을 받아들였다.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을 떠올려보라. 이낙연 후보와 박용진 후보는 각각 서울공항과 김포공항을 주택부지로 바꿔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정세균 후보는 공급 '폭탄'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부동산 정책에 대해 항상 개혁적 입장을 견지해왔던 이재명 후보마저 공급부족론을 수용해 대대적인 공급 확대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왼쪽부터), 이재명, 박용진 대선 경선 후보가 2021년 9월 28일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선 후보 TV토론회에 참석, 방송 준비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대선 패배 이후에도 반성은 없었다. 지난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부동산값 폭등의 원인을 제대로 된 공급 정책 없이 세금과 규제를 남발했다는 데서 찾으면서 주택 공급 확대로 서울 집값을 잡겠다고 자신감을 토로하던 것을 기억해보라. 

이처럼 공급부족론을 신념으로 삼아 맹활약을 했던 인사들이 시장 상황이 반전된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가 주택 공급을 안 해서 집값이 올랐다'는 생각을 아직도 품고 있을까. 작금의 집값 폭락세가 공급이 풍부해져서 초래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까. 

천정부지로 올라가던 부동산값이 갑자기 꺾인 이유에 대해서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투기적 가수요가 갑자기 소멸했기 때문이다(투기적 가수요는 안개와 같은 존재다. 갑자기 출현해 팽창하다가 갑자기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공급부족론자에게 묻겠다. 공급 쪽 요인을 가지고 변해 버린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공급부족론자들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금리 인상이 시장 반전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사실을 내놓고 부정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실 금리 하락이 부동산값을 상승시킨다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집값을 폭등시킨 최대 원인은 낮은 금리였음을 입증하는 실증 분석도 이미 나와 있었다. 공급부족론자들은 명백한 원인을 애써 무시하고 가짜 원인을 뇌까려 여론을 오도해 온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 걸까.

이번에 복기를 제대로 해 두지 않으면, 다음번 부동산값 상승기에 수그리고 있던 사이비 해결책이 다시 등장해서 위세를 떨치는 일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인들은 그동안 잘못 판단했음을 자각하고 향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을 굳건히 해두어야 한다. 

우유부단과 과격, 오락가락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인사들도 겸허한 마음으로 지난 정책을 복기하며 반성할 필요가 있다. 문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여 투기를 근절하는 일에 미온적이었다. 그저 부동산값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게 시장을 적당히 마사지하는 일에 몰두했다. 거기에 약간의 주거복지 정책이 더해졌을 뿐이다. 

그러다가 부동산값 폭등세가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자 문 정부는 태세를 전환해 무리하고 과격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주택자 중심으로 취득세·양도세·보유세 등 모든 부동산 조세를 중과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세 부담을 둘러싸고 형평성 시비가 분출했고, 종부세 과세 인원과 세액의 급격한 증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에서 무리한 과세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민심이 급격히 돌아섰다.
  

부동산 조세 상담한다는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2021.12.26 ⓒ 연합뉴스

 
비유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계추를 오른쪽 끝까지 당겼다가 반대 방향으로 밀어버린 것과 같다. 배가 아프다고 찾아온 중환자에게 줄곧 빨간약이나 발라주고 진통제를 주다가, 나중에 견딜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니 개복(開腹)해서 엉뚱한 장기를 건드려 버린 돌팔이 의사와 같다고나 할까. 

개혁 진영의 정책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철저하게 복기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번 개혁 진보 세력이 집권할 때에는 우유부단함과 과격함을 오락가락했던 문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지지율이나 코앞의 표에 집착하는 태도로는 복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 꼭 필요한 것은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는 말로 부동산 투기 근절의 의지를 밝혔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결기다.

윤석열 정부, MB의 부동산 정책 복기하라

윤석열 정부도 과거 정부, 특히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대선 공약집에는 지난 몇 년 동안 주택 가격이 폭등한 원인을 "과도한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인해 수요가 많은 도심의 주택 공급 부족"에서 찾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공급부족론을 수용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도 그랬으니 이를 특별히 잘못했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복기해 보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밀어붙인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재개발 정책(소위 뉴타운 개발)은 서울 시내 곳곳에 흉물을 남긴 채 참담한 실패를 맛보지 않았던가. 공급부족론에 기대어 무분별하게 공급 확대를 추진할 경우 이와 같은 사회적 재앙을 초래하기 마련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조세정책의 무리한 부분을 '정상화'한다는 명분으로 세율, 과세기준, 세부담 상한, 공시가격 현실화율, 공정시장가액비율 등 관련 요소를 다 건드리는 종부세 완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 정부가 어렵사리 수립한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도 무효화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조치가 '부자 감세'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부동산 고액 보유자일수록 혜택이 크게 돌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와 관련해서도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제일 먼저 도로 중간에 있던 전봇대를 뽑는 '이벤트'를 벌인 다음(관련기사: 이명박 당선인과 전봇대 이야기 http://bit.ly/13LHb8), 바로 종부세 무력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때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지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너무도 흡사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수정 계획 및 2023년 보유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23 ⓒ 연합뉴스

2018년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 무력화에 성공한 이후 과세 인원과 세수는 급감했고, 노무현 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추진했던 보유세 강화 정책도 중단되었다. 무력화되기 전에는 종부세 세수 구성에서 주택분이 가장 많았으나, 무력화 이후에는 종합합산 토지분, 별도합산 토지분보다 적은 금액으로 쪼그라들었다. 2016년 이후 수도권 지역의 집값 폭등은 사실상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유세 강화는 한국 부동산 조세제도의 오래된 숙제다. 이 정책 없이 투기를 근절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종부세는 이 정책을 끌고 가는 핵심 수단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들어섰다고 해서 이 세금을 후퇴시키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짓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주택 수를 기준으로 종부세를 차등 과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든지 공시가격 현실화의 목표와 속도를 과하게 잡은 것은 분명 오류다. 종부세를 정상화하려면 이런 무리하고 비합리적인 내용을 바로잡는 일에 집중해야지, 이를 핑계 삼아 종부세 제도 자체를 후퇴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역대 정부 정책 잊은 정부에 좋은 정책은 없다
  
이명박 정부가 했듯이 지금 다시 보유세를 후퇴시킨다면, 이는 부동산 시장의 토양에 투기의 싹을 틔울 '거름'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 싹은 쑥쑥 자라서 10여 년 후에는 또다시 투기 광풍을 불러올 테니 걱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 보유세 무력화 정책의 오류를 깊이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정부들이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직전 바둑에 대한 복기 없이, 또 과거에 치러진 타인 바둑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좋은 바둑을 둘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바둑 하수나 범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격언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떤가. '복기를 잊은 기사에게 좋은 기보(棋譜)는 없다.' 이를 정책에다 적용하면 '역대 정부 정책을 잊은 정부에 좋은 정책은 없다'가 된다. 어느 정치 세력이건 두고두고 명심할 경구(驚句)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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