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6 05:12최종 업데이트 23.01.0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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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6일 지상파 채널 이마헨(IMAGEN)의 메인뉴스 진행자인 시로 고메즈가 전날 밤 자신에 가해진 피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 했다"라는 오프닝 멘트와 함께 시작된 당일 뉴스 대부분은 앵커에 대한 피격 소식으로 집중되었다. 화면 뒤편으로 운전석 쪽 측면 창에 총격을 받은 시로 고메즈의 차가 보인다. 시로 고메즈는 2017년부터 방송사가 제공한 방탄 차량을 이용하고 있어 이번 피격에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 IMAGEN 뉴스

 
"어제 밤 누군가 나를 죽이려 했다."

지난 12월 16일, 멕시코 주요 지상파 채널 중 하나인 이마헨(Imagen) 메인뉴스 앵커 시로 고메즈(Ciro Gómez)의 오프닝 멘트였다.


멕시코의 모든 지상파 방송사들은 밤 10시 30분에 메인뉴스를 내보낸다. 이른 아침부터 속보로 전해진 관련 뉴스를 들은 터라 그에게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략 알고 있었다.

전날(12월 15일) 뉴스 진행을 마치고 늦은 밤 퇴근하던 중 집을 200여 미터 앞에 두고 차량 한 대가 앞을 막아섰고 동시에 측면에서 두 명이 오토바이를 탄 채 그에게 접근했다. 이어 총격이 시작되었다. 총알은 초근접 거리에서 운전석의 측면과 정면 창에 집중 난사되었다. 차 유리에 박힌 총알만 여덟 발이었다.

다행히 앵커가 탑승하고 있던 차량은 방탄기능을 장착하고 있어 목숨을 잃지 않았다. 몇 분 혹은 몇 초의 시간이 흘러갔는지 앵커는 기억하지 못했다. 앞을 막아섰던 차량이 유유히 움직이고 오토바이에 탄 채 총격을 가하던 괴한들이 사라졌지만 앵커는 불과 200미터 전방에 있는 집으로 갈 수 없었다. 방향을 틀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그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했다. 얼마 가지 않아 타이어 한 쪽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음을 감지했고 평소 막역하게 지내던 이웃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현 야당 소속 상원 의원 만리오 파비오(Manlio Fabio)의 집이었다.
 

2022년 12월 15일 23시 10분 퇴근 길에 괴한으로부터 피격 당한 시로 고메즈가 즉각 자신의 트위터에 피격 사실을 올렸고 이어 바로 멕시코시티 시장인 클라우디아 쉐인바움이 자신의 트위터에 시로 고메즈가 올린 내용을 공유하면서 멕시코시티 경찰국과 적극 수사에 임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 Claudia Shinbaum 트위터

 
피격 당한 언론인... 이번엔 좀 다르다

다음 날 아침, 간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시로 고메즈는 자신이 소속된 방송사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현하여 지난 밤 그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낱낱이 진술했다.

같은 시각, 아침 일곱 시 정례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위해 대통령궁 대규모 홀 로비에 들어선 대통령은 그곳에 미리 와 있던 기자들에게 가장 먼저 "힘내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언론인 피살로 악명이 높던 차에 전날 밤 또 한 명의 언론인이 피격되었음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 이날 대통령은 정례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간밤 피격된 시로 고메즈에게 위로를 전했다. 동시에 사건 조사와 범인 검거에 대통령 자신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늦은 밤 퇴근 길 총격을 받았으니 언론인 피격이라는 범주에 들긴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수 년 간 단 한 번도 시로 고메즈에 대한 피살 위협이 감지되지 않았고 협박을 받지도 않았을 뿐더러 피살의 위험이 야기될 만한 마약 혹은 카르텔 관련 탐사취재도 한 적이 없기에 그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피격의 가닥을 어떻게 잡아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간 멕시코의 악명 높은 언론인 피살이라는 틀 안에서 목숨을 잃은 기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점은 그 역시 언론인이라는 점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간의 언론인 피살과는 거리가 멀다. 멕시코의 언론인 피살 피해자들은 더러 사적 부채나 원한 관계로 인한 경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마약 카르텔 혹은 거물급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비리를 탐사하던 중 목숨을 잃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소규모 독립 언론사 소속이거나 소도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22년 한 해 13명의 기자가 활동 중 목숨을 잃었다.
 

멕시코는 기자 살해로 악명이 높다. 2022년 한 해 동안, 멕시코에서 열 세 명의 기자들이 피살되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보다 더 많은 숫자의 기자들이 멕시코에서 피살되었다. 시리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물론 '정상국가' 중에는 단연 1위다. 2000년 이후 22년 간 157명의 기자가 피살되었다. 기자 피살은 대부분 탐사 취재 과정에서 일어난다. 특히 마약 카르텔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피살로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납치되거나 살해 협박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간 피살되거나 실종된 기자들의 사진이 멕시코 대통령 궁 앞 헌법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 Articulo 19

 
대신 시로 고메즈는 오랜 시간 지상파 채널 메인뉴스 앵커로 활동했기 때문에 전장으로 친다면 비교적 안전한 후방의 수뇌부 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시로 고메즈 정도라면 언론인 중에서도 거물급이기에 어지간한 절박함과 위험부담을 수반하지 않고는 그 어떤 세력도 섣불리 피격을 시도하기 힘들다.

피격이 가해진 곳 역시 수도의 고급 주택지였다. 집집마다 대문 밖에 초소를 지어 무장 경비를 두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된 곳이다. 아무리 봐도 그를 제거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쉽게 계산되지 않는다.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기자들과 언론인들은 시로 고메즈에 대한 피격을 현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몰고 갔다.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이하 AMLO)가 언론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조장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간 보수 성향을 갖는 언론을 적대시해 온 결과라는 것이었다. 시로 고메즈가 속한 방송사 역시 보수 성향이 강한 편이고 그 역시 늘 대통령 AMLO와 대척점에 있었으니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결국 시로 고메즈에 대한 피격을 불러왔다는 주장이었다.

대통령과 언론의 갈등 때문에?

즉각적으로 200여 명 가까운 기자와 언론인들이 현 정부의 언론탄압을 규탄하며 성명서를 냈다. 동시에 시로 고메즈의 피격뿐 아니라 악명 높은 언론인 피살에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뉘앙스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규탄 대상이 된 대통령의 반응 역시 즉각적이었다. 언론이 이번 사건을, 당선 이후 보수 진영의 반대를 불사하며 추진해 온 자신의 근간 정책을 방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규탄 성명서를 낸 기자들에 대해 보수왕국의 개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멕시코 현 대통령 AMLO와 언론 간의 갈등은 오래된 문제다. 2006년 대선을 시작으로 2018년 당선되기까지, 그리고 당선 이후 계속하여 보수 성향 언론들과의 갈등이 첨예하게 불거졌다. 당선 이후 부정부패 척결을 제 1과제로 내세우고 그간 방대하게 유용된 기관 예산을 축소하고 이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로 돌리는 과정에서 보수 세력과 끊임없는 갈등이 파생되었다.

그 스스로 '대변혁'이라 부르는 정책을 통해 공공기관의 방대했던 예산을 삭감하고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인과 학생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고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영화 비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보수 성향 언론들은 연일 비판적 혹은 부정적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신과 정책을 비판한 일부 보수 언론의 뉴스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가짜 뉴스'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해왔다. 이에 언론사들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다시 뉴스를 쏟아내며 정부와 대립의 각을 세웠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 간 공격 수위가 거칠어졌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일부 언론사들의 '가짜 뉴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던 대통령은 2021년 6월에는 매일 아침 각 언론사 기자들을 상대로 주재하는 정례 기자회견에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제목의 세션을 신설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이 세션에서 언론사들의 '가짜 뉴스'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확인하며 비판했다.

정례 기자회견장에서 가짜 뉴스로 지적된 해당 언론사들의 기자들과 충돌이 없을 수 없었다. 대통령과 언론의 대립이 갈수록 첨예화되는 가운데, 서로의 공세는 더욱 거칠어졌다. 지난 2022년 11월부터 대통령은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세션을 일주일에 한 번에서 매일 하는 방법으로 횟수를 늘렸다. 그 와중에 일부 보수 언론을 향해서는 외설잡지, 삼류소설 혹은 보수정권의 나팔수라 칭하기도 했다.
 

2022년 7월 6일 오전 정례기자회견에서 대통령 AMLO가 자신에 대한 언론사의 뉴스를 언급하며 가짜 뉴스라고 지적하고 있다. AMLO는 2021년 6월 정례기자회견에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세션을 도입하여 자신과 정부 정책에 대한 가짜뉴스를 확인하고 정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매주 수요일에 이루어지는 주간 세션이었으나 2022년 11월 9일 이후 매일 세션으로 정착시켰다. 대통령 AMLO는 가짜뉴스를 지적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국민들로 하여금 보수 언론의 정보 독점과 횡포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힘과 동시에 가짜 뉴스를 생성하는 언론에 대해 '삼류 소설' 혹은 '저질 잡지'로 규정하고 비판한다. ⓒ 멕시코 정부 YouTube

 
그간 수세에 몰렸던 언론사들은 시로 고메즈의 피격과 동시에 다시 공세를 취하고 나섰다. 근본적 책임을 정부에 물었고 대통령이 언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당장 언론 탄압을 멈출 것을 공개서한으로 요청했다. 동시에 피살과 관련하여 정부 관여를 의심하는 말들과 기사들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일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일축했지만 정부 개입 혹은 책임에 무게를 두는 기사들이 계속 쏟아졌다. 이 와중에 피격 당사자 시로 고메즈는 개인 SNS와 방송에서 '수사 결과가 현 정부에 해가 된다면, 과연 이 정부의 수사기관들은 독립적으로 내 사건을 조사할 수 있을까?'라고 공개적으로 물으며 자신의 피격을 둘러싸고 다시 한 번 정부를 향해 펜을 겨눴다.

진실규명 사라지고... 진흙탕 싸움만

언론인 시로 고메즈가 피격당한 후 20일이 흘러가고 있다. 현 정부와 언론 간의 대립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다시 언론들은 앞 다퉈 대통령의 말들을 자신들의 지면에 쏟아낸다. 언론이 정부 관여설에 대한 의심을 쏟아내는 와중에 지난 12월 20일, 대통령은 정례기자회견 장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혹시 이번 사건이 시로 고메즈의 자작 혹은 조작이 아닌가?'라고 직접 물었다. 다시 그 말이 불씨가 되어 언쟁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통령과 언론 간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시로 고메즈에게 총격을 가한 자 혹은 총격을 지시한 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아쉽게도 그에 대한 뉴스는 전무하다.

사건을 담당하는 멕시코시티 경찰청장과 멕시코시티 시장이 미제 상태에서 수사가 종결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이 나라의 피살 혹은 피격 사건의 경우 미제율이 95%에 달하니, 그들의 단언이 무게감을 갖지 못한 채 공중에 흩어진다. 오직 대통령만이 연일 정례 기자회견장에서 멕시코시티 시장 이하 수사기관장들에게 조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난 12월 말에서야 피격 당시 시로 고메즈의 차량을 막아섰던 용의 차량이 발견되었다. 사건 현장으로부터 14km 떨어진 곳이었다. 차량 소유자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통상 도난 차량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뉴스의 전부다. 방치가 아닌 주차 상태였다고 하지만, 누가 그 곳에 주차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멕시코의 거물급 언론인 시로 고메즈가 늦은 밤 귀가 중 피격을 당한 후 수사 당국은 보름 간 그 어떤 단서도 잡지 못하였다. 12월 30일이 되어서야 용의 차량(사진 속 검은 차량)을 발견하였는데 사건 현장으로부터 불과 14km 떨어진 곳에 주차된 상태였다. 이후 다시 닷새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차량 소유주와 그 곳에 차를 주차한 이에 대해선 다시 오리무중 상태다. 멕시코의 경우 아직 전 국민 지문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라 지문 감식을 통한 범인 특정이 불가능하다. ⓒ IMAGEN 뉴스 캡처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점점 시로 고메즈 피격과 관련한 뉴스가 사라진다. 외부자의 관점에서나 실망스러울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차량을 운전했던 자들이나 오토바이에 탑승하여 시로 고메즈에게 총격을 가했던 자들이나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이곳 멕시코 사람들은 그간 학습된 촉으로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 그게 이곳에서 자행되는 살인 청부를 둘러싼 공공연한 계산법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킬러들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특히 청부 단가가 높을수록 더욱 그렇다.

언론들도 '이미 이 세상에 없을 텐데 어디에서 그들을 검거할 것인가?'라는 말과 기사를 흘리며 서서히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오직 대통령만이 연일 수사 촉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뉴스 목록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시로 고메즈 피격 사건이 그나마 대통령의 다소 거친 수사 촉구로 간신히 뉴스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 그(시로 고메즈)에게 총을 쐈는지, 왜 쐈는지, 끝까지 추적해서 밝히라.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고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다.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이 나라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마지막 보고를 받겠다."

설령 총을 쏜 자들이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라도, 일개 시민들은 누가 총을 쏘게 했는지, 왜 쏘게 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부디, 이번만큼은 대통령 AMLO가 연일 포효하듯 수사를 촉구하며 남기는 말들이 한시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적 장치의 하울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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