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2 07:12최종 업데이트 23.02.0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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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화장실 입구에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역무원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권우성


2022년 서울 한 지하철 역사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이 한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피해자를 집요하고도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던 장본인, 전주환이었다.

그는 이미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피해자에게 또다시 거리낌 없이 접근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은 분노했다. 전주환은 스토킹 등 범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1심 징역 9년이 선고되었고, 살인사건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은 스토킹범죄의 심각성과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을 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스토킹 행위가 범죄로 규정된 건 최근(2021년)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법은 스토킹에 관대했다. 일반 범죄가 아닌 경범죄 중에서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되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됐다. 그나마도 몇 만 원의 범칙금만 내면 전과도 남지 않았다. 이런 탓에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가해자는 범죄를 중단하기는커녕 오히려 추가 범행을 저지르는 일도 생겼다.

단순 스토킹으로 시작한 범죄가 폭행, 협박, 성폭력, 심지어는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로까지 이어지면서 스토킹은 사회 문제가 되었다. 국회는 심각성을 깨닫고 2021년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범죄 처벌법)을 만들었다. 이로써 '스토킹'이라는 용어가 법전에 처음 등장했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 어떤 내용 담겨 있나

스토킹범죄 처벌법은 '스토킹 행위'에 대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법이 예시로 든 스토킹 행위는 5가지 유형이다.

①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② 주거, 직장, 학교 등(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③ 우편, 전화, 팩스, 정보통신망을 이용,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④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⑤ 주거 등 또는 그 부근에 놓인 물건 등을 훼손하는 행위


과거엔 지나친 순정 정도로 여겼을 행동도 지금은 스토킹 행위가 될 수 있다. 가령 ▲짝사랑한다는 이유로 따라다니거나 학교·직장 앞에서 기다리는 일 ▲집으로 선물·꽃배달을 하는 행위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만일 상대가 거부의사를 밝혔고 불안이나 공포를 느꼈다면 스토킹 행위가 될 수 있다. 스토킹 행위는 연인 등 남녀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동성, 지인, 이웃, 낯선 사람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이유도 따지지 않는다.

주목할 점이 있다. 이런 행위가 있었다고 하여 곧바로 범죄가 성립하진 않는다. 현행법상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뤄졌을 때 비로소 '스토킹범죄'가 된다. 다시 말해 반복성이 없는 단발성 스토킹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피해자는 공포를 느꼈을지라도 범죄로 인정되지 않아서 처벌이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다만 단발성 스토킹 행위라도 피해자가 신고하면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은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접근금지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긴 하다. 스토킹범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스토커의 지속적인 '부재 중 전화', 범죄인가?
 

2022년 9월 23일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시청 인근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대책촉구 추모문화제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또 한가지 최근 논란이 되는 쟁점이 있다. '스토커에게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부재 중 전화를 스토킹범죄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법원마다 판사마다 유·무죄가 엇갈리고 있다(참고로, 위의 5가지 스토킹 유형 중 ③번을 눈여겨보라).
 
A씨는 알고 지내던 여성 B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의 휴대전화로 '지금 며칠째 너 찾고, 내일도 올라온다', '너무 화가 나서 이젠 악이 받친다', '100배 갚아줄게 기대해라' 등의 문자메시지와 B씨 어머니의 집과 차량이 나오는 사진 등을 보냈다. B씨가 전화번호를 차단한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이번엔 타인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B씨에게 수차례 협박 문자를 보냈고, 자정 무렵 6차례를 비롯하여 약 30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B씨의 휴대폰엔 부재 중 전화 표시가 남아 있었다.
 
1심 법원은 A씨에게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을 적용, 징역 4월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2심 법원은 전반적으로 A씨의 범죄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부재 중 전화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왜일까.

"부재 중 전화 표시만으로 스토킹 아니다" 무죄 판결

우선, 스토킹 행위가 인정되려면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이 도달"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A씨가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만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상대방의 전화에 부재 중 전화가 표시되었더라도 이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여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2심 법원의 판단이다.

1심과 형량은 같았으나 2심에서 부재 중 전화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이번엔 검사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현재 이 사건을 심리 중이다.

이 사건 외에도 지속적인 '부재 중 전화'가 스토킹범죄인지에 대해서 법원의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

스토킹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대법원의 과거 정보통신망법 위반 판례를 보면 "전화기의 벨소리는 전화를 통하여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이 아니므로, 반복된 전화기의 벨소리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케 하더라도 법 위반이 될 수 없다"(대법원 2004도7615 판결 등)는 입장이었다. 무죄를 택한 판결들은 대체로 이 판례를 인용하고 있다.
 

ⓒ 김용국

 
하급심의 무죄 판결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상대방 전화기에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이 아니다. '부재 중 전화'가 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전화기 자체의 기능일 뿐 가해자가 송신한 '글'이나 '부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법에 따르면 스토킹범죄는 "전화,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 등(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가 있어야 하나 '부재 중 전화' 자체로는 글, 말, 음향 등이 '도달'되었다고 볼 수 없다.


반면, 유죄로 결론 낸 판결들은 스토킹범죄의 입법 취지에 주목,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부재 중 전화는 정보통신망이 아닌 전화를 이용해 '음향'을 도달하게 한 행위다. 가해자가 자신의 전화를 이용하여 피해자 전화기가 만들어 낸 음향 등(전화기의 벨소리, 부재 중 전화 표시)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도 스토킹이다.
'부재 중 전화'를 건 시간, 피해자의 불안감·공포심 등을 고려하라. 지속적·반복적으로 부재 중 전화 표시가 나타나게 한 행위는 글이나 부호 등의 도달만큼이나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고, 이런 해석이 다양한 스토킹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입법취지에 부합한다.
 

"부재중 전화가 주는 불안감․공포심 고려" 유죄 판결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스토커의 반복적인 부재 중 전화에 대해, 법률 문언대로 엄격하게 해석하여 '무죄'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스토킹범죄 처벌법의 제정 취지를 무색케 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자. 스토커의 전화를 직접 받아서 공포를 느꼈을 경우만 협박이나 스토킹범죄가 성립하고, 공포심에 부재 중 전화로 남겨둔 경우는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고통일 뿐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가해자의 지속적인 전화통화 시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한 판결은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법의 확장해석을 통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해결책은, 대법원이 판례로 교통정리를 하거나 그것이 힘들다면 법률 개정을 통해서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이른 시일 내 정리가 필요하다. 스토킹범죄처벌법인 시행 중인 지금도, 스토커의 부재 중 전화는 아직 법의 사각지대인가.

[해설 : 스토킹범죄처벌법, 어떤 내용 담고 있나]

스토킹 행위가 발생했을 때 수사기관의 조치로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가 있다. 응급조치란 경찰이 신고 즉시 현장에 나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 상담소나 보호시설로 안내하는 일을 말한다. 또 경찰은 스토킹행위가 지속·반복될 우려가 있고 긴급한 경우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스마트폰 등 통신 금지 등이 그것이다. 경찰은 긴급응급조치 후 법원에 48시간 이내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스토킹범죄가 재발될 우려가 있는 경우엔 검찰이 법원에 잠정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잠정조치로는 가해자에 대해 ▲스토킹범죄 중단 서면 경고 ▲100미터 접근금지 ▲통신 금지 ▲1개월 구치소 유치 등을 할 수 있다.

스토킹범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흉기를 사용한 스토킹범죄라면 최장 징역 5년까지 늘어난다. 유죄판결 시에는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수강명령을, 집행유예 시에는 보호관찰·사회봉사를 가해자에게 함께 부과할 수 있다. 스토킹범죄는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다.

그런데,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스토킹이 중범죄로 발전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 법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일 먼저 거론되는 것은 반의사불벌죄 조항이다. 이 조항 때문에 가해자 측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합의를 종용하거나 2차 가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성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을 폐지했듯이 스토킹범죄도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스토킹을 '행위'와 '범죄'로 나누어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 반복적으로 한 경우만 범죄로 보는 조항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두 차례의 스토킹 행위 이후에도 바로 중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는 만큼 스토킹범죄를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의 응급조치나 긴급조치만으로 범죄를 막기는 역부족이므로 ▲온라인 스토킹 행위 구체화 및 처벌 신설, ▲잠정조치 시 전자장치 부착 방안, ▲피해자에게 접근금지신청권 부여, ▲피해자 신변안전조치 강화와 국선변호사 제도 도입 등도 보완할 점으로 지적된다.

스토킹범죄는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 그전에, 국가가 나서서 초기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더 큰 사고 발생을 막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최근 스토킹범죄 처벌법과는 별도로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7월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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