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이 중 처음 검정을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는 보수적 시각으로 현대사를 서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과서 표지에 3·1운동, 88서울올림픽을 연상시키는 그림과 함께 연평도 포격사건 그림을 넣은 모습.
연합뉴스
거듭 고백하건대, 자칭 보수 세력이 만든 제대로 된 한국사 교과서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어차피 역사란 해석의 학문이고, 공론의 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수렴되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의 '품'이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좌우의 날개로 나는 건 새뿐 아니다. 다사다난했던 우리 역사도 좌우의 날개를 펼쳐 날 때라야 온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번 한학평 교과서는 좌우를 떠나 교과서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수준 미달이다. 기존의 역사적 상식을 무시했고, 철 지난 색깔론을 동원하는가 하면, 금기시된 식민사관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예컨대, 6.25 전쟁 이후 남과 북에서 이승만과 김일성의 독재 체제가 수립되었다는 건 이미 역사적 상식인데, 이승만의 '독재'는 '장기 집권'이라는 용어로 은근슬쩍 지웠다. 1946년 이승만의 '정읍 발언'은 분단으로 치달은 직접적 계기인데도, 그 책임을 오롯이 북에 넘기고 있다는 점도 위험하다.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한 수만 명의 제주도민과 여수, 순천 지역 양민들을 학살한 책임마저 북에 떠넘기려는 술책이다.
교과서 표지에 지난 연평도 포격 사건 삽화를 내건 것도 뜬금없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실시된 우리 군의 서해상 사격 훈련을 문제 삼아 북한이 도발한 것으로, 당시 국내외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북한의 정권 안정을 위한 기도라는 분석부터 과거 정부의 '햇볕 정책' 승계를 거부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의 모순적 상황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표지의 사진이나 삽화는 교과서 발행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6.25 전쟁 관련 내용도 아니고, 연평도 포격 사건을 강조한 건 대놓고 반공, 반북의 기치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가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도 '끔찍한 삶을 살게 했다'는 한 줄짜리 문장으로 퉁치고 있다. 일제에 부역한 지식인들의 공과를 함께 평가하자는 탐구활동 주제에서는, '부역'이라는 표현조차 감춘 채 '협력'이라는 단어를 썼다.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하고 정부 수립 후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대표적인 독립운동가('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명'에 포함)로 앞세운 건 독립운동사를 희화화하는 행태다. 민족시인 윤동주와 친일 문인 서정주를 양시론적 입장에서 비교하는 건 역사를 타락시키는 행위다. 양시론과 양비론은 역사교육의 금기다.
눈에 띄는 건, 한국사 교과서 '1'과 '2' 두 권 중 2학기 때 배우게 되는 2권의 내용이 유독 나머지 8종 교과서와 극단적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학평 교과서 1권의 경우도 과거 국정교과서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여있어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우파 '의 성과가 이 교과서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