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
▲ 2021년 5월 18일(현지시간) 폴 러캐머라 장군이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엔군사령부(UNC)는 미국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미국 당국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한다. 유엔사는 미국이 지도하는 독특한 다국적 군사 사령부이다. 유엔사는 유엔 평화유지군 조직이 아니다."
유엔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의 말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부·한미연합사·유엔사 사령관이 지난 3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 담긴 내용이다. 명칭과 달리 유엔사가 유엔이 아니라 미국의 관할 기관임을 분명히 한 셈인데, 이건 러캐머라가 '팩트 체크'를 해준 것에 불과하다.
이 내용을 접하면서 러캐머라가 2021년 5월 인준 청문회에서 한 발언이 떠올랐다. "미국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미국 당국이 부여한 임무"에 관해 짚이는 게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 공화당의 한 상원의원이 '주한미군이 대만으로 전개되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지자 러캐머라는 "한국군과 유엔사가 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매우 중대한 함의를 품고 있는 발언이었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 옵션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해 왔다. 그런데 미국으로선 크게 걸리는 게 있다. '주한미군을 차출할 경우 그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이냐'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이에 대한 답을 한국의 군사력 강화와 유엔사 활성화에서 찾고 있다. 러캐머라의 답변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주목해야 할 일련의 움직임
실제로 최근 유엔사는 크게 강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유엔사 회원국들이 한미연합훈련에 참관단을 파견하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일부 회원국들이 전투 부대를 파견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코만도 부대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미연합상륙연습인 '쌍용훈련'에 참여했다.
또 과거엔 유엔사 회원국이 한국전쟁 참전국들로 한정되었던 반면에, 최근에는 그 문호를 개방해 독일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일본의 유엔사 가입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유엔사 가입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주목할 움직임은 있다.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필리핀과 잇달아 '원활화 협정'(RAA)을 맺었다. 이 협정은 상호 간 군대 파견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은 유엔사 전력 공여국들이고 유엔사 후방기지는 일본에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유엔사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믿고 넘어가면 될 일일까? 여기엔 동상이몽이 도사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조차도 경계하는 시나리오
▲ 한미 해군·해병대는 8월 26일부터 9월 7일까지 경북 포항 일대에서 24년 쌍룡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은 지난 1일 포항 독석리와 화진리 해안 일대에서 해병대 마린온 상륙기동헬기가 미 함상 이착함 자격 인증 훈련(DLQ)을 진행하는 모습. ⓒ 해병대사령부
유엔사의 실소유주인 미국, 후방기지가 있는 일본,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는 전력공여국들, 신입 회원국인 독일, 일본과 원활화 협정을 체결한 나라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조선(북한)보다는 중국, 보다 구체적으로는 양안 분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적이 유엔사가 대만 유사시에 직접 개입하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간접 개입'을 염두에 두고 보폭을 넓히고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유엔사 회원국들이 주한미군의 공백을 메워줄수록, 일본과 원활화 협정을 체결한 국가들이 주일미군의 공백을 메워줄수록, 미국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대만 유사시에 투입하는 것이 원활해질 수 있다. 대북 억제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말이다.
이는 대한민국 안보에 중차대한 문제이다. 혹시라도 중국-대만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미국이 주한미군을 여기에 투입한다면, 발진기지를 제공한 한국도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이는 윤석열 정부조차도 경계하는 시나리오이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유엔사 강화, 그리고 한미일 삼각동맹 추구를 반색하고 있다. 묻지마식 친일 행보도 대북 억제와 "자유의 북진"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정작 미일동맹 및 이들과의 동지국들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윤 정부가 미일동맹에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