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만든 탱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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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76년 와인 제국에 멸시받던 야만족들이 유럽의 주인이 된다. 맥주 민족 게르만이 와인 나라 서로마를 무너뜨린 것이다. 비대해진 로마는 서기 395년 동로마와 서로마로 갈라진 상태였다. 330년 콘스탄티노플 천도 이후 로마의 추는 이미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9세기 새로운 서로마 황제의 관을 쓴 샤를마뉴 대왕이 나타나기 전, 초기 중세는 혼돈의 시대였다. 게르만족들이 기독교 중심으로 유럽을 재편하면서 맥주는 민중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술이 된다. 맥주잔도 다양한 재질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 12세기 연금술이 발전은 금속 맥주잔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여기에는 이슬람 제국의 영향이 컸다. 이슬람 제국은 동로마와 교류를 바탕으로 수학과 화학에서 큰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유리 기술도 이때 전수됐다. 동로마 유리 기술은 이슬람 제국으로 넘어와 8세기부터 고도로 발전했다. 실크로드와 한자동맹은 아름다운 이슬람 유리를 중국과 인도 그리고 유럽 곳곳으로 퍼트렸다.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 문명과 기술은 중세 유럽 장인들을 자극했다. 이슬람의 연금술과 유리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곳은 이태리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 장인들은 12세기부터 독특하고 정교한 유리 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유리가 맥주잔의 중심으로 들어가기까지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유리잔은 한참 동안 상류층들의 전유물이었다.
맥주잔, 예술에 다가가다
르네상스 이후 맥주잔에도 와인잔 못지않은 정교한 문양이 깃들기 시작했다. 세라믹 재질 맥주잔은 다루기 쉬웠으나 단순하고 투박했다. 맥주잔에 화려함을 제공한 건 금, 은, 주석 같은 금속이었다. 금속을 정교하게 다루는 기술은 길드에 들어가기 위한 척도가 되기도 했다. 그중, 가격이 저렴하고 가공이 쉬운 주석이 중요한 재료로 떠올랐다. 파리가 흑사병을 옮긴다는 소문이 맥주잔에 주석 뚜껑을 선물했다.
16세기 들어서야 유리 맥주잔이 상류층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 세기 전 베네치아 장인들이 개발한 크리스털 유리가 큰 역할을 했다. 맥주를 좋아했던 독일 귀족들은 투명한 잔 표면에 가문의 문양이나 상징을 그리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유리 불기와 접합 기술의 발달은 탱커드 모양의 단순한 맥주잔을 비커, 플루트, 고블릿, 성배 모양으로 탈바꿈시켰다. 다소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맥주잔도 조금씩 예술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