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8 13:31최종 업데이트 24.11.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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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공화당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행보에 거침이 없다. 고위직 인선 속도가 21세기 전임 대통령들보다 5배 이상 빠르고 자신의 첫 임기와 비교해도 약 4배 빠른 수준이다. 인선 성향은 대체로 '드림팀'이라기보다 충성파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인선에서 비롯될 부실 위험 역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인선이 마무리되자 정책 발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중국산 모든 제품에 추가 관세를 예고했고, 북미 역내 국가들에도 예외 없는 관세 폭탄을 공언했다. 그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25일 자신의 사회망 트루스소셜에 밝혔다.


그가 선보이는 인사와 정책 방향을 보면, 와신상담 끝에 드러나는 거침없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이러한 자신감은 단순히 두 번째 임기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는 4년간 컨트롤 타워 안에서 미국을 지휘했으며, 또 다른 4년은 바깥에서 관찰했다. 그는 지금의 미국이 과거와는 다른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하다.

트럼프 1기 시절, 그의 스타일과 언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가 '화염과 분노'다. 2017년 8월 8일,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최고조로 달하던 시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북한이 미국을 계속 위협한다면,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이 발언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갈등을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그가 사용하는 표현뿐 아니라, 그에 대한 평가 역시 국가 지도자에게는 이례적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정신의학 전문가들조차 그를 공감 부족, 공격적, 충동적, 분열적이라 묘사했다.

이후, 그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이러한 부정적 관점과 무관하지 않은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2기 집권을 앞둔 그를 둘러싼 우려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그의 인성과 통치 스타일에 대한 이러한 평가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 복귀 배경과 향후 정책 분석에 인성적 요인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금의 미국은 다른 미국

1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마러라고 저택 근처에서 지지자들이 깃발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화려하게 미국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확보된 선거인단 수를 기준으로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이는 유권자들이 그에게 재신임을 보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제정신이 아니다' 식의 감정적이고 조소 섞인 평가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크다. 지금의 미국은 다른 미국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21년 2월 4일 세계를 향해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동맹과 협력관계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었다. 하지만 4년여 지난 지금, '돌아온 미국'은 실상 '트럼프의 미국'이었다. '바이든의 미국'은 시대에 뒤처진 뒷북에 불과했던 셈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창당 이래 몇 차례 중요한 이념적 변신을 했다. 기독교 윤리 중심의 엘리트주의가 링컨의 자유주의적 보수를 거쳐,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에 기반한 복음주의적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보수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으로 다시 한번 주류가 교체되는 변화를 겪었다. (관련 기사 : 시퍼렇게 날 선 칼 갈고 돌아온 대통령, 이제 시작이다 https://omn.kr/2ayvx)

단순화의 위험을 감수하자면 미국의 200년 역사를 관통하는 보수의 이념은 이처럼 크게 4단계로 요약된다. 19세기 전반기를 지배하던 보수 이념이 연방주의,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윤리적 보수였다면, 중반 이후 공화당의 창당과 함께, 강한 연방 질서와 인권적 가치가 혼합된 미국적 보수 이념이 탄생하게 된다. 링컨의 공화당이 이에 해당한다.

20세기 전반기의 보수는 강한 연방주의 탈피와 자유시장 옹호로 대변된다. 뉴딜정책 같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사업과 복지국가를 반대했다. 반면, 20세기 후반부터 보수는 고립주의를 버리고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개입주의 외교로 전환했다. 신보수(네오콘)의 등장이 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보수의 변화는 세계 경제와 국제관계의 흐름, 그리고 미국의 위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립주의 시기의 미국은 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응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네오콘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는 야망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네 단계로 진화해 온 미국의 보수는 이제 또다시 근본적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개입주의를 멋지게 포장한 '세계화'는 더 이상 미국에 매력적이지 않다. 한때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보장하는 주요 도구였지만, 이제 그 빛을 잃었다.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중심의 글로벌 경제는 오히려 미국의 경쟁국들만 성장시키고 있다.

반면,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시장을 가진 미국은 세계화 없이도 자국 경제를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또한,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힘도 보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화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줄어든 반면, 고립주의를 통해 얻는 상대적 이익은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세계화'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이 주창하는 국제 질서의 주요 레토릭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제 미국이 원하는 세계화는 자국에 유리한 하이테크와 정보산업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 집중될 것이다. 이러한 산업에서만큼은 미국이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주의'의 탄생

26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라 카시타 가르시아스빌에서 국경 장벽 건설이 진행 중이다. 텍사스주는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대량 추방을 위한 시설을 짓기 위해 여의도 면적의 2배가량 되는 567헥타르의 땅을 제공했다.연합뉴스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세계화는 미국이 주도권을 유지하며 다른 국가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방향이기도 하다. 하이테크와 정보산업은 과거 군사력만큼 미국이 국제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이 직면한 재정적 부담과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륙 세력의 저항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이 국제 질서를 주도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첨단 산업의 막강한 영향력을 활용한 산업 표준화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트럼프주의'의 탄생을 초래했다. 트럼프의 독특한 인성과 개인적 스타일은 그의 정치적 상징성을 강화했지만, 트럼프주의는 단순히 그의 개인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미국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국제적 환경 변화의 필연적 산물이다.

트럼프주의는 미국이 기존 국제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기득권에 안주하며 제자리에 머물 때, 국민의 불만과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다. 그의 리더십을 단순히 과격하거나 비전통적 일탈로만 치부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위험이 크다.

미국의 20세기 전반기를 민주당이, 후반기를 네오콘의 공화당이 주도했다. 이제 21세기 전반기에는 네오콘을 뛰어넘은 트럼프주의가 주도할 준비를 하고 있다. 트럼프주의는 20세기 초 고보수(팔레오콘)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 성격을 계승하면서도 탈이념적 포퓰리즘으로 재무장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의 미국은 상당한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야생마 같은 거친 행보로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그의 든든한 지지 세력은 민주주의적 교양이 많이 부족하다. 코로나19 위기 당시 보여준 위기 대응 능력 역시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팬덤 정치와 차별적 인간관은 미국을 분열의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쨌든, 미국의 보수는 물론 미국 사회 전체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들의 다수가 기대하는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과연 그들에게 또 다른 복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마가'(魔家, 이단)가 될 것인가? 훗날 역사는 그를 또 다른 레이건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현대판 돈키호테로 묘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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