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2 18:47최종 업데이트 24.12.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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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기자말]
며칠 후 아들(자폐성 장애)은 중학교를 졸업합니다. 내년이면 드디어 고등학생이에요. 언제 이렇게 컸을까요. 아들의 장애를 처음 진단받고 막막했던 기억, 타인의 시선에 쫓겨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도망쳤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야속할 정도로 정직하게 흐르네요.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은 이제 특수교육에 있어서도 기존과는 약간 다른 방향성을 띠게 될 거예요. 성인기 진로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직업교육이 강화될 것이고, (특수학교이기에) 고교학점제를 통해 '수준에 맞는' 특수교육을 받을 기회가 조금은 더 보장될 겁니다.


유치원부터 시작하면 아들이 특수교육대상자로 살아온 지도 어언 11년입니다. 그동안 특수교육을 받으면서 눈부신 성장을 했고 어쩔 땐 퇴행을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직 특수교육대상자로서의 삶이 3년 더 남은 상태에서 특수교육에 바라는 점을 얘기해 봅니다.

아들이 타인과 어울려 살 줄 아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학령기 동안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그러한 경험을 쌓아갈 수 있도록, 교육부와 교육청 및 교사와 학부모 모두의 뜻이 한데 모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

"학령기 시절에 배워야 할 정말 중요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사회성이다"unsplash

성인기 발달장애인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알아보고 취재하기 시작한 게 아들이 초등학교 3~4학년일 무렵이었어요. 아들이 어렸던 저는 '발달장애인의 엄마'임에도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삶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었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는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잘 살기 위해선 열심히 재활치료 받고 학습을 열심히 시켜 최대한 기능이 좋은 청년으로 자라야 할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거예요.

제가 본 성인기 삶에서 진짜로 중요했던 건 타인과의 관계 맺기 능력이었어요. 타인과 어울려 사는 법을 아는 성인은 장애 정도에 상관없이 여러 정책과 제도를 활용해 낮 생활과 밤 생활을 잘 살아낼 수 있지만, 그 능력을 습득하지 못한 채 성인으로 자라버리면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생 때까진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을 가야만 나머지 인생도 잘 살 줄 알았지만 실제 사회로 나와 살아보면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잖아요.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발달장애인의 길고 긴 성인기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관계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라고요. 한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 더하기까지 할 줄 아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학령기 시절 그토록 강조되던 일상생활자조능력도 마찬가지였어요.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그만큼 삶이 편해지고 갈 곳도 할 것도 많긴 했지만 사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은 중증의 장애가 있으면 타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마련돼 있었습니다.

성인기 삶에 대한 취재를 통해 그러한 현실을 실제로 목도하면서 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학령기 시절에 배워야 할 정말 중요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사회성이다"라고요.

학교 현장의 현실

2019년 9월 2일 공립특수학교인 서울 서초구 서울나래학교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현재의 통합교육이나 특수교육 시스템 안에선 발달장애인의 사회성을 향상시키는 교육을 하는 게 많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초등학생 때까진 그나마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중등 이후부턴 사실상 서로가 관계 맺을 기회를 애써서 차단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예요.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그렇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일단 통합교육에선 중학교부터 비장애 학생들의 입시가 본격적으로 중요해지는 시기이기에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활동은커녕 특수교육대상자가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는 게 아마 학교생활 제1의 미덕이 되는 슬픈 현실일 거예요.

특수학교 안에선 덩치가 커진 학생들끼리 붙어있다가 학부모끼리 얼굴 붉힐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서로를 서로에게서 떨어트려 놓는 게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일 거예요.

그렇게 또래와의 관계를 통해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인으로 자라버린 발달장애인은 이제 성인기의 삶을 살면서 온갖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지만 특수교육의 품 안에 있는 동안엔 이런 현실이 아직 와닿진 않아요.

왜냐하면 학령기 마지막인 고3 막바지에 취업을 하거나 평생교육센터에 들어가거나 주간활동서비스를 받거나 주간보호소 등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사회성으로 인한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거든요.

그때만 해도 기능발달이 좋고 도전적 행동이 없는 당사자들이 갈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학령기 교육의 초점도 그러한 방향성에 맞춰집니다.

하지만 우리 자녀들의 삶은 너무 길어요. 20대 초반만이 성인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 길고 긴 성인기의 시간 안에선 기능의 높고 낮음이나 장애 정도의 경함과 중함이 아닌, 얼마나 타인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사람인가(얼마나 타인의 지원을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인가) 여부가 삶의 형태마저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더라고요.

타인과 잘 어울려 산다는 건 단순히 문제행동이 없거나 지시 따르기를 잘하는 게 아닙니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예요.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타인과 실제로 여러 관계를 맺어보는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 의지가 중요

특수학교인 세종누리학교 학생들이 지난 5월 14일 학교 인근 숲 체험 시설에서 '숲에서 놀(놀며) 자(자란다)'란 숲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연합뉴스

성인기 삶을 위한 학령기 교육. 학령기와 연결되는 성인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지정책과 특수교육이 발달장애인의 '삶'을 외면한 채 분야의 전문성만 지향하다 보면 그 안에서 소외되는 건 정작 우리 자녀와 제자들입니다.

실생활 밀착형 교육과 모두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법정 교육 인원이 바뀌거나 교육과정이 개정되거나 교수법이 바뀔 필요도 있고요. 10대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또래와의 관계 맺기'를 반드시 배우고 넘어가는 게 학령기 시절에 해야 할 마땅한 일임을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 맞는 말 같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학습에 관한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사회성 교육에 있어서는 학부모들의 의지와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학교에서 해가 갈수록 사회성 교육이 실종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학부모 민원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마다 학부모들의 가열한 민원이 이어지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학생들을 위한 일이야"라며 용기를 내 사회성 교육에 나설 교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뜻이 모아져야 합니다. 단순히 현재의 특수교육, 학령기만을 보는 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성인기 삶 전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상태에서 현재의 학령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해요. 그러면 중요 우선순위가 달라지더라고요. 교육과 양육의 방향성이 변하더라고요.

이제 아들은 학령기 최고의 형님인 고등학생이 되네요. 187cm 신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뽀로로와 아이쿠를 찾아 보고 엄마아빠에게 뽀뽀하자며 입술을 쭉 내미는 이 녀석이 제 아들입니다.

아들 때문에 눈물 흘릴 날도 많고 학교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지만 그럼에도 어쩌겠어요. 나아가야죠, 엄마니까. 부모니까. 내가 주저앉아 버리면 아들의 삶도 같이 주저앉게 되니까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남은 학령기 3년 동안 아들이 꼭 배워야 할 것들을 학교에서 배우고 성인기에 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길 바랍니다. 제 아들만이 아닌 모든 특수교육대상자의 학령기 시절이 즐겁고 행복하고 의미가 있길 바랍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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