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2020년 11월 4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개표 중단 소송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AP=연합뉴스
그러나, 일부 기기에서 메모리카드 오류가 확인되었다. 트럼프 측은 이러한 개별적 문제들을 확대해 법적 소송과 청문회를 제기하고,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통해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완벽한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기라고 주장했고, 미국의 느슨한 신원확인 체계와 개표관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며 선거부정 의혹이 힘을 얻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불법이민자 증가 현상은 이러한 선거부정 의혹에 더 큰 동력을 제공했다. 수백만 명의 불법이민자들을 들여와 부정 투표에 동원함으로써 선거를 조작하려 한다는 트럼프 진영의 주장이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불법이민 문제가 선거부정 의혹과 맞물리면서 한층 더 강한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부정선거 의혹을 주도했던 줄리아니는 허위 주장으로 인해 뉴욕 주와 워싱턴D.C에서 변호사 자격이 취소되었고, 조지아 주 선거관리담당자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2023년 12월,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해 약 1억5천만 달러(한화 2000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이 부정선거 의혹을 그대로 보도했던 <폭스 뉴스>역시 2023년 4월, 7억 9천만 달러(한화 1조원)라는 거액의
배상금 지급에 합의했다.
도미니언과 줄리아니 간의 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실제로 트럼프 진영은 2020년 대선 이후
60건이 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단 한 건도 승소하지 못했다. 조직적인 부정선거의 증거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진영은 이러한 법적 공방과 여론전을 통해 지지기반을 강화하며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복음주의 개신교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농촌 지역의 교회를 중심으로 저학력층, 저소득층, 노년층 등 디지털 정보에 취약한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성공 사례를 한국에서도 재현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선거제도는 1962년 도입된 주민등록제도가 근간이다. 모든 국민에게 고유한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고, 만 18세가 되면 자동으로 유권자가 된다. 미국처럼 선거 때마다 사전 등록이 필요 없다. 투표할 때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공식 신분증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 시스템이 선거의 투명성을 보장한다.
개표 관리 체계도 현격히 다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국의 모든 선거를 통합 관리한다. 서울이든 제주든, 부산이든 광주든 똑같은 투표용지, 똑같은 개표 방식이 적용된다. 투개표 과정은 3중 보안 체계로 운영된다. 투표용지 분류기로 1차 분류를 하고, 사람이 직접 세어보는 수개표를 거친 뒤, 다시 전자계수기로 확인한다. 각 정당 참관인이 전 과정을 지켜보며, 모든 투표용지는 추후 검증을 위해 보관된다.

▲2020년 5월 28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4·15 총선 부정선거 주장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사전투표 및 개표 공개 시연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렇듯, 필자가 아는 한, 한국의 선거제도는 트럼프 진영이 제기했던 것과 같은 부정선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 개신교계는 미국의 부정선거 논란을 무분별하게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나라의 선거제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기본적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다.
문제는 이러한 무지가 개인의 의사표현 자유의 범위를 훨씬 넘어 비상계엄 내란 사태와 같은 비극적 정치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향후 이 부정선거 음모론은 한미동맹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부 보수 개신교계가 트럼프 진영의 핵심 지지기반인 미국 복음주의 세력과 연대해 부정선거 주장을 확산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국내 정치 문제를 넘어 한미 관계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선제적 대처가 필요하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엄중한 책임을
선거 관리의 투명성만 놓고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앞서 있다. 부정 가능성도 거의 없다. 개표 부정사례로 고소, 고발이 되더라도 적법한 법적 절차를 통해 재검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선거 부정 음모론자들은 일부 계층이 가진 왜곡된 '미국 콤플렉스'를 교묘히 이용해, 미국보다 한국의 부정선거가 선관위 서버 해킹과 조작을 통해 더 대규모로 진행됐다는 식의 허위 정보를 확대재생하고 있다.
이 음모론자들은 디지털 취약 계층의 특성과 소셜미디어의 확증편향 알고리즘을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 및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 현재의 탄핵 국면에서도 계엄 옹호세력으로서 그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듯하다. 윤석열은 이들과의 적극 연합을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가 그렇게 해서 성공했듯이.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전환! 서울비상행동 발족 기자회견’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렸다.
권우성
계엄 옹호 연합은 부정선거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으로 판명될수록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12.3 비상계엄 관련 수사를 계기로 선관위 서버 해킹과 데이터 조작 의혹의 실체도 명명백백하게 국민들에게 알리는 공론화 과정이 이어지길 바란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개인의 의사표현 자유나 망상으로 치부하고 넘길 것이 아니라, 보다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비상계엄 내란 위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는가. 향후 이들에 대한 법적 및 정치적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 우리 사회가 보다 건강한 민주주의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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