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4 06:53최종 업데이트 24.12.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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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 관람 무대에서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중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뭐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비상계엄령 발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윤석열이 12.12 담화에서 한 말이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 동원도 불사할 수 있다는 발상,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으로 1987년 이래 38년간 유지되어 온 한국 사회의 안전핀을 뽑았다. 주어진 권리라도 행사하는 양 안전핀을 뽑아 들고 날뛰는 독재자 지망생 한 사람을 막기 위해 온 나라가 앓고 있다.


민주화 이후로도 정치적 위기는 많았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도 군대나 경찰의 물리력을 동원해 반대 세력을 제압하지 못했다. 국민을 군홧발로 짓밟았던 군부독재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어두워서, 그 시절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공통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한국 정치에 '무력 제압'이라는 선택지를 부활시키고 말았다.

12월 3일 밤, 시민들은 생중계로 목숨 걸고 국회 앞으로 뛰어온 시민들의 용기와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로 친위 쿠데타가 무위로 돌아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무장한 병력 몇백 명을 동원할 준비만 되어있다면 민주주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모두가 잊고 살던 끔찍한 진실도 상기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12.3. 내란의 가장 심각한 후과는 국민의 마음속에 국가권력, 특히 국민이 허용한 합법적 무력 집단들에 대한 깊은 불신이 생겼다는 점이다.

전시도 아닌데 계엄을? 스스로 세운 가이드라인도 무너트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과 소위 '충암파'로 불리는 김용현 국방부장관(왼쪽),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오른쪽).오마이뉴스 남소연 유성호/연합뉴스

12.3. 내란 사태는 국방부 장관인 김용현이 자의적 기준에 따라 국내 정치 상황을 '소요 상태'로 판단하고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하고 윤석열이 결심하는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개념상 계엄은 전시뿐 아니라 경찰의 치안 관리 능력을 벗어나는 공공질서 붕괴 상황에서도 선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검토, 건의할 사항으로 규정된다.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은 사회에 극심한 폭력 소요가 발생하더라도 이것이 경찰의 능력 범위 밖의 일인지, 군 병력 개입이 필요한 상황인지, 향후 상황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할 능력과 조직과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방부 장관에게는 평시 국내 상황을 빌미로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할 명분이 없고, 단지 군사상 필요에 의해 전시 계엄 선포를 검토, 건의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계엄 선포 건의 권한이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건 혹자의 주장이 아니고,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스스로 세운 계엄 선포 가이드라인에 나오는 개념이다. 실제 군의 모든 계엄 실무는 '전시 계엄 선포'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국면과 12.3 내란사태 모두 국방부 내 계엄 주무부서인 합동참모본부가 아닌 계엄과 전혀 상관없는 방첩사령부(기무사)에서 별도의 계엄 계획을 몰래 수립한 까닭이 여기 있다. 계획상 국회의원들을 잡아 가두는 반헌법적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평시 계엄 선포 자체가 합참의 계획 범위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통상을 벗어난 비정상적 계엄 선포를 군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개월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도 몰랐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올해 들어 정치권 일각에서 계엄설이 돌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어디서, 어떤 식으로 계엄이 준비되고 있는지는 누구 하나 알지 못했다.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감시 장치가 고장 났거나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전·현직 군 수뇌부의 결심만으로 가공할 내란이 가능했다는 건, 우리가 무력을 갖춘 군대를 관행과 신뢰 정도로 통제할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나라를 살아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나지 않은 내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서 전광훈 목사가 연설하고 있다.권우성

12.3 내란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란수괴는 직무 정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관저에 들어앉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호처와 경찰 경비 경력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 수사도 거부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 절차도 거부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내란수괴의 오른팔인 김용현은 독립투사마냥 옥중서신을 발표하며 대놓고 지지 세력의 궐기를 선동한다. 광화문 한 측에서는 전광훈을 위시한 극우파 세력들이 가짜뉴스를 살포하고 시민들을 선동하며 윤석열과 김용현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무력 동원이 대통령의 정치행위라고 옹호하는 국회의원들도 한둘이 아니다.

내란에 부역한 혐의로 경찰 지도부가 줄줄이 구속되었는데도 경찰은 아무 법적 근거 없이 경력을 총동원해 길을 틀어막고 한남동 관저로 향하는 농민들의 트랙터 상경을 막는다. 전차를 운용하는 수도권 기갑부대장과 내란 사태를 수사하겠다고 나선 국방부 조사본부 지도부까지 내란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와 군 곳곳에 내란범이 얼마나 더 숨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총리는 내란특검법 공포를 미루며 거부권을 만지작대고 있다. 자기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라 내란수괴 권한대행인지 분간을 못하는 이가 정부를 이끌고 있다. 물론 한덕수 역시 특검이 출범하면 내란 동조자로 수사를 받아야 할 피의자란 점을 상기하면 작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세가 불리해지자 앞다투어 진실을 얘기하며 살길을 찾아 헤매는 '내란동조 군인'들을 보고 쉽게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국민들은 아직 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고, 통제할 방도도 갖추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내란범 윤석열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 못지않게 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할 방안에 대한 국회의 긴급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윤석열이 안전핀을 뽑은 세상에 던져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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