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14일 본인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한남동 관저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과학사의 위대한 혁명들은 '예외'로 치부되던 현상들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쌓여갈 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를 '예외적 사례'로 무시하거나 임시방편적 설명으로 덮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과학혁명은 바로 그 '예외적 현상들'에 주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이뤄졌습니다.
천동설 시대의 금성 위상 변화나 뉴턴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수성의 궤도처럼, '예외적 현상'으로 취급된 관찰들이 결국 새로운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토머스 쿤이 지적했듯, 과학혁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기본 가정들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볼 때 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그동안 '예외적 현상'이나 단순한 일탈로 치부하며 외면해 왔던 것들을 재고해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심각한 반민주적 행태들을 일부 보수세력의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예외 취급해 왔습니다. 예외들이 반복되면 그것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본질입니다.
1997년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사면은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학살의 주역들이 '국민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석방되면서 과거 청산은 미완으로 남았고, 이는 반민주 세력이 되살아날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반민주 세력은 더욱 대담해졌습니다. 5.18 왜곡이 공공연히 이뤄졌고, 군부독재는 '산업화의 영웅'으로 미화됐습니다. '유신'은 '조국 근대화'로 포장되었고, 광주 학살은 '불가피한 진압'으로 둔갑했습니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정치보복'으로 매도되었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은 계속 미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민간인 사찰과 언론 장악을 시도했고, 국정원과 기무사령부는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월호 진실이 은폐되고 국정농단으로 헌정 질서가 훼손됐으며, 계엄 계획까지 드러났지만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반민주적 행태들은 매번 '개인의 일탈'이나 '예외적 사건'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검찰권력의 비대화도 보수정부 시기의 예외적 현상으로 간주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 없듯이, 12.3 내란 사태는 이런 '예외 취급'의 필연적 귀결입니다. 이번에도 이들은 같은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국가위기'를 명분으로 4700여 명의 군경을 동원했고, '안보'를 내세워 정적 제거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면서도, 이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하려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시도가 개인의 망상이 아닌, 조직적 움직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군과 검경, 국정원 지도부가 내란에 가담했습니다. 이후 극우 개신교계와 반공이념단체는 조직적으로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하고 있고, 여당 지도부마저 이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민주적 기득권 체제가 얼마나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진정한 혁신은 이런 '예외들'의 본질을 직시하고, 우리의 이른바 '보수'에 대한 기본 가정과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이러한 행태들을 일부 보수의 '일탈'이나 '예외'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단호한 법적 처벌과 반민주적 기득권 체제의 해체만이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번보다 더 위험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한미동맹과 안보는 보수'라는 신화의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