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7 07:04최종 업데이트 25.01.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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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대해 무지해 보이는 대통령이 행여 허튼 결정을 하게 될지 걱정이 돼서 시작한 게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 과외' 연재입니다. 그 대통령은 지금 탄핵소추가 되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으니 더 이상의 반도체 과외는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를 좌우하는 주요 산업이라 독자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는 이 연재를 빌려 대국민 반도체 특강 형식으로 반도체 관련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특강 주제는 휴대전화입니다. 반도체 관련 특강이라면서 왜 휴대전화가 주제냐고 물으면 안 됩니다. 휴대전화야말로 현대 반도체 산업의 집합체이자 최신 반도체 기술의 경연장이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반도체 종류

삼성전자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삼성전자

휴대전화에 쓰이는 반도체는 어떤 게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휴대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도체는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입니다. 컴퓨터에서 중앙처리장치(CPU)가 하는 연산을 휴대전화에서는 AP가 합니다.

휴대전화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컴퓨터에서는 성능을 위해 독립적인 부품으로 사용하는 것들도 대부분 AP에 통합했습니다. 그래픽을 담당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통신을 담당하는 모뎀, 영상만 따로 처리하는 비전처리장치(VPU),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 주는 디지털신호처리장치(DSP) 등 휴대전화에 필요한 어지간한 기능은 모두 AP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휴대전화 성능에 큰 영향을 끼치는 반도체는 메모리입니다. 휴대전화에는 두 가지 종류의 메모리가 사용됩니다. AP의 연산을 돕기 위해 정보를 저장, 전달하는 건 모바일 D램의 역할입니다.

휴대전화에서 사용되는 반도체는 전력을 적게 먹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야 배터리 수명을 늘일 수 있고 발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모리 역시 컴퓨터나 서버에 사용하는 DDR D램을 쓰지 못하고 저전력 설계가 된 LPDDR D램을 사용합니다.

기존 D램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이 세 회사가 시장을 나누고 있었는데, 최신 제품인 LPDDR5의 경우 2023년부터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생산을 시작해 세 회사를 맹추격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 낸드플래시메모리입니다. 이건 기존 반도체 3사 외에도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WDC) 등 시장에 참가하고 있는 회사가 더 많습니다.

휴대전화를 살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게 카메라인데, 렌즈를 통해 들어온 영상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주는 이미지센서도 반도체입니다. 필름 카메라에서는 영상이 필름에 저장이 됐다면 디지털카메라는 바로 이 이미지센서가 영상을 받아 처리하는 겁니다.

최신 휴대전화의 화면은 주로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를 사용하는데 이것 역시 유기 화합물층으로 이루어진 LED 반도체 중 하나입니다. 휴대전화에는 사용자의 동작에 따라 반응을 할 수 있도록 근접 센서, 조도 센서, 가속도 센서 등의 수많은 센서가 들어 있는데 이것들 역시 모두 반도체입니다.

휴대전화에서 화면 다음으로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건 배터리입니다. 배터리 자체는 반도체가 아니지만 배터리의 전력을 효율적으로 공급·관리하기 위해 전력관리반도체(PMIC)를 사용합니다.

이처럼 반도체로 가득한 휴대전화다 보니 휴대전화가 많이 팔릴수록 반도체 산업도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많은 반도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AP입니다. AP의 성능이 곧 휴대전화의 성능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휴대전화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략 35%로 모든 부품 가운데 가장 큽니다.

카운터포인트가 분석한 갤럭시 S23 울트라의 부품 구성. AP가 35%, 메모리가 1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카운터포인트

애플은 자체적으로 AP를 만들고, 안드로이드 계열은 미디어텍과 퀄컴을 가장 많이 씁니다. 삼성전자도 엑시노스라는 자체 AP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저가형 휴대전화에 씁니다. 삼성전자는 전체 AP 시장에서 5%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메모리입니다. 메모리 역시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발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 나 됩니다. AP와 메모리의 성능이 곧 휴대전화의 성능이고 이로 인해 급이 나눠집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보다 휴대전화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휴대전화를 가장 많이 파는 회사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출하량을 기준으로 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19%로 16%의 애플을 따돌리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순위가 바뀝니다. 애플이 42%로 독보적인 1위이고, 삼성전자는 16%로 2위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 S시리즈보다 보급형 모델인 A시리즈의 판매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대당 평균판매가격(ASP)은 애플이 삼성전자보다 3배 더 높습니다.

카운터포인트가 발표한 2024년 3분기 전세게 휴대전화 업체별 시장점유율. 출하량으로는 삼성전자가 1위지만, 매출액 기준으로는 애플이 1위입니다. 대당 평균판매가격은 애플이 삼성전자의 3배가 넘습니다.카운터포인트

지난해 9월 기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휴대전화 모델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Z 플립6이고, 그다음이 갤럭시 S24입니다. 상위 5개 모델 안에 4개가 삼성전자 제품이고, 애플의 아이폰 16 프로 맥스가 4위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애플의 아이폰 모델이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제품은 갤럭시 A15가 5위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5위안에 들지 못했습니다. 한국 소비자의 갤럭시 사랑이 삼성전자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휴대전화를 파는 회사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이야기를 길게 한 까닭은 휴대전화가 삼성전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가 발표한 실적을 보면 가전과 통신을 담당하는 DX(Device eXperience)부문의 매출이 반도체를 담당하는 DS(Device Solution)부문을 크게 앞섰습니다. DX부문 안에서도 휴대전화와 태블릿을 판매하는 MX사업부의 매출이 29.9조 원으로 22.2조 원의 메모리 사업부는 물론이고, 29.2조 원의 DS부문 전체 매출액보다도 더 컸습니다. 삼성전자의 핵심이 반도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휴대전화와 태블릿이었던 겁니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2024년 3분기 사업부문별 매출 및 영업이익. DX부문이 DS부문에 비해 매출이 크고, DX부문 안에서도 휴대폰과 태블릿을 판매하는 MX사업부의 매출이 독보적인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삼성전자

갤럭시 S25가 외면한 삼성전자 AP와 메모리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곧 새로운 플래그십 휴대전화인 갤럭시S25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플래그십이란 회사의 대표 제품이란 뜻으로 당대의 기술력을 모두 쏟아부은 최고 사양의 제품입니다. 삼성전자의 자존심이 달린 제품이다 보니 갤럭시 S25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반도체 부품들이 사용될 예정입니다.

그럼, 삼성전자가 갤럭시S25에 사용할 최고의 AP는 무엇일까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삼성전자도 자사의 AP를 가지고 있으니 그걸 쓸까요? 아닙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사용할 것이라고 합니다. 휴대전화 원가의 35%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을 자사 제품을 두고도 다른 회사의 제품을 사서 쓴다는 겁니다.

사실 이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엑시노스는 보급형 제품에 사용하고 플래그십 제품은 줄곧 스냅드래곤을 사용했습니다. 갤럭시 S24와 S24+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에는 엑시노스를, 해외 주요 시장에 판매하는 제품에는 스냅드래곤을 장착하는 바람에 삼성전자 휴대전화 외의 선택지가 좁은 한국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부품은 어떨까요?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회사입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TSMC에 크게 밀리고 있지만, 메모리만큼은 가장 앞서간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갤럭시 S25에 마이크론의 메모리가 1순위로 공급된다는 SBS 보도화면SBS

하지만 그 자부심도 이제 거둬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나올 갤럭시 S25에 사용되는 메모리의 1차 공급사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미국의 마이크론이 될 거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휴대폰 회사는 수급이나 품질에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하여 부품 공급사를 최소 2개로 운영합니다. 1차 공급사에서 대부분의 물량을 공급받지만, 일부 물량은 2차 공급사를 통해 조달함으로써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도 이제껏 마이크론을 메모리 2차 공급사로 정해서 사용해 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자사 주력 제품을 놔두고 마이크론을 1차 공급사로 정해서 사용한 적은 없습니다. 이제껏 메모리만큼은 삼성전자가 가장 잘 만들어 왔으니까요. 자사 메모리를 두고 마이크론을 메모리의 1차 공급사로 선정하는 건 삼성전자 메모리의 성능이나 품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휴대전화를 책임져야 하는 MX사업부 입장에서는 사업의 명운이 걸린 플래그십 모델에 성능이나 안정성이 떨어지는 자사 부품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경쟁사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신뢰성이 확인된 제품을 탑재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사업부별로도 성과 경쟁을 시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로 인해 메모리를 만드는 DS부문은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다른 휴대전화 제조사들도 삼성전자의 메모리 성능과 품질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파운드리와 메모리의 동반 추락

AP를 설계하는 퀄컴은 스냅드래곤의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긴 적도 있지만 2021년 발열 문제가 발생하자 이후 물량을 모두 TSMC로 넘겼습니다. 애플, 구글 역시 더 이상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기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파운드리 반도체 팹의 일부 장비를 셧다운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평택과 미국 테일러에 짓고 있던 신규 팹은 투자가 중단된 상황입니다.

이처럼 품질 문제로 삼성 파운드리가 고객사를 잃고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젠 메모리까지 경쟁업체에 밀리기 시작했으니 삼성전자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반도체의 부진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갤럭시 S23 울트라 모델의 경우 사용되는 부품 중 삼성에서 직접 만드는 건 33%밖에 되지 않습니다. AP는 퀄컴에서, 메모리 중 일부는 마이크론에서, 그 외 부품은 소니나 NXP 등 외부 협력업체로부터 공급받습니다. 진작에 밀려난 AP에 이어 이제 메모리마저 외부 경쟁업체의 손을 빌어야 하는 지경이라면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부품 자급률은 30% 이하로 떨어질 테고, 이는 휴대전화 사업의 이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 삼성전자가 해야 할 일은 최소한 자사의 반도체를 자사의 플래그십 휴대전화에 넣을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고, 경쟁사 이상으로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야 외부 고객사로부터 주문이 가능할 겁니다.

신규 반도체 팹을 강요하는 정부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지정에 대한 국토부 보도자료국토교통부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토교통부는 지난 연말 360조 원이 투입되는 용인 시스템반도체클러스터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겠다며 해당 지역 국가산단의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했습니다.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빠른 사업 진행으로 2030년에는 삼성전자의 첫 번째 신규 팹을 가동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합니다.

지금 정부는 상황 파악을 전혀 못 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금 짓고 있던 팹도 중단하고 운영 중인 팹의 장비도 셧다운하고 있습니다. 외부 고객뿐만 아니라 자사 다른 사업부조차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못 쓰겠다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추가로 360조 원을 들여 6개의 새로운 팹을 지을 여력이 삼성전자에 있을까요? 설령 계획대로 팹을 지었다 하더라도 거기서 만든 반도체를 사줄 고객이 있을까요?

지금은 정부가 삼성전자의 팔을 비틀어 신규 팹 건설을 강요할 상황이 아닙니다. 필요도 없는 국가산단 프로젝트를 정부가 급하게 서두르는 이유가 반도체 산업을 돕기 위한 게 아니라 국토부 공무원과 토건족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정부가 삼성전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시스템반도체클러스터 사업을 취소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삼성전자는 벼랑 끝에 몰려 있습니다. 손을 잡아 주진 못할망정 정부가 나서서 등을 떠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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