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한남대로에서 민주노총 노동자와 시민들이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구속’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지난 4일 토요일 저녁 서울 종로에서 손님을 태우고 강남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낙원상가에서 을지로를 지나 남산터널에 들어가려는데 전 차선에 빨간 콘이 놓였고 경찰은 우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터널을 지나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한남대로의 모든 차선이 엄청난 수의 시위대에 차단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윤석열 체포를 가로막은 대통령 경호처에 분노한 시위대였다.
다른 한쪽으로는 대통령 체포가 불법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일군의 성난 사람들이 대통령 경호처를 응원하며 밤샘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3일 모든 국민이 방송으로 직관했던 윤석열이 토해 낸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무장한 군인들의 국회 장악 시도, 위헌적인 포고령 전문을 목도하고도 윤석열을 비호하는 세력이었다.
태극기는 알겠는데 뜬금없는 성조기에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어대는 그들의 터무니없는 대통령님 만세삼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요즘이다.
아스팔트 극우 세력의 중심에는 과거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대형 교회 중심의 개신교 단체들이 똘똘 뭉쳐 서 있는 형국이다. 실제 목격한바 지난 주말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는 사도신경 암송과 찬송가로 그 시작을 알렸다. 성지로서의 이스라엘이 대한민국 보수단체의 신념 체계 안에 들어와 생긴 현상일까?
유물로 남았어야 할 냉전 세대와 극우 기독교 세력의 결합은 편향적이고 왜곡된 신념 체계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라 전체의 지배적 이념으로 강제하려는 퇴행적 결과물이었다.
2007년 단위농협 선거의 기억
손님을 내려주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옛일이 떠올랐다. 귀농하고 일 년 정도 지난 2007년 겨울이었다. 시골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던 토박이 형님이 저녁에 회의가 있다며 나를 불렀다. 가서 보니 단위농협(지역농협) 조합장 선거를 준비하는 대책회의였고 후보를 포함한 네댓 명이 승리를 위한 필살기를 궁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선거에 도움 될 만한 비책을 은근하게 요구했으나 단위농협은 내게 너무 생소한 영역이었다. 외부인인 나는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 현 조합장의 경력과 추문, 조합원 여론 동향, 직전 선거에서의 사건 사고 등 선거 관련 정보들이 쏟아졌다.
조합원이 2000명 정도 되는 지역농협이었는데 대화의 핵심은 상대측 선거운동원이 돈봉투를 조합원에게 비밀리에 전달하는 현장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였다. 그러니까 돈봉투가 횡행하는 건 기정사실이라는 전제가 깔린 논의였다.
조합원 1명 당 10만 원, 2000명 조합원이니 2억 원은 기본이고 그보다 더 준비한 현금이 넉넉한 승리를 보장한다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조합원에게 무조건 10만 원을 주는 게 아니었다. 관계나 서로의 사정이 불 보듯 뻔한 좁은 지역이라 개별 조합원의 성향에 따라 돈의 액수와 전달 방식이 달라졌다.
내가 받은 충격은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위해 막걸리판을 벌이고 고무신을 나눠주던 그 유명한 1969년 판 '고무신 선거'가 38년이 지난 2007년 단위농협 선거에서 고무신만 현금으로 바뀐 채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위농협은 1971년 설립되었다. 조합장 선거 방식은 대의원 투표에 의한 간선제였다가 2000년에 직선제로 변경되었다. 간선제는 직선제에 비해 유권자 파악이 쉽고 피아구분이 뚜렷하므로 각종 불법 선거가 판을 친다. 내가 목격한 2007년 상황이 전국적 현상이라면 '고무신 선거'는 단절되지 않고 조합 설립과 함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합리적으로 유추하면 그렇게 당선된 조합장은 임기 4년 동안 최소 2억 이상의 사적 이익을 취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 그보다 몇 배 혹은 몇십 배 많은 사적 이익의 가능성에 직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돈을 받은 조합원도 그런저런 사정을 다 알고 표를 주었음에 틀림없었다.
좁은 지역사회, 가시권 안에 있는 일정 수의 조합원에게 혈연 지연이 선거의 절대 변수지만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가진 후보자들에게 이는 차별성 없는 매개변수로 전락하고 결국은 새로운 변수가 떠오른다. 그게 바로 돈이었다.
나는 다시 질문을 해야 했다. 이 '아사리 선거판'을 만든 주범은 돈을 받고 표를 주는 조합원인가, 아니면 돈을 주고 표를 사는 후보자인가? 형식적 민주주의가 그나마 완성된 사회라는 우리나라에서 왜 아직도 이런 구태의연한 '고무신 선거'가 사라지지 않는가?
돈이 통하는 선거는 유권자의 정서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예외 없이 선거에 이길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는다. 그리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걸 찾아낸다. 18년 전 시골 단위농협 선거의 필살기는 돈이었다. 부인할 수 없이 유권자들은 은근히 그걸 원했고 후보자는 그걸 줬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주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런가?
태극기와 성조기 흔들며 서 있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