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9 15:30최종 업데이트 25.01.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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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5월 10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에 새로 마련된 대통령 집무실에서 1호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김대기 비서실장, 최상목 경제수석, 최영범 홍보수석, 안상훈 사회수석,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연합뉴스

위헌적 비상계엄을 발동한 윤석열에 대해 내란죄 혐의 체포영장이 다시 발부되었다. 수일 내로 체포가 이루어지면 내란죄에 대한 수사에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란죄의 증거가 될 기록, 그리고 기록관리 기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국무회의록을 포함해 윤석열이 경찰청장에게 건넸다는 체포자 명단 문서, 계엄상황일지 등 주요 기록들이 남겨지긴 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폐기된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기록물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형식적인 협조 요청 공문만 보내고 있는 국가기록원의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정보공개센터는 기록전문과들과 함께 성명을 내어 국가기록원에 조속한 폐기금지 조치를 요구하는 한편, 2200여 명의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 청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존하고, 공개시켜야 할 기록은 내란 기록뿐만이 아니다. 곧 다가올 탄핵 국면에서 주목해야 할 기록이 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임 당시 누구와 어떻게 일을 했고, 우리의 세금은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대통령실의 기록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지난 2년 반의 임기 내내 불통과 비공개 행보를 이어왔다. 취임식 초청자 명단부터 시작해 대통령실 이전 공사 계약과 직원 채용을 둘러싼 특혜 의혹, 명품백 수수 사건 등 논란이 생기면 대통령실은 일단 관련 기록을 모두 비공개했다. 대통령 비서실 운영 규정마저도 비공개 했던 윤석열 정부의 행보 끝에는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과 얽힌 명태균씨의 창원산단 부지 선정 개입 정황이 드러났다.

문제는 윤석열과 김건희를 중심으로 수많은 정치인, 관료, 책임자들이 연루된 비리를 밝히는 데 있어 기초가 되는 대통령기록들이 최대 30년까지 비공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퇴임 시 대통령이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한 기록물은 최대 15년, 대통령 사생활 관련 기록의 경우 최대 30년 동안 비공개로 보호받을 수 있다. 이렇게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거나 수사 기관에서 영장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정보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이르면 3월 중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인용된다면, 대통령 대신 권한대행의 선택에 따라 대통령실의 수많은 기록들이 '지정기록물'이 될 위기에 처한다. 더욱 심각하게도 여기에는 이미 여러 시민들이 정보공개청구와 소송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는 하급심 판례를 받았던 정보까지 포함된다. 사실상 대법원에서 공개 확정판결을 앞둔 기록들마저도 경우에 따라 15년 혹은 30년까지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보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 무시하고 상고 중인 윤석열, 기록 봉인 우려

윤석열 대통령비서실 정보공개 소송 현황(11월 30일 판결문 열람 최종확인)정보공개센터

대통령비서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 2024년 11월까지 제기된 정보공개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실 직원명단, 수의계약 내용, 특수활동비 및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등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기관이라면 응당 공개해야 할 정보들이다.

대통령비서실은 합리적인 근거 없이 각종 비공개 조항을 동원했는데, 전체 7건의 소송 중 6건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예정'이라는 주장을 포함해서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 시점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날의 다음 날부터 시행되는 것임에도,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제도를 거론하며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법원은 6건의 판결 전부에 대해 그런 이유로 비공개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대통령비서실의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모든 소송에 항소했고, 7건의 소송은 아직 모두 진행 중이다. 하급심에서 이미 공개 판결을 받았던 정보들이지만, 탄핵 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된다면 어떻게 될까.

윤석열 정부가 시간 끌기를 위한 꼼수를 쓰지 않고 항소를 포기했다면 우리가 이미 알았어야 할 정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 관리 주체가 대통령기록관으로 바뀌고 지정기록물이 되면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직원 명단도, 특수활동비 집행내역도 권한대행이 지정한 기간 동안은 볼 수 없게 봉인된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만에 하나 보호 기록물로 지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통령비서실의 기록이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가 보유·관리주체가 바뀌면 일단 진행 중인 정보공개소송은 각하되어 정보가 공개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정부에서 제기되었던 대통령 비서실 특수활동비 정보공개소송 사례에서도 1심에서 공개 판결을 받았지만, 상고심에서는 "공개 청구한 정보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현재 피고가 보유 관리하고 있지 않다"라는 사유로 각하된 바 있다. 당시 소송을 제기한 납세자연맹은 임기 종료까지 버티는 것이 대통령의 정보 은폐 수단으로 악용되어선 안된다며 헌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과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해당 판결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박근혜 탄핵과 봉인된 세월호 7시간의 기록, 답습해선 안 돼

2017년 4월17일 정보공개센터와 녹색당이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치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박근혜 대통령기록물 지정과 이관을 반대하고 있다정보공개센터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논란이 되었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총리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생산된 보고 문서들을 모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했다. 이는 대통령 파면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밝혀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관료가 오히려 대행의 권한범위를 확대 해석하여 기록을 적극적으로 비공개하고, 책임자를 두둔한 사례로 많은 문제 제기와 비판을 받았다.

이후 2020년 개정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서는 대통령 궐위 시 비서실 등 기관의 목록작성 조치와 이관 의무, 대통령기록관의 현장점검 및 이동/재분류 금지 조치 등의 규정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정 권한의 문제, 소송 중인 기록에 대한 이관 문제는 숙제로 남았다.

헌정을 유린하여 시민들이 파면시킨 대통령에게도, 그를 대리하는 정부 관료에게도 대통령 기록을 최대 30년이나 비공개할 권한을 주어서는 안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원칙을 명확히 하고 기록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속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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