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1월 27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성동구 금호고등학교에서 열린 '고교 무상교육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마치고 식생활 교육실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백 번 동의하면서도, 현직 교사로서 내심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 교육개혁에 대한 공약이 그것들과 함께 대선 후보들의 공약집 맨 앞자리를 차지하면 좋겠다.
선거 운동 기간에 그들이 재래시장을 찾아가 어묵을 먹고, 대기업의 CEO와 악수하는 그런 뻔한 일정 말고, 학교를 찾아가 교사와 아이들의 고충을 듣는 장면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없어서겠지만, 교육감을 뽑는 선거 말곤 학교를 찾아가는 후보들을 본 적이 없다. 대선에서 교육 공약은 늘 뒷전이었다.
강남 8학군이나 특목고, 자사고를 찾아가기보다 이왕이면 소외된 지방의 인문계고나 특성화고를 방문하면 좋겠다.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갈 게 아니라 마치 암행어사 행차하듯 찾아가야 학교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는 건 구태의연하다.
진정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교사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최우선이다. 시시껄렁한 내용일지라도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교육개혁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매번 실패로 귀결된 해묵은 상명하복의 '하향식' 교육개혁의 관행을 이제 혁파할 때도 됐다.
역대 모든 정부가 교육개혁을 부르댔지만, 늘 학교 현장의 목소리와 괴리되어 왔다. 그들의 교육개혁은 대학교수 등 전문가집단이 입안하고 행정 관료들이 하달하는 식이었고, 학교는 그들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할 책임과 의무만 주어졌다. 애초 교사의 자발성은 발휘될 수 없는 구조였다.
일선 학교가 교육청의 공문 하나에 쩔쩔매듯, 교사는 행정 관료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교육청의 관료인 장학사가 학교에 부임하면 업무를 통할하는 교감이 되고, 장학관은 학교 책임자인 교장으로 발령이 난다. 교사가 '수평적 전문직'이라는 건 학교 내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위계는 공교육에서도 서슬 퍼렇다.
하긴 전문가집단과 행정 관료들 역시 스스로 '마름'으로 규정한다. 그들도 윗분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최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달에 발표할 예정이던 '중장기 국가 교육 발전 계획'을 대선 이후로 전격 연기한 게 그 예다.
위원들은 계획이 발표될 경우,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거다. 그러나 이는 백년지대계 교육이 5년짜리 정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발족한 국가교육위원회조차, 새로 출범할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읽힌다.
학교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은 교사지만, 교사의 목소리는 교육정책의 수립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일찌감치 관료 조직의 말단으로 전락한 학교에서, 어디까지나 교사는 '손발'일 뿐, '머리'가 될 순 없다. 교원단체들도 교사의 권익 향상을 도모하는 이익집단화한 지 이미 오래다.
단언컨대,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이 용두사미를 넘어 '교육개악'으로 귀결된 건, 교사의 목소리가 배제된 탓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학교는 '실험용 쥐'가 되어야만 했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 어설픈 교육개혁에 공교육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때마다 교사들의 분노와 절망감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공교육 정상화의 대전제, '교사에 대한 사회적 예우'

▲2023년 7월 22일 당시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 인근에서 열린 전국교사 긴급추모행동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반복된 교육개혁의 좌절은 공교육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곧 교사에 대한 불신이었고, 부박한 여론은 교육개혁의 연이은 실패 원인을 정부가 아닌 교사들의 무능에서 찾았다. 여론의 질타 속에 교사는 교육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전락했고, 자존감에 큰 생채기가 났다.
무너진 교권은 그로 인한 뼈아픈 결과다.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줄을 잇고, 미래 교사를 꿈꾸는 아이들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학교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들이 드물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단순히 학령 인구의 급감으로 인한 수요의 감소를 고려한 선택 정도로 치부할 순 없다. 교사도 아이들도 학교를 '생존을 위한 전쟁터'라고 부른다.
이젠 모두가 선망하던 교직이 고등학교의 진로 탐색 과정에서조차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어느덧 교사가 기피 직업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초등 교사를 양성하는 한 교육대의 경우 올해 '입결'이 내신 6등급(수시 일반전형) 아래로 떨어졌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사범대의 인기도 나날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물론, '입결'로만 교사의 자질을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상위권의 교사 기피 현상을 통해 요즘 수험생들의 달라진 인식과 미래의 교육을 예측해 볼 수는 있다. 교사가 되겠다는 열의 없이 성적에 맞춰 여기저기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식으로 선택한 거라면 교육의 질 하락이 불 보듯 환하다.
무엇보다 사범대와 교육대의 기피 현상은 공교육과 교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 주게 된다. 교육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독일과 덴마크, 핀란드 등에선 교사 대부분이 석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선호도가 높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굳건한 밑바탕이다.
교사에 대한 사회적 예우 없이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교육개혁은 교사에게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되살려줄 때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교사가 교육개혁의 주체가 되어 정책 결정에 참여하면, 지금 우리가 직면한 공교육의 적폐가 상당 부분 해소되리라 확신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면, 교육개혁의 성패는 교사에게 달렸다.
부디 대선 후보들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지엽적인 문제들에 천착하지 않길 바란다. 그럴수록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현혹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제도를 도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게 돌고 돌아 '구관이 명관'이라는 여론이 비등해졌던 게 대한민국 교육개혁의 '슬픈 공식'이었다.
'제도 만능주의'를 탈피해야 한다. 수능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며 호기롭게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이 또 다른 적폐가 됐고, 지역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막겠다며 설계된 지역인재전형도 어느덧 껍데기만 남았다. 올해 시행된 고교학점제도 공교육 정상화는커녕 온갖 편법만 양산한 채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이는 관료 사회의 뿌리 깊은 '실적주의'에 기인한다. 실적에 연연할수록 제도의 취지보다 계량화된 성과에 집착하게 되고, 급기야 교육은 '서류로 증명되는 업무'로 전락한다. 숱한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이라면, 숙의와 토론을 통해 교사들이 주도하는 교육개혁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대선 후보들도 잘 알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