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화물차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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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이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중요하다고 밝힌 다음날 경찰이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김동국 본부위원장과 송광수 해운대지부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석열이 없앤 안전운임제를 다시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가 받는 운임의 기준을 정부, 대기업화주, 운송사, 노동자가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고 그 이하로 운임을 지급 할 때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운임을 적게 주면 화물노동자들이 소득을 채우기 위해 과로 과속 과적을 하게 되고 이는 곧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운임의 하한선이 무너지면 영세한 운송사들이 노동자에게 줄 운임을 중간에서 착취해 생존하기 때문에 화물산업 혁신을 위해서도 안전운임제가 필요했지만 윤석열은 안전운임제를 없애 버렸다. 안전운임제가 늘어나는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적정소득을 보장하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윤석열은 시대를 역행하는 대통령이었다.
실제 특고·플랫폼 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심각하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4월 15일부터 4월 21일까지 방과후학교·늘봄학교 강사 168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보다 적은 월평균 수입 180만 원 미만을 받는 강사가 55.2%를 기록했다.
지난 4월 28일 실태조사결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음악강사 임준형씨는 2019년 3만 원이었던 강사료가 6년이 지난 2025년에도 3만 2000원에 불과하다고 성토했다. 게다가 방과후강사들은 폭설과 임시공휴일 등으로 휴교를 하면 임금을 받지 못한다. 방송스태프들도 올림픽, 월드컵, 계엄 등과 같은 비상상황이 벌어지면 제작한 방송이 나가지 못해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휴업급여나 최저임금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노동자도 있다. 플랫폼 기업은 앱을 통해 배달노동 한 건당 4000원을 노동자에게 제시한 후 배달주문이 잘 처리되면 3500원으로 삭감하고, 3500원으로도 배달이 잘 되면 3000원으로 삭감하는 식으로 실시간 변동요금을 지급한다. 10년 전에도 배달 한 건당 3000원은 줬는데, 2025년에 이 선마저 무너져 건당 2500원이 됐다(배민·쿠팡 기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노동3권을 행사해 적정임금을 쟁취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플랫폼기업은 노동자 스스로 앱 프로그램을 설치하게 하고 작업도구를 구매하도록 함으로써 실시간으로 노동력을 모집할 수 있다. 파업을 하는 순간에도 대체인력이 충원되는 셈이다.
심지어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은 사실상 단체행동권을 박탈당했다. 기적적으로 노동자들이 화물연대나 건설노조처럼 탄탄한 조직을 만들어 제대로 된 투쟁을 한다고 해도, 국가가 개입해 특고 노동자들에겐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건폭몰이'를 한다. 힘이 없으면 허울뿐인 노조설립필증을 주고, 힘이 있으면 공권력을 이용해 탄압하는 방식이다.
이걸로는 부족했던지 최근 배민과 쿠팡은 하청사장들을 배달라이더 구하듯 모집하고 있다. 사업자등록증을 낸 하청사장들은 배민 쿠팡과 약속한 배달물량을 완수하는 조건으로 보너스를 받는데, 이 때문에 하청사 소속 라이더들은 약속한 물량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라이더들이 배민 쿠팡에 분노해 배달을 거부하더라도, 하청사들이 조직적인 대체인력 공급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라이더들은 배민과 쿠팡과 위탁계약을 한 특고 노동자에서 배민과 쿠팡과 위탁계약을 맺은 하청사사장들과 다시 위탁계약을 하는 '특수 특수 노동자'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적정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선 화물의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는 걸 넘어서, 특고·플랫폼노동자의 적정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임금결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호주에서는 '구멍막기법안'이라는 이름으로 플랫폼 노동자와 화물노동자의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법이 통과됐다. 뉴욕시에서는 배달라이더 임금을 시간당 2만 3000원 이상으로 보장하는 최저임금이 도입됐다.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조법 2,3조를 개정해 원청 대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산재휴업급여 4만 8232원... 깁스하고 일하는 노동자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민주노총 대선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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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소득의 기준이 없다 보니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산재 휴업급여 최저선도 무너졌다. 주변을 돌아보면 깁스를 한 채 일을 하는 라이더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라이더유니온을 포함한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투쟁으로 산재보상은 된다. 그런데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하루 휴업급여의 최저기준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달리 4만 8232원이다.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이니 최최저임금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이 돈 받고 병원에 누워있을 수 있는 특고·플랫폼 노동자는 없다. 오토바이 할부 값, 보험료 등을 생각하면 마이너스다.
화물 노동자의 경우 화물차 할부 값만 월 300만 원 정도다. 게다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산재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데 반해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사용자는 산재보험의 50%를 노동자에게 전가 시킬 수 있다. 고용보험도 문제다. 육아휴직은 쓸 수 없고, 배우자 출산휴가도 사용할 수 없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가 국민연금이다. 3월 20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3%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9%의 보험료를 사용자와 분담해 4.5%를 낸다. 그러나 특고·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9%의 보험료를 전액 부담한다. 보험료율을 13%로 올렸으니 부담이 곱절로 늘어난다.
일부 청년단체들과 자신을 청년이라 주장하는 40대 중년 정치인들은 국민연금을 세대 간 갈등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노후보장의 문제는 소득과 자산 불평등의 문제이지 세대 문제가 아니다. 50대 플랫폼노동자와 20대 자산가의 노후 중 우리 사회가 특별히 고민하고 지원해야 할 노동자는 누구인가?
민간연금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연금은 불안정노동자들의 유일한 노후보장 수단이다. 특고·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활용해서 이윤을 얻는 기업에게 국민연금을 분담하게 해 국민연금 가입률을 높이고 재정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국민연금을 직장가입자로 전환해야 한다.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직장가입자로 전환하자고 하면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사용자를 찾기 힘들다는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이 아니다. 플랫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감을 누가 요청해서 누가 수행하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3000원 짜리 배달 한 건을 하면 3.3%의 사업소득세는 물론, 고용 산재보험도 건당으로 징수한다.
사용자를 찾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기존 노동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플랫폼 고용 형태를 활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이는 시장경제의 입장에서도 공정하지 않다. 어떤 사업주는 사회보험의 책임을 부담하는데 교활한 사업주는 사회보험을 부담하지 않는 건 반칙이다.
배민은 우리나라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여 독일 딜리버리히어로 본사에 2023년엔 4127억 원(배당금 지급 형식), 2024년에는 5327억 원(자사주 매입·소각 방식)을 송금하면서도,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우리가 사회보험 재정 때문에 분노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장년과 노인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이다.
현재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고용 산재보험은 대통령이 정한 18개 직종의 노무제공자만 당연가입대상이다. 그러나 3.3%의 사업소득세를 내는 특고·플랫폼 프리랜서 등 인적용역사업자의 규모는 862만 명으로 현재의 사회보험체계는 너무 협소하다. 이를 확대하기 위해 소득기반보험으로의 전환과 사용자 책임 강화 등 사회보험의 대안들을 논의해야 한다.
한편 지난 2월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가 사망한 이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앞다투어 특고·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에게도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두 거대정당이 법 개정을 하겠다고 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다.
지난 총선에 이어 윤석열 파면 이후 조기대선에서도 노동법 밖 특고·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가 호출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삶은 정치인의 말을 꾸며주는 수식언이 아니다. 노동법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노동법이라는 우산을 씌워주는 국가야말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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