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0 10:39최종 업데이트 25.05.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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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시작한 2025년의 대한민국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획 '넥스트 대한민국'은 조기 대선 상황에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남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편집자말]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측 대성동 마을 태극기와 북측 기정동 마을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 2024.9.23연합뉴스

'평화'를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지구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한반도의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평화라는 단어에 희망보다는 냉소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가능한 나라, 언제든 남북 군사 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내 정치를 위해 군사 위기를 이용할지도 모르는 나라. 윤석열의 '내란'이 새삼 다시 느끼게 해준 현실이다. 그리고 그 내란을 막느라 미루고 미뤄둔 각종 문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득하고 지난해 보이기만 하는 '평화'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일은 대통령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 민주주의도,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도, 평화가 보장되어야 비로소 상상할 수 있다. 무너져버린 한반도 평화 비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차기 정부가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몇 가지 제안해 본다.

최소한의 안전핀, 남북 군사 핫라인과 9.19 군사 합의 복원

대화 채널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 높아진 군사적 긴장은 너무 위험하다. 접경지역의 군사훈련 포성과 확성기 방송부터 당장 멈춰야 한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도 적극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작년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한 대응으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아래 '9.19 군사 합의') 전면 효력 정지를 발표한 뒤, 군의 해상 NLL 인근과 지상 군사분계선 5km 이내 실사격훈련은 모두 재개된 상태다. 한편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는 남한 민간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한 것이었다. 악순환 속에 하루하루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은 커져 왔다.

9.19 군사 합의는 남북 사이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이었다. 정전 이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누적된 남북의 적대와 군비를 하루아침에 통제하고 감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를 쌓는 단계적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렵게 체결된 9.19 군사 합의를 깨버리는 것보다 남한은 합의를 이행하면서 북한의 합의 위반을 비판하고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현명한 대응이었다. 그 소중한 기회를 잃어온 지난 시간이 허망하다. 이제라도 접경지역 인근 군사훈련과 대북 심리전을 중단하고, 군사 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하고, 군사 핫라인 복원을 목표로 대화 재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9.19 군사 합의를 위한 변론

2023년 9월 26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장병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9.19 군사 합의가 '가짜 평화', '안보 자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평화, 진짜 안보'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군사분계선을 맞대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 없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가? 북한 탓만 하는 것은 쉽고, "즉,강,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라)"을 외치면 속 시원하다. 하지만 무력 충돌은 한 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방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과거 윤석열 정부는 '군사 합의로 무인기·정찰기 비행이 제한돼 대북 감시·정찰 능력이 크게 약해졌다'고 주장해 왔다. 정말 그럴까?

한국군은 '작전 반경이 3000km에 달해 북한 전역의 도발 징후 탐지가 가능하다'며 1조 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도입한 글로벌 호크(고고도 무인 정찰기)를 비롯한 각종 무인 정찰기, '탐지거리가 최대 500km에 달해 한반도 전역의 공중과 해상 표적을 사각지대 없이 감시할 수 있다'며 도입한 피스아이(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 다양한 감시·정찰 자산을 이미 운용하고 있다. 피스아이는 추가 도입이 예정되어 있고, 국내 개발한 중고도 무인 정찰기도 양산하고 있다. 군 정찰위성 425 사업도 진행 중이다. 4호기까지 발사가 완료되어 1호기는 이미 운용 중이고, 나머지도 전력화가 진행 중이다.

요약하면 군사 합의상 비행금지구역 밖에서도 상시적인 감시·정찰을 할 수 있는 월등한 능력을 북한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국방예산을 투입하여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군사 합의는 남한에만 불리한 합의가 아니며, 합의의 부재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크다. 과연 무엇이 '안보 자해'인가?

중요한 것은 싸워서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싸우지 않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상대를 비난하고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것보다 대화하고 중재하는 일이 수천 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시급히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 상황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악화일로의 남북 관계도, 국제 정세도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적대적 두 국가'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과거의 수많은 합의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누구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군사적 신뢰 없이 대화와 협상의 문을 다시 여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차기 정부가 명확한 평화 지향 정책으로 돌파해 나가기를 바란다.

30만 명으로 병력 감축

서울역에서 군인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연합뉴스

다음 정부가 책임 있게 다뤄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병역제도 개편이다. 2023년 기준 한국군 상비 병력은 47.7만 명(장교 약 6.8만 명, 부사관 약 12.1만 명, 병 28.7만 명)이었다. 이미 인구 구조상 50만 명 유지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임시방편식의 정책으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관련 공약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선택적 모병제(2020년 대선 공약 기준 상비 병력 40만 명)',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한국형 모병제, 30만 정예강군' 등이 제안되어 있다.

대선 때만 떠오르는 핫이슈로 취급하기엔 직면한 문제다. 한국군 '적정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 토론을 거쳐 이제 결정해야 한다. 그에 맞는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현재 병력 50만 명을 기준으로 세워지는 국방 인력계획과 예산도 단계적으로 변경해야 할 것이다.

'적정 병력'은 현실적인 위협 분석과 실현 가능한 군사 전략을 바탕으로 추산해야 한다. 군의 목표를 북한 공격이나 점령이 아닌 방어로 분명히 정립하고, 비현실적인 군사 전략을 재검토한다면 상비 병력을 30만 명(장교 4만 명, 부사관 13만 명, 병 13만 명) 수준으로 대폭 감축할 수 있다. 의무병 복무기간도 육군 기준 12개월 수준으로 단축이 가능하다. 더불어 간부 중심으로 병력 구성 개편, 부대 구조 축소 개편, 3년 복무 지원병 제도를 신설하여 징모 혼합제 도입, 부사관과 장교 인력 획득 구조 개편, 여군 지원병제 운용 및 여군 확대, 장기 복무 인력 확보를 위한 다각적 변화, 군 복무 환경 개선과 군 인권 보장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1]하다.

병역 제도는 단지 병력 수요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철학과 정책, 군사 안보 전략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군사 안보 영역에 대한 민주적 통제, 징병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경제적 요소, 군 복무 환경 개선, 시민의 기본권 보장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해야 한다. 더 많은 지혜를 모아낼 수 있는 거버넌스의 구성과 토론이 꼭 필요한 문제다. 차기 정부가 책임 있게 이 과정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무기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지 말아야

2024년 5월 2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아덱스저항행동,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이스라엘로의 무기수출 중단 기자회견 및 플래시몹 액션'이 열렸다.이정민

"K-방산을 국가대표산업으로 육성".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1번 공약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에 포함된 내용이다. "'글로벌 K-방산' 육성하여 세계 시장 진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공약이다. '누가 되든 K-방산 밀어준다'며 언론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높다.

사실 정권을 막론하고 무기를 팔아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정책 방향은 오랫동안 일관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더욱 활성화된 방위산업 육성과 수출 지원 정책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도 설정되어 있다. 심지어 지역 신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 대책으로 방산 클러스터가 제시되고, 2026년까지 전국 6개 지역 클러스터 구축이 방사청의 중점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 관련 공약들은 더욱 구체적, 본격적으로 구상되고 있다.

'문화 강국을 목표하고 K-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이 수많은 산업 중에 도대체 왜 무기 산업이어야 하는가? 무기 산업은 전쟁과 분쟁, 안보 불안, 누군가의 명백한 고통을 기회로 삼아 성장한다. 따라서 K-방산이 앞으로 계속 성장하려면 전 세계적으로 무기 수요가 증가하기를, 각국의 세금이 더 많이 군비 확장에 투입되고 시장이 커지기를 기대해야만 한다. 2024년 전 세계는 군사비로 2조 7180억 달러(한화 약 4000조 원)[2]을 사용했다. 그 세금은 기후 위기, 경제적 불평등 해결 등에 사용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재원이다. 무기 시장이 커지는 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일까?

한국의 무기 수출은 꾸준히 증가해 왔고, 이제는 전 세계 8~10위를 넘나든다. 최근 한국 무기 산업의 가파른 성장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급증한 유럽의 무기 수요 덕을 봤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20-2024 한국 무기의 주요 수입국은 매출액의 46%를 차지한 폴란드[3]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는 군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며 FA-50 전투기, K-9 자주포, K2 전차 등 대규모 무기 도입 계약을 맺었다.

이렇듯 무기 산업은 무장 갈등 예방이 실패하거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 공간에서 경제적 이득이 발생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세계 4대 방산 강국'을 목표로 하면서, 우리는 전 세계에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해달라고,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과 혹시 모를 충돌은 각국 방위 산업의 또 다른 기회일 텐데 말이다.

'K-방산'이 성장하는 반면 무기 이전(수출, 지원) 등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나 민주적 통제 방안은 너무나 미비하다. 국제인권법·국제인도법 위반, 전쟁 범죄, 중대 인권 침해, 분쟁 격화 등에 사용될 무기 이전 금지(일례로 이스라엘 무기 수출), 무기 수출입 현황에 대한 투명한 공개, '분쟁지역 무기 이전 국회 동의'와 같은 통제 방안 마련 등 최소한의 의무라도 해야 한다.

이 글에서 제안한 몇 가지 외에도 평화를 위한 수많은 의제들이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군사 안보'라는 성역 없이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평화'가 사람들의 일상과 연결되고 와닿을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하는 정부를 원한다.
덧붙이는 글 [1] 참여연대&군인권센터, <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본 병역 제도 개편 방향 > 의견서, 2021.11.
[2] SIPRI, < Trends in World Military Expenditure, 2024 > , 2025.04.
[3] SIPRI, < Trends in International Arms Transfers , 2024 >, 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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