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그런 의미에서 2002년은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이룬 것뿐 아니라 우리가 문명 전환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처한 중요한 시기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 5일제의 채택이 대표적인 학습 사례였다면, 커피 관련 분야에서도 몇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우리나라 커피 산업 발전의 뿌리가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첫째는 당시 가장 관심을 받던 커피 기업 스타벅스를 대하는 독자적인 태도였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미국 본사의 직영 체제였다. 즉, 미국 본사에서 시설, 설비, 메뉴, 직원 교육 등을 직접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스타벅스는 처음부터 공동 투자로 출발하였고, 점차 국내 지분을 확대하여 운영 자율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현재는 100% 국내 기업 운영 체제가 되었다. 운영 자율성 확보는 우리나라 스타벅스의 성장 바탕이 되었고, 우리나라 커피 문화 발전의 밑바탕이 되었다. 만일 미국 본사의 직영 체제였다면 이곳에서 근무하는 우리나라 바리스타들의 창의성은 발휘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테이크아웃 문화의 빠른 전파였다.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와 충돌 우려가 있었던 테이크아웃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려는 국내 커피 전문점들의 적극적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인건비 감소와 커피 소비의 확대를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2002년 당시 커피 전문점이 '불황을 모르는 사업'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것이 커피 산업 발전을 가져왔다.
셋째는 바리스타 붐이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실증적인 근거와 무관하게 국내 바리스타 1호에 대한 언론 보도가 빈번하게 등장하였고, 이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하였다. 바리스타 학원의 등장과 자격증 제도의 도입은 바리스타를 미래형 직업의 하나로 인식하게 했다.
넷째는 우리 문화나 생활 방식과 결합한 다양한 생활밀착형 실용 카페의 등장이다. 2002년에 처음으로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 키즈카페와 애견카페였다. 2002년 11월 12일 자 <동아일보>에 소개된 신도시 분당의 맘스클럽 '베베랑'은 젊은 세대의 육아,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커피 마시기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같은 신문 11월 19일 자에는 월드컵 당시 태극기 패션으로 유명해져서 미스 월드컵으로 불리던 미나의 단골 애견카페 '파트라슈'가 크게 소개되었다. 커피를 생활과 유리되지 않은 음료로 만드는 효과가 적지 않았다.
다섯째는 다양한 이색카페의 등장이다. 2002년 3월 8일 자 <중앙일보>에는 가면카페, 마술카페, 캐릭터카페, 플라워카페 등이 흥미롭게 소개되었다. 이후 이색카페는 우리나라 카페문화, 커피문화의 한 축으로 성장하였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커피 산업의 새로운 모델 스타벅스 흉내 내기나 스타벅스 극복하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커피 혹은 카페 문화를 개척하려는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나타났고, 2002년은 그 출발점이었다. 주5일제 도입이 만든 여가의 확대, 스타벅스의 출현으로 시작된 커피 소비의 확대, 신도시의 등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육아 문화의 필요성 등이 융합된 우리식의 새로운 커피 소비문화가 시작된 것이 2002년이었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4일제가 단순히 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의미만 갖게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만드는 계기로 작용할 것인지? 노동에서 해방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무엇을 이룰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역량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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