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9 16:21최종 업데이트 25.05.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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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나온 군인들 (자료사진)연합뉴스

21대 대선에 나선 주요 후보들의 공약집이 공개됐다. 국방 안보 공약의 전반을 아우르는 공통의 인식은 '위기의 군대'다. 우선 12.3 내란의 중심에 있었던 군에 대한 문민 통제 강화와 군 정보기관(방첩사령부) 개혁 등 내란 청산 공약이 내용과 강도에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후보들에게서 확인된다.

다른 후보들은 물론이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공약집에서도 군 정보기관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겠다던가, 문민 통제를 강화하고 장병 대상 헌법 가치, 민주주의 원칙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윤석열과 정치군인들로 인해 군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국방 안보를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국방 개혁안

공약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통 인식은 우리 군이 현재의 구조로는 지탱하기 어렵다는 공감대다. 군인 수가 계속 줄어드는 문제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이 엿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병력감소와 작전환경 변화에 따른 병력모집 방식 다양화'와 '부대구조, 지휘구조 개편', '여군 비율 확대' 등의 국방 개혁안을 제시한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민간군사기업(PMC) 제도 도입으로 외곽 경비 등 민간 위탁', 'GOP 경계 전담 부대 신설', '상근 예비군 확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현역병 입영자 중 훈련 우수자를 장교, 부사관 후보로 선발해 2년의 대학등록금을 지원한 뒤 2년 간 의무복무하게 하는 '단기복무 간부 통합선발제'로 초급간부 충원 대책을 제시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병력 감축'과 '모병제 전환', 현역과 예비역을 통합 운용하는 '총합 국방인력 개념 도입'을 제시했다.

모든 후보들의 공약을 관통하는 위기의식은 요약하자면 '군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무기와 첨단 장비로 무장해도 병력이 비면 군대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일선 부대는 병력 부족으로 고충을 호소한 지 오래다. 2024년 국회 국방위원회 황희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장교는 선발 정원 대비 획득률이 80%대 수준이고, 부사관은 해군 62.4%, 공군 89%, 해병대 85.4%, 육군은 45.8% 뿐이다.

한편 2023년 전역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은 9481명에 달했고, 희망전역은 3764명으로 모두 전년 대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들어오는 사람은 줄어들고, 나가는 사람은 많아지는 통에 10명이 근무해야 할 자리에 7~8명이 근무하고 있으니 남은 사람들은 자연히 일이 힘들어져 결국 전역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것이다.

사람이 모자란 탓으로 국방부는 군인이 아닌 민간전문인력인 군무원들을 위병소 근무에 투입하고, 당직사령, 당직사관을 맡기는 해괴한 일까지 벌이고 있다. 전쟁이 나면 상황을 지휘해야 할 당직계통을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 맡겨놓은 셈이다.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군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당면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후보는 이제 없다.

2024년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부승찬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19년 56만 2600명이었던 우리 군 병력은 문재인 정부의 병력 감축 및 군 구조 개편의 결과로 2022년 50만 700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3년에도 47만 7500명으로 더 줄어들었다. 5년 새 10만에 가까운 병력이 줄어든 것이다.

2003년에 태어나 2023년에 20살이 된 남성의 수는 25만 명이고, 2020년에 태어나 2040년에 20살이 될 남성의 수는 절반 수준인 14만 명이다. 인구 감소는 상수이고, 우리 군도 지금의 구조로 버틸 수 없다는 것 역시 예정된 미래다. 혹자는 인구 감소에 대비해 간부 정예화와 모병 확대를 얘기하지만 지금도 간부가 모집이 안되는 판에 모병이 가능할 턱이 없는 것이 객관적인 우리 군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니 군 간부 처우를 개선해 군으로의 유인을 높이고, 간부 선발 전략을 개혁하자는 공약이 후보마다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 몇 명까지 줄일 것인가?

지난 26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로 입영하는 장병 가족들이 병무청 '현역 입영문화제(청춘 예찬 콘서트)'를 관람 후 입대하는 아들을 배웅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간부 선발 전략이나 처우 개선에 앞서 풀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 군의 병력을 몇 명까지 줄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 군의 편제는 현재 50만 명에 맞춰져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미 2023년 기준 우리 군은 47만 7500명으로 총원을 못 채우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이 모자란 사정은 앞으로 더해지면 더해졌지, 덜해질 일은 없다.

병력 총원을 줄이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병력을 줄이지 않으면 여성 징병제 등 군대 갈 사람을 늘리는 방편을 택하던지, 현재의 복무 기간을 늘려야 하는데 모두 비현실적인 선택지다. 군대에 가 있는 사람이 많아지거나, 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사회엔 산업인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선 때만 되면 여성징병제가 고개를 들다가 정작 본선에 접어들면 어떤 후보도 이를 제시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병력을 줄이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람만 줄인다고 능사가 아니라 사람이 속해 있는 부대 편제와 사람을 운용하는 방위 전략이 다 바뀌어야 한다. 이에 따른 국민들의 불안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때문에 대선과 같이 국민의 관심이 나라의 미래로 집중되는 시기에 우리 군의 적정 병력 문제에 대해 후보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 중 적정병력을 제시한 후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30만 명)가 유일하다. 다들 병력 감소를 예정하고 있으면서도, 적정병력 문제는 슬그머니 묻고 지나가는 모양새다. 각자 복안이 있는데 공개하지 않는 것인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감군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선마다 반복되는 껍데기뿐인 병역 제도 논의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

병력구조 개편 없는 국방 개혁은 허울에 불과하다. 관리하기 어려운 낡은 집에 자꾸 예쁜 벽지와 장판만 갈아 끼운다고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되겠는가? 감군과 군 구조 개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본질에 닿지 못한 공약의 면면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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