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더 현대의 LG 베스트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 박사 졸업 후 1년 만에 교수 임용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논문을 엄청나게 많이 썼다고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연구가 가능했는지?
"사실 논문을 박사 초반부터 많이 쓰기는 했다. 한국수력원자력 퇴사 후 (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한수원에서 일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석사를 하게 됐는데, 학부 때 사회복지 전공이 아닌지라 '여기선 혼자 잘해야겠다'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입원하면서도 주사 꽂고 논문 쓰고... '더 많이,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장애 연구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단순히 내가 장애 당사자로서 이런 연구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에서 온 것만은 아니기도 했다. 장애 연구를 하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장애 당사자다 보니 숫자만으로도, 경험만으로도 보이는 게 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완전히 '덕업일치'였다."
"장애가 저를 더 좋은 연구자로 만들어줬다"
- 문 교수를 수식하는 문구에 '장애인'이라는 수식어가 흔히 붙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실 그 수식어가 싫다. '중앙대 최초 지체장애 교수' 같은 표현이 물론 맞기는 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그걸 강조할 때마다 나의 전문성과 정체성이 '장애' 하나로 수렴되는 느낌을 받는다. 장애를 가진 누구도 전문성을 가질 수 있고, 그걸 기반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사회가 그 바운더리를 자꾸 막는다는 느낌이다. 저는 오히려 장애가 저를 더 좋은 연구자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단순히 장애가 아니라, 그 장애를 통해 축적된 '전문성'이다."
- "장애가 삶의 자원이 된다"는 말을 했는데 그런 의미인지?
"장애 연구를 하면 차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장애인은 피해자'라는 틀에만 집중하는데 그건 바람직한 시각은 아니다. 장애인은 차별도 받지만, 동시에 법과 제도 개선의 수혜자이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능동성도 있다. 나는 연구하면서 항상 이 양면을 함께 보려고 한다 '차별'만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 차별을 딛고 삶을 재구성하는 능동성도 함께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LG전자가 '볼드무브'라는 장애인 접근성 커뮤니티를 통해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수집하는데 이는 '장애 전문성(disability expertise)을 활용하는 사례다. 장애 당사자가 네트워크와 경험을 활용해 자기 삶을 발전시키고 사회가 발전되도록 하는 경험을 장애 전문성이라고 부른다.
장애인이 장애 때문에 생긴 다른 2차적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투석을 하게 된다든지, 목발을 짚다가 어깨 회전근개가 파열돼 전동휠체어를 타게 된다든지 하는 경우다. 그런데 장애당사자들은 다른 비장애인들 같으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2차 장애를 비교적 덤덤히 받아들인다. 장애 해석의 경험이 있어서 빠르게 수용하고 삶을 빠르게 재구조화한다. 예를 들어 뇌병변 장애인이 목디스크로 전신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는데 그분은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늘리고 집을 빠르게 바꾸는 등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 삶을 재구조화하더라. 장애 당사자들에게 그런 네트워크와 경험은 정말 큰 자원이다."

▲지난 7일 교수실에서 홍윤희 무의 이사장과 인터뷰하고 있는 문영민 교수.
홍윤희
- 연구가 실제 일상과 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해, 연구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예측하고, 그걸 잘 설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디지털 기술이 만났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같은 것? 얼마 전 싱가포르 음식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배달하는 장애인 배달원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장애인 기사들의 노동권은 어떻게 될까?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다.
또 하나, 1인 가구 장애인의 삶에 대한 주제를 탐구해 보고 싶다. 지금은 '탈시설'이나 '저소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제는 지역사회에 사는 1인가구 장애인 지원 체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화에 따른 삶의 양식을 잘 예측하고 대비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 공부가 아닌 다른 진로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지금은 법도 많이 바뀌었고, 사회참여의 길이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 더 다양해졌다. 장애 경험이 오히려 자원이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다. 어디서든 '장애인으로서 최초'가 되는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장애인 누구누구'라는 타이틀에 가두지 말고, 그걸 넘어서는 삶을 상상하고 만들어가셨으면 좋겠다."
- 휠체어 타는 내 딸은 올리브영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꿈이다.
"'멋진 꿈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인터뷰했던 60대 장애여성이 "나는 어릴 때 꿈이 없었고, 나한테 전화 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따님이 올리브영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는 것이 장애인 포용적인 사회 변화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세상으로 점점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장애와 건강' 2024 연구성과 공유회에서 나온 결과 중 유난히 내 마음을 울리는 내용이 있었다. 지체장애인들이 이동의 어려움으로 인한 아동기 교육적 배제 경험이 많을수록 성인기 자살 생각이 최대 3.8배까지 증가하더라는 내용이다. 아이가 어릴 적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밟히면 책임 못진다"라며 거부당하고,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서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오지 마라"는 간접적 거부를 당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문영민 교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연구를 해서 이렇게 일상적이며 은근한 차별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 그가 말하는 '장애 전문성'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하는지 더 깊고 넓게 탐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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