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30 06:48최종 업데이트 25.06.30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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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주권자인 시민기자의 신분에 대한 우려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민 단속에 관한 기사를 '이미현'(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라는 가명으로 싣습니다.[편집자말]
2022년 6월 2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경찰이 버려진 트레일러를 조사하고 있다. 이 트레일러 안팎에서 중남미 출신 이주 노동자로 추정되는 48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고 열사병으로 고통받던 이들은 지역 병원으로 이송되었다.AFP 연합뉴스
2022년 6월 27일,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인근에서 버려진 트레일러 한 대가 발견됩니다. 차량 내부와 주변에서는 48명이 숨져 있었죠. 이들은 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 출신의 밀입국자들로 사인은 고온과 질식이었습니다.

당시 텍사스주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트레일러 짐칸에는 냉방장치가 없었고 이들 손에는 시원한 물 한 병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차량 발견 당시 살아있던 16명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5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국 53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이 사건은 미국 밀입국 관련 최악의 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저는 영주권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갱신을 했습니다. 미국 영주권은 10년 주기로 갱신을 해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신청하면서 400달러 정도를 내면 새 영주권이 집으로 배송됩니다. 저도 처음 영주권을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고 갱신에 적지 않은 돈도 들어갔지만 앞서 소개한 뉴스를 접하면서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원한 집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으로도 10년간 미국 체류기간을 보장받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에 용케 남든 밀입국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는 그저 골치 아픈 '이민자'에 불과한 듯합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트럼프 2기 100일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정책의 거의 모든 부분을 '반이민'으로 방향 전환하면서 정규이민은 축소하고 단속은 강화하는 바람에 이민자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이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가 아예 미국 내 이민자들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합법적인 체류 신분이든 범죄 기록이 있든 이민자는 이민자일 뿐입니다.

처음 대선에 나서던 순간부터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등 이민 문제를 쟁점으로 삼아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조 바이든에게 정권을 내주면서 자신의 이민정책이 잠시 막혔지만 다시 재선을 노리면서 트럼프는 전보다 거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를테면 바이든의 이민정책을 가리켜 "역사상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라고 비난한 것처럼요. 대선 토론회에서는 전 정부를 겨냥해 "길가의 범죄자들을 데려다 모두 미국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바람에 베네수엘라와 다른 국가들에서 범죄율이 현저히 줄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정치적 수사이고 증거는 없었죠. 트럼프는 바이든의 국경정책을 "미국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라고까지 비판했습니다.

'미국우선주의'와 '가장 큰 규모의 추방'

2024년 10월 24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템피의 뮬렛 아레나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지층을 매료시킨 트럼프의 이데올로기는 "미국우선주의"이고 이를 떠받치는 기둥은 그의 반이민정책, 그중에서도 그가 약속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추방 프로그램"입니다. 취임 몇 시간 만에 백악관은 "국경 지키기"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트럼프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비시민권자를 구금하도록 지시합니다.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LA) 등 민주당 권력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은 트럼프 지시에 의해 우선적인 단속을 당했습니다. 특히 LA에서는 대규모 항의 집회가 일어난 이후 반이민 기조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들 도시가 불법 이민자를 이용해 유권자 기반을 확대하고, 선거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며, 열심히 일하는 미국 시민들로부터 좋은 일자리와 혜택을 빼앗는 곳이라고 규정합니다. 트럼프의 의지에 힘입어 일터는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학교나 병원, 교회와 같이 과거 '피난처'로 불렸던 곳에서도 단속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런 이민단속으로 한인 단체들도 "지역사회와 사업체에 피해를 받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북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대형 한인 식품매장에 10명의 이민 단속요원이 나타나 2명 이상의 노동자가 체포되었다고 밝히면서 "향후 단속에 대비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욕과 뉴저지 한인 커뮤니티 민권센터의 김종훈 소장은 "한인 소유의 네일 업소 몇 곳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했습니다. 무서워서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간 수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뉴욕 인근 네일샵 비즈니스는 약 70~80%가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트럼프 1기 시절 불체자 단속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 남미계 노동자들이 출근하지 않아 한인 업주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는 정책이니만큼 한국 정부의 도움도 한계가 있습니다. LA 총영사관을 비롯한 미국 내 총영사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기조에 대한 언급보다는 불체자단속시위와 관련한 공지를 통해 한인들의 안전과 범죄 피해에 유의하라는 안내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농부들을 보호하라"와 "불법노동자들을 추방하라"

6월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 단속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시위대가 연방 건물을 보호하는 캘리포니아 주방위군과 대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로부터 추가 지원을 요청받지 않았음에도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진행 중인 이민 단속에 대한 대규모 시위 이후 주방위군 2000명을 배치했다.EPA/연합뉴스

현재로서는 트럼프의 불법체류자 단속이 그렇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원래 이민세관단속 집행관들이 부여받은 목표는 트럼프 임기 처음 5개월간 하루 650건이었지만 트럼프의 일갈로 하루 3000건 체포로 목표량이 껑충 뛰었습니다. 이민세관단속국은 트럼프 2기의 첫 100일 동안 6만 6463명의 불법 외국인을 체포했고 6만 5682명을 추방했다고 밝혔음에도 트럼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아직 공식적인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민정책기구(MPI)에 따르면 올해 추방될 것으로 예상되는 불법체류자의 숫자는 50만 명입니다. 트럼프가 공언했던 100만 명의 절반에 불과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렇게 비판했던 바이든 정부에서 2024년에 추방했던 68만 5000명과 비교하더라도 크게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미미한 성과도 문제지만 사실 트럼프의 두 가지 약속에는 큰 모순이 있었습니다. 앞서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와 '가장 큰 규모의 추방'이 유권자들을 매료시킨 모토라고 했었죠? 그렇지만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쫓아낸다 해도 오히려 자국민이 피해를 입는 영역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트럼프 지지자들의 산업인 농업이죠. 지난 대선 결과 농업으로 먹고사는 지역에서 무려 78%의 트럼프 지지가 나왔다는 보도가 이 사실을 말해줍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트럼프가 외쳤던 "우리 농부들을 보호하라"와 "불법노동자들을 추방하라"가 충돌하게 됩니다.

지난 14일 CBS는 이민세관단속국이 농장, 호텔과 식당에서 이민자 체포를 중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가 자신의 이민단속이 주요 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는 것이지요. 이 산업들은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도 있지만 텍사스와 플로리다, 네바다와 같이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크게 지지했던 곳에서 이민노동력에 의존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게 나타납니다.

트럼프는 "농부와 접객업 종사자들이 오랜 기간 숙련된 노동자들을 잃고 있다"며 이들이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분명 이민노동자들의 '저임금'일 것입니다. 2024년 미국 농업종사자들의 평균 임금은 1년에 3만 5980달러로 나타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시카고대 연구에 따르면 불법이민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최저임금보다 37%나 임금을 덜 받고 있으며 임금체불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76%에 달하고 있습니다. 2021년 <가디언>은 이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15일간 고작 225달러를 받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누가 이들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잠시 중단되었던 이민 단속은 17일 재개되었습니다. 잠시 아량을 베풀었던 트럼프는 "범죄자들을 미국에서 몰아내야 한다"며 원래 입장으로 돌아갔습니다. 한때 '임금 상승'과 '농업 이탈'을 우려해 불법체류 노동자들에게 영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려던 법안에 반대한 농장주들이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네요. 트럼프가 원칙대로 지지자들의 사업장도 털어댈 것인지 지켜볼 일입니다.

[관련기사] 이것이 트럼프 미국의 처참한 현실... 영주권자인 저도 무섭습니다 https://omn.kr/2e91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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