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내 여성가족부.
권우성
이 회의록이 공개된 이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소위 말하는 '남성 문제'의 해결을 주문하는 게 맞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개인적으로 못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페미니스트도 성평등을 추구하는 정부부처인 여성가족부도 한국 남성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삶을 사는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평등은 결코 개인이나 특정 집단만을 구제하는 방식으로 성취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여성도 남성도 독자적으로 형성되고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성별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이 토대 위에 사회 구조가 만들어진다. 때문에 원인 파악부터 문제 해결까지 모두 거시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파악하고 해결할 것인가이다. 성별이분법은 여성과 남성을 다른 존재로 구분하고 분류하는 체계다. 둘은 전혀 동일하지도 동등하지도 않게 여겨지고 다뤄진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강력한 구분과 분류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토대로 구조화된 사회에서라면 여성과 남성이 겪는 문제 자체는 물론 원인도 성격도 해결 방안도 같을 수가 없다. 경쟁에서의 탈락과 그로 인한 우울과 자살, 심각한 빈곤 등 청년 여성과 남성이 비슷하게 겪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심지어 성폭력·고용 차별·몸에 대한 권리 등 전통적인 '여성 문제'로 분류되는 것들을 차치해도 그러하다.
한국 청년 남성의 진짜 문제
내가 생각하는 한국 청년 남성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집단적 극우화와 소수자 및 약자 멸시이다. 이는 왜곡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며 여성 및 소수자는 물론 청년 남성 본인들도 괴롭게 만든다. 사실 고용 불안정의 가속화와 빈부 격차의 심화 그리고 돈으로 돈을 버는 게 가장 쉬워지는 노동 가치의 평가 절하로 인해 평범한 모두의 삶이 사이좋게 어려워졌다.
만일 청년 남성이 실제로 차별을 겪는다면 여기에는 계급과 세대의 문제가 엮여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청년 남성들은 적대의 화살을 그쪽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평등을 주장하고 나온 여성·장애인·외국인 등 소수자들이 자신의 몫을 빼앗는다고 여긴다. 예전에는 관료 집단이나 고위직은커녕 직장과 공적 영역에서조차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 말이다.
소수자들은 특혜를 자신들은 역차별을 받는다는 청년 남성들의 주장 근간에는 이런 인식이 있다. 이 인식은 정당한가? 앞서 언급했듯 청년 남성들이 세대적으로나 계급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부여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별에 있어선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여전히 심심하면 채용성차별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곳이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과 이로 인해 불안정한 일자리로 몰리는 건 여전히 여성 문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청년 남성은 여전히 청년 여성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과 비교하면 이 유리함은 압도적인 수준이 된다. 청년 남성이 겪는 작금의 문제는 청년 여성이나 혹은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과의 관계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청년 남성 문제, 그렇게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어

▲남자들
pixabay
그런 상황에서 불똥을 엉뚱한 곳으로 튀기는 청년 남성들의 집단 문화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혐오와 멸시는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괴롭다. 당하는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설명을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는 사람은 왜 괴로운가. 혐오와 멸시는 왜곡된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를 장애인을 여성을 아무리 미워하고 너희가 우리 것을 뺏고 있다고 주장해도 실제로 뺏은 게 없기 때문에 돌려줄 게 없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타인으로부터 공감은커녕 동정도 얻기 어렵다. 물론 청년 남성들끼리는 아주 결집이 잘 될 것이다.
인간은 모두 외롭고 자신과 다른 존재의 인정을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왜곡된 현실 인식을 통해선 그런 게 될 리가 만무하다. 청년 남성들이 고독하고 분노에 괴로워하고 우울하다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청년 남성' 문제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성별이분법과 성역할 그리고 이에 기반한 사회 구조에 의해 일정 부분 초래됐다. 그렇다면 젠더 문제를 다루고 성평등을 추진하는 정부 부처에서 이를 다루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청년 남성도 차별을 겪고 있으니 이들을 구제하자'는 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선 안 된다.
나는 그 지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 다른 부처를 향해서라면 몰라도 적어도 여성가족부에 그런 지시를 내려선 안 된다. 그렇게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지시가 부당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일단 그렇다. 젠더적인 측면에서 청년 남성의 문제가 어디 있는지는 매우 명백하다. 바로 청년 남성에게 있다. 이들의 분노와 우울의 기저에는 집단적으로 왜곡된 현실 인식이 있다.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 이런 인식이 형성되었는지 탐구하고 그에 맞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만약 여성가족부에게 청년 남성을 괴로움에서 해방시키자는 주문을 하려면 적어도 이런 방식이어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