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선 1주년을 맞아 워싱턴 DC에 있는 대법원 앞에서 열린 트럼프 퇴진 시위에서 한 시민이 성조기를 거꾸로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0월 29일 한미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일단 미국발 관세 관련 불확실성은 해소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1월 5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조치가 적법했는지에 대한 심리를 시작했다.
쟁점은 국제경제비상법(IEEFA)을 근거로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가였다. 3시간에 걸친 심리에서 보수 대법관들조차 행정부 논리에 회의적이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일제히 트럼프 행정부가 패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법조계는 7대 2 또는 6대 3 판결을 예상한다.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를 위헌으로 판결하면, 한미 협상 타결안은 어떻게 되는 걸까? 협상의 법적 근거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 아닌가? 여러 의구심이 생길 법한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를 위헌으로 판결해도 관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우회로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판결 이후의 우회로
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관세를 위헌으로 판결하면 어떻게 되는가? 트럼프는 이미 답을 내놓았다. "경제적 재앙"을 경고하면서도 관세 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것은 허세가 아니다. 미국 무역법에는 대통령에게 관세 권한을 부여한 조항들이 이미 여럿 존재한다.
첫 번째 우회로는 1974년 무역법 122조(Section 122)다. 대통령이 "국제수지 위기"를 선포하면 의회 승인 없이 당일 발동 가능하다. 최대 15% 관세를 150일간 부과할 수 있다. 상무부 조사도 필요 없다. 대법원판결이 나온 그날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다. 150일이면 5개월이다. 그사이 다른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 된다.
두 번째는 1962년 무역확장법 232조(Section 232)다.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하면 사실상 모든 품목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법은 상무부 조사를 거치도록 되어 있지만, 트럼프는 이미 선례를 만들었다. 지난 3월 구리에 대해 상무부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에 50% 관세를 부과했다. 현재 12건의 232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욕실 세면대, 변기, 욕조 같은 위생도기에도 국가안보 위협이 적용됐다. 논리는 이렇다. 군사 시설에도 화장실이 필요한데 중국산 위생도기에 의존하면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미 잘 알려진 1974년 무역법 301조(Section 301)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명분으로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 중국에 대한 대규모 관세가 바로 이 301조에 근거했다. 관세율은 평균 19.3%였고, 대상 품목은 3700억 달러어치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그대로 유지했다. 지금도 유효하다. 301조의 장점은 명분을 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중국의 기술 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침해, 보조금 정책 등 얼마든지 '불공정'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세 조항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 모두 의회가 자발적으로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한이다. 원래는 무역 자유화 시대에 신속한 대응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회를 완전히 우회하는 도구가 되었다. 둘째, 대통령의 재량권이 상당히 넓다. '국제수지 위기', '국가안보 위협', '불공정 무역 관행'은 모두 대통령이 판단한다. 그 주관적 판단에 대한 사법 심사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이 미국과 타결한 관세 협상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대법원판결과 무관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이 상호관세를 무효화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즉시 232조나 301조로 전환하여 같은 품목에 같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상호관세로 부과된 품목들에 '국가안보 위협'이나 '불공정 무역 관행'이라는 명분을 붙이면 된다. 법적 근거만 바뀔 뿐, 합의된 관세율과 조건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예상되는 작동 방식은 더 교묘하다. 대법원이 상호관세를 무효화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즉시 122조로 '임시' 관세를 15%까지 5개월 동안 부과할 수 있다. 그 5개월 안에 232조 조사를 완료하고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관세를 연장할 것이다. 232조에 대해서도 소송이 제기되면, 301조로 전환하면 된다. 법적 근거만 바뀔 뿐, 관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렇듯 대법원판결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의회가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의회는 왜 무력한가

▲10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이 연방정부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워싱턴 DC에 있는 국회의사당에 불이 켜져 있다.
UPI 연합뉴스
1970년대 초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의회를 각성시켰다. 닉슨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목격한 의회는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입법적 거부권(legislative veto)"이었다. 대통령이 행정 조치를 취하면, 의회가 양원 결의만으로 이를 즉각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이었다. 대통령 서명도 필요 없었다. 의회는 이 장치를 적극 활용했다.
1976년 국가비상사태법(NEA)을 만들 때도 이 장치를 넣었다.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의회가 양원 결의로 즉각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도 마찬가지였다. IEEPA는 대통령에게 비상시 경제 제재 권한을 주되, 의회가 언제든 제동을 걸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당시 의회의 의도는 명확했다. 행정부에 신속한 대응 권한을 주되, 그것이 남용되면 즉시 회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3년 대법원판결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 이민국 대 차다(INS v. Chadha) 사건이었다. 학생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케냐 출신 인도계 영국인 자그디시 라이 차다는 비자 만료 후에도 체류했다. 이민 판사는 그를 추방하면 극심한 고통을 겪을 것이라며 추방 유예를 결정했다. 그런데 하원이 단독 결의로 이 결정을 뒤집고 추방을 명령했다. 당시 이민법은 하원이 행정부의 추방 유예 결정을 단독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통령 서명도 상원 동의도 필요 없었다.
차다는 이것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1983년 대법원은 7대 2로 그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의 논리는 간단했다. 대통령 서명 없이 법을 만들거나 뒤집는 것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법은 모든 입법 행위에 대통령 서명을 요구한다. 입법적 거부권은 이 원칙을 우회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는 판단이었다.
이 판결의 파장은 엄청났다. 의회가 대통령의 비상사태 조치를 종료하려면 이제 '합동 결의안(joint resolution)'을 통과시켜야 했다. 합동 결의안은 일반 법률과 같아서 대통령 서명이 필요하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그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자기가 선포한 비상사태를 왜 끝내겠는가. 1976년과 1977년에 의회가 만들어놓은 비상 브레이크는 사실상 작동 불능이 됐다.
올해에도 미국 의회가 트럼프의 관세를 견제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두 차례 시도가 있었다.
첫 번째는 캐나다 관세 철회 결의안이었다. 상원은 51대 48로 이를 통과시켰다. 4명의 공화당 의원이 당론을 거스르고 민주당과 함께 투표했다. 의회가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한 순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원이 표결 자체를 막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무역검토법 2025'였다. 상원 재무위원장 척 그래슬리(공화당)와 마리아 캔트웰(민주당)이 발의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면 의회가 60일 내에 승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당적 법안이었고, 동맹국들도 환영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즉각 거부권을 예고했고, 하원은 표결 자체를 하지 않았다.
설령 두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끝이다.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양원 모두 2/3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7석이다. 하원은 공화당 220석, 민주당 215석이다. 2/3 찬성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의회는 두 가지 면에서 무력하다. 대통령이 부여한 비상 권한은 대통령 동의 없이 회수할 수 없고, 새로운 법을 만들어도 대통령 거부권을 극복할 수 없다. 1983년 대법원판결이 만든 구조다.
무력화된 법치주의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대법원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는 계속될 것이다. 의회는 구조적으로 무력하고, 행정부는 우회할 방법이 이미 많다. 법원의 판결이 관세 정책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제도와 권력의 관계다. 삼권분립은 존재하지만, 세 권력이 균형을 이루는지는 별개 문제다. 의회가 권한을 자발적으로 위임하고, 그것을 되찾을 수단을 잃으면 입법부는 형식만 남는다. 법원이 판결을 내려도 행정부가 다른 법적 근거를 찾으면 그 판결은 실효성을 잃는다.
한국이 직면한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10월 미국과 타결한 관세 협상은 상호관세를 전제로 했다. 대법원이 그 전제를 무너뜨려도,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법적 근거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법적 근거만 바뀔 뿐, 합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의 판결이 협상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
법원에서 이기고도 내용은 지는 법치주의,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가 현재 직면한 구조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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