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3 20:01최종 업데이트 25.11.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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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밤이 지난 뒤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있다.Bundesarchiv

한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건 유럽인들의 반유대 감정이다. 이들의 반유대 감정은 유럽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로마 제국 초기(3~6세기)에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며 유대인의 제도적 박해가 시작되었다. 유대인 강제 추방, 개종 강요, 내지는 대규모 집단 폭력과 학살이 반복되다가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였다. 이후 지금까지 80년 정도 잠잠했었다. 그 끔찍한 일이 '절대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모두 합의한 듯 보였다.

그런데 최근에 발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유럽 전역에서 다시 유대인을 겨냥한 폭력과 위협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독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반유대 감정이 종식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그 속성상 종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단지 억제되었던 듯하다.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이 행위가 되어 나타나는 것만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에서 시간상으로 멀리 떨어진 세대일수록 기억이 희석되었기 때문인지 의식의 턱도 낮은 것 같다.

'팔라펠 평화 티셔츠'를 입고 당한 봉변

니콜라이 도브레프와 2인의 디자이너가 제작한 팔라펠 평화 티셔츠. 히브리 문자, 로마문자 및 아랍문자로 팔라펠이라고 적혀 있다. https://nikolaidobreff.de/에서 판매 중이다.Studio Nikolai Dobreff

얼마 전 베를린 어느 카페에서 벌어진 일만해도 그렇다. 젊은 연인 한 쌍이 티셔츠 때문에 카페에서 쫓겨난 사건이 있었다. 여자 친구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라틴 문자, 아랍 문자, 그리고 히브리 문자로 각각 '팔라펠(Falafel)'이라고 적혀 있었다. 커피를 주문 하려는데 직원이 티셔츠를 유심히 보더니 혹시 거기 적힌 글자가 히브리어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한 뒤 아랍어로도 적혀 있다고 설명했으나 당신들에겐 커피를 팔지 않겠으니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시오니스트(유대인 국가 건설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직원은 당신들은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학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냐고 퍼부으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입고 있던 팔라펠 티셔츠는 사실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특별히 디자인된 것이었다. 독일, 이란, 이스라엘 출신의 디자이너 세 명이 공동 작업으로 만든 그 티셔츠의 공식 명칭은 '팔라펠 평화 티셔츠'이다. 팔라펠은 중동 지역에서 유래한 길거리 음식으로 병아리콩을 갈아 허브와 향신료를 넣고 완자처럼 둥글게 빚어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것이다. 베를린에 팔라펠 집이 많은데 대개는 레바논 사람들이 운영한다. 그러나 레바논뿐 아니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등 중동의 공통된 음식이기에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채택된 것이다.

게다가 티셔츠의 판매 수익금은 '우먼 웨이지 피스(Women Wage Peace)'에 전달된다. 이 단체는 이스라엘의 여성들이 주도하는 평화운동모임으로 약 5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비폭력적 해결을 추구한다. 평화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사 입은 티셔츠였지만 카페 직원에게는 시오니즘의 상징으로 보였던 것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인가?

독일 심리학자 우도 라우크플라이시(Udo Rauchfleisch)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공격성을 타고 태어나며, 무의식적으로 '적'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로마 희극 작가 플라우투스가 한 말 "호모 호미니 루푸스(Homo homini lupus)", 즉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그 이면에는 내 편, 네 편의 흑백논리를 대입하여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정리하고자 하는 심리가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 내 편이 아니면 늑대처럼 물어뜯을 수 있는 본능이 존재하며, 희생양을 찾아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죄책감? 유럽인들은 기독교에서 주입한 원죄 의식이 매우 강하다. 아담과 이브가 지은 죄를 누구나 상속받았다는 개념이다. 모두 타고난 죄인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물론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반발하지만 한번 주입된 것은 떨쳐내기 힘들다.

원죄 의식이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적지 않다. 독일인들의 경우 거기에 1,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보태져 정신적 부담이 크다. 정직한 사람들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심해서, 잘못을 지적받으면 당장 십자가에 못 박히는 줄 아는지 바짝 긴장하거나 심한 경우 사색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저 웃고 넘어가는 적이 거의 없다. 그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아 죄를 전가하는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독일인에게 유대인은 타고난 희생양인 것일까? 예를 들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아무도 러시아 사람들에게 집단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마스가 먼저 이스라엘에 테러를 가했을 때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단으로 욕을 먹지 않았다. 유독 유대인만은 늘 집단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물론 정치가들은 이스라엘을 비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우리 독일인만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 중에는 오랜 가해자 역할에 지친 사람들이 많다.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및 기타 형태의 집단 중심 인간 혐오가 측정이 가능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6.5%는 유대인들이 오늘날 나치 과거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한다고 의심했으며, 추가로 19%는 반유대주의적 입장에 대해 이도 저도 아닌 불확실한 태도를 보였다. 경종을 울려 마땅한 상태다.

11월 9일에 다시 들려온 공허한 구호 "절대 다시는"

'걸림돌'이라 불리는 보도의 황동 명판 주변에 11월 9일 이른 아침 누군가 장미와 촛불을 놓아두었다. 부모와 열 두 살짜리 아들이 끌려간 베르트하이머 가족.고정희

이 글을 쓰는 오늘, 11월 9일은 포그롬(소위 '수정의 밤') 기념일이어서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1938년 11월 9일 밤에 유대인에 대한 잔혹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유대인 회당, 유대인 묘지, 상점과 집회 장소 등이 파괴되었으며 많은 유대인들이 살해당했다. 그날 밤에 깨진 상점의 유리가 길에 널린 채 가로등 빛을 받아 수정같이 반짝였다고 해서 수정의 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며칠 뒤 유대인 수만 명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해마다 11월 9일이 되면 여러 행사장에서 "절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 들려온다. 그런데 올해는 그 구호가 공허하게 들린다. 비극이 다시 시작될 것인가?

아침 산책길에 낯선 광경을 보았다. 보행로에 박혀있는 '걸림돌' 주변에 누군가 장미와 촛불을 놓아 두었다. 걸림돌이란 보행로 포장석 크기, 즉 10×10센티미터의 콘크리트 정육면체에 황동 명판을 씌우고,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묻은 것을 말한다. 예술가 귄터 뎀니히가 1996년 불법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 일파만파로 번져 베를린에만 약 일만 개, 유럽 전체에는 약 십만 개가 매설되었다.

끌려간 유대인들이 마지막에 살았던 주택 바로 앞 보도에 매설했기 때문에 걸림돌을 발견하고 그 앞의 집을 올려다보면 여기 살던 이웃이었구나 싶어 전율이 온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기도 하지만 더러 장미를 놓아두는 천사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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