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3 06:50최종 업데이트 25.11.13 06:50
  • 본문듣기
9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셧다운 40일째를 맞은 이날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 방문객이 국회의사당을 촬영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정치는 결단의 기술이다. 방향을 정하지 못한 선의와 주저하는 타협은 결국 정책 부재와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전략이 없는 정치, 의지가 흐려진 권력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지우고 만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언제나 더 조직적이고 냉혹한 힘이 차지한다.

11월 초 미국의 오프 이어(Off-year, 연방 선거가 없는 홀수 해)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 각지의 주와 대도시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모처럼 활력을 되찾았다. 생활비, 의료, 교통 같은 민생 의제가 표심을 움직였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역에서 거둔 이 승리의 기세가 정작 워싱턴의 연방 예산 전장에서는 이어지지 못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다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공화당에 주도권을 내주었다. 야당으로서 명분과 여론의 우위를 쥐고도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이다.

사태의 중심에는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이 있었다. 여야 대립으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정부 운영비가 끊기고, 공무원 급여와 공공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가 40일간 이어졌다. 사상 최장 기록이다.

이 기간 여론조사에서 셧다운의 책임이 공화당과 백악관에 있다는 응답이 두 자릿수 차이로 높게 나타났지만, 민주당은 이 우위를 살리지 못했다. "국민 피해 최소화"를 명분으로 임시예산안(CR)에 합의하며 결국 물러섰고, 그렇게 이번 대결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한 쪽이 아니라 이를 대신 걱정한 쪽의 패배로 남았다.

애초에 민주당의 전술 목표는 분명했다. 모든 미국인의 의료 접근성을 지키기 위해 오바마케어(ACA, 전국민건강보험) 보조금 연장을 예산안에 포함시키는 일이었다. 이 사안은 대중적 지지가 높았고, 공화당은 반대 과정에서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종 합의문에서 ACA 연장은 빠졌고, 대신 "향후 별도 표결을 추진한다"는 정치적 언사만 남았다.

반면 공화당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셧다운을 지렛대로 삼아 저소득층 식품보조 제도(SNAP)의 지급을 중단하고, 일부 연방 공무원에게 해고 통지를 내리는 등 강경 조치를 밀어붙였다. 취약계층을 볼모로 여론을 흔드는 전술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일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셧다운 탓으로 돌릴 만큼 여론에서 밀렸지만, 공화당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상원 표결의 과정도 상징적이었다. 공화당 전원과 일부 민주당 중도파가 손을 잡아 필리버스터(합법적 장기 토론)를 종결짓는 데 필요한 60표를 채우며 임시예산안(CR) 통과를 밀어붙였다. 민주당이 얻은 것은 정부 재가동과 공무원 해고 철회였고, 핵심이었던 서민 의료보조금 연장은 끝내 빠졌다.

솔로몬 앞에서 아이를 두고 다툰 두 여인 중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품을 비운 쪽이었다. 그러나 정치 현실에서 유권자는 솔로몬이 아니다. 그래서 종종 아이는 반으로 가르겠다고 나선 쪽의 손에 들어간다.

정치는 두려움과 책임 사이에서 방향 택하는 일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린 원'에서 내린 후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정부 셧다운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UPI 연합뉴스

정치에서는 마음의 진실보다 눈앞의 결과가 먼저 판단된다. 선의의 포기는 미덕이 아니라 패배로 기록되고, 결국 권력의 자리에서 가장 먼저 밀려난다. 이 장면은 민주당 내부의 중도와 진보 간 갈등을 드러냈고, 당 안팎에서는 "굴복"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결국 문제는 리더십의 무게다. 무기력한 리더십은 '피해 최소화'라는 말로 스스로의 후퇴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런 후퇴가 반복될수록, 상대의 강압적 방식은 새 기준으로 굳어지고, 그 대가는 언제나 가장 약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민주당은 이번 셧다운을 "국민의 의료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규정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단을 미뤘다. 여론도, 정책의 명분도, 국민의 고통도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켰지만, 지도부는 제도적 관성에 기대어 행동을 멈췄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무기력이었다.

정치의 시간은 길게 보이지만, 결정의 순간은 짧다. 선거에서 얻은 정치적 위임은 갈등의 절정에서 구체적 성과로 전환될 때만 유지된다. 승리의 기세가 행정력과 입법력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지지는 사라진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권력을 쥐고도 레드라인을 설정하지 못한 쪽이 비용을 치른다. ACA 보조금 같은 생활 밀착 의제는 당파성을 넘어선 공공선의 문제다. 이런 사안에서조차 물러서면, 더 갈라진 의제에서는 결단이 불가능해진다.

정치의 신뢰는 언제나 명분의 강도보다 실행의 일관성에서 결정된다. 옳은 일을 알고도 주저하는 순간, 그 옳음은 스스로 힘을 잃는다. 명분이 분명하고 국민적 공감이 확인된 사안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갈등과 저항을 피하기 위한 타협은 잠시 평화를 가져오지만, 그 평화는 곧 새로운 불신의 씨앗이 된다. 정치가 두려움을 이유로 멈추는 사이, 제도는 낡은 질서를 회복하고 정의는 다시 미뤄진다.

역사는 언제나 결단한 쪽의 시간으로 움직인다. 불완전하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정치만이 공동체의 신뢰를 남긴다. 혼란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안전한 균형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에 대한 믿음과 책임을 감수하는 용기다. 그 용기가 있을 때만, 권력은 비로소 공공의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치는 두려움과 책임 사이에서 방향을 택하는 일이다. 고민과 주저함 속에서 불의와 타협을 택하면, 권력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비운다. 그 빈자리는 언제나 기득권의 기술이 채운다. 무기력한 권력은 악의 편이다. 승리의 순간에도, 시련의 순간에도, 의지와 능력으로 그것을 증명하는 쪽만이 공공의 정의를 지킬 수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