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위대가 마켓 스트리트를 따라 유엔 광장까지 행진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의 군사 행동에 반대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물론 이런 정치적 이유 이외에도, 인권탄압이나 권위주의적 통치, 벗어날 기미가 없이 파탄 난 베네수엘라 경제 상황이 미국 침공의 구실로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초인플레이션은 매년 수백 %의 물가 인상률을 기록했고, 2018년에는 무려 6만 5천 %의 물가 인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화폐에 기반한 임금체계가 붕괴한 지도 오래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런 경제 파탄의 이유로 국제유가 하락이나 지나친 포퓰리즘적 복지 지출, 공식 환율과 변동 환율, 암시장 환율 등 3중 구조화된 환전 시장 왜곡, 정부 관료들이 개입된 환치기 등 부정부패, 수입품을 둘러싼 밀수와 사재기, 불법 투기 등을 거론해 왔다. 이런 분석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지만 본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OPEC국가 중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4위 수준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경제 위기가 본격 시작할 즈음인 2017년을 기준으로 정부 재정의 75%와 달러 수입의 95% 정도를 석유 산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2010년대 미국의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이 상품성을 갖기 시작하자 국제 유가가 지속적으로 폭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 유가 하락이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면, 국제 유가 상승기에는 베네수엘라 석유 수익이 늘었어야 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국제 유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유가의 변동성 때문이 아니라, 석유 생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미국의 강력한 제재 때문이다.
차베스 사후 대선에서 마두로가 당선된 1년 후인 2014년, 베네수엘라에서는 '과림바'로 불리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4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애초 타치라주 산 크리스토발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강간 미수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이 시위는 야당이 결합하면서 순식간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이 시위로 대대적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당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베네수엘라를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고위 간부 7명에 대한 금융거래를 동결했다.
본격적인 제재는 트럼프 1기인 2017년에 발생한 2차 과림바 시위부터다. 마두로 정부가 2017년 7월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하자 다시 일어난 과림바 시위는 공권력과 시위대, 시위대와 차베스 지지자 간의 충돌로 120명~16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격렬했다. 트럼프는 "군사개입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미국 금융기관에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가 발행한 채권과 부채에 대한 거래를 전면 중단했고, 이듬해인 2018년에는 베네수엘라 채무 관련 모든 거래를 금지하고 베네수엘라 외환보유고의 70%를 차지하는 금 거래마저 금지시켰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가 2018년 치러진 대선 결과에 불복해 스스로 대통령임을 선언했던 2019년부터 미국의 제재는 봉쇄수준으로 높아졌다. 트럼프는 모든 미국 기업의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와의 거래를 차단했고, 희석제 수출마저 전면 금지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중질유(heavy oil)로, 정제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상품 가치가 없다. 희석제 수출 금지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이후 트럼프는 석유 금수조치를 전 영역으로 확대하면서 베네수엘라산 원유 운송 업체와 관련 해운 회사를 제재했고, 석유를 물과 식품과 교환하려는 멕시코 기업도 제재했으며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연료 수송선을 나포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붕괴와 경제 위기는 단지 국제 유가의 하락 때문이 아니라, 석유의 수출은 물론 석유 생산과 시설 수리, 보수에 필요한 부품까지도 완전히 차단한 전면적 제재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 와중에도 미국은 잇속을 챙기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의 알짜배기 미국 자회사인 시트코(CITGO)의 자금이 동결되자, 미국 법원은 이들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의 수익 보전을 위해 시트고의 주식을 압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게다가 미국은 시트코의 경영권을 대통령을 자임한 후안 과이도에게 일방적으로 넘긴 후, 시트코에 투자한 기업에 채권 이자로 무려 7천만 달러를 지급하도록 했다. 결국 미국 법원은 2025년 12월 130억 달러의 기업가치가 있는 시트고를 59억 달러에 다국적 기업에 매각하도록 승인했다.
이번 마두로 부부의 납치 후, 트럼프는 미국 기업을 베네수엘라에 투입해 그동안 얻지 못한 '미국의 이익'을 되찾겠다고 노골적으로 선포했다. 이 모든 미국의 행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강탈'이다.
베네수엘라, 식민지로 전락할까?

▲지난 4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국기를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보란 듯이, 공공연하게. 베네수엘라 침공과 대통령의 납치는 미국 대외정책을 은밀하거나 그럴듯한 포장도 없이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냈다. 마약 밀매라는 명분이 미국 법정에서조차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팩트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트럼프의 구상은 마차도를 비롯한 베네수엘라 야권보다 부통령이 대행하고 있는 현 집권 세력의 굴복에 일차적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원해 왔던 베네수엘라 야권이 민심을 수습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야권은 끊임없이 분열했으며, 2019년에는 미주기구(OAS) 사무총장이 국제 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금 수백만 달러를 착복한 후안 과이도의 특사를 심각한 부패 혐의로 고발했을 정도로 청렴하지도 않다. 야권이 아니라 집권당이 미국에 협조한다면, 차베스주의 세력의 분열을 가속할 수 있고, 이는 미국의 최대 이익이 될 것이다.
만일 집권 세력이 미국과의 결사 항전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이 말 잘 듣는 야권에 권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 베네수엘라는 더욱 끔찍한 내전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미 2002년 3일 간의 쿠데타 당시 극우세력은 차베스 정부 각료의 집을 포위하고 백색테러를 시도한 바 있다. 노상원 수첩의 구상들이 베네수엘라에서 현실화하는 셈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집권 세력이 교체된다고 해서, 친미 정권의 평화로운 국정운영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베네수엘라는 볼리바르 혁명을 천명하면서, 줄곧 '이중 권력' 구상을 추진해 왔다. 혁명 정부 외에도 풀뿌리 자치 권력을 강화해 국가의 관료화를 막고 집권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소규모 지역마다 '공동체위원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몇 개의 공동체위원회를 묶어 코뮌을 만들어 지방정부 이외에 또 하나의 권력체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코뮌은 기본적으로 차베스주의자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마두로 정부에 종속된 세력은 아니다. 2022년에는 코뮌의 전국 조직인 '코뮌 연합'이 출범하기도 했다. 이들은 야권으로 권력이 넘어갈 경우,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이번 침공은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베네수엘라를 더욱 깊은 갈등과 적대의 상황으로 끌고갈 가능성이 크고, 역사적 제국주의가 그러했듯 내전적 상황을 활용해 미국은 최대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나르시시즘과 마키아벨리즘, 그리고 사이코패스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
마두로 정부가 차베스 정부에 비해 정국 장악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 리더십이 취약하다는 평가는 사실이다. 노골적인 선거 부정이 없었더라도 마두로 정부는 공정한 선거 관리를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통치 행태도 권위주의에 의존했다. 차베스 지지자였던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마두로 반대파로 옮겨간 것도 미국의 공작 때문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유가 하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거나 자신의 취약한 능력을 신격화의 수준에 오른 차베스의 후광으로 보완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와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미국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의 국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정치적 혼란을 부추기고, 경제를 봉쇄한 뒤 이익 손실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마두로 정부의 무능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어떤 정권이나 세계 석학이 이런 식의 공격에서 유능함을 자랑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의 침공은 이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약육강식의 시대로 회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미국 정신분석학자들은 트럼프의 정신상태를 병적인 자기애에 빠져있는 나르시시즘(Narcissism), 조작과 거짓말에 능숙한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 양심과 책임감 없이 자신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반사회적 경향인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분석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의 침공은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다.
사이코패스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제국주의는 세계 곳곳을 식민화하지만, 그만큼의 동조자들도 만들어 내고 깊은 사회갈등을 촉발한다.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우리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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