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4 11:26최종 업데이트 26.02.1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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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교체되고, 코스피 5000을 돌파하면서 맞이한 설날이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합니다. 시민기자들이 전하는 설날 서민 민심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 깊이 새겨듣길 바랍니다.[편집자말]

택시 기사 이미지연합=OGQ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한 지 햇수로 3년 차다. 이제 갓 60살이 된 나는 서울 택시 기사 넷 중 한 명이 70대인 이쪽 업계 말로 '택린이' 소리를 듣는다. 나이도 경력도 '햇병아리'라는 단어조차 과분하다는 얘기다.

택시를 시작했을 때 최소 3년은 법인택시처럼 하루 12시간 열심히 운전을 해서 가능한 만큼 벌어두자 했었다. 건강이 허락해서 아직까지는 그걸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만큼 수입은 월급쟁이였을 때에 비해 만족하지만 역시나 그만큼의 강도 높은 노동이 따라주었기에 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그런 높은 강도의 노동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관건이다. 그런 한편으로 저녁이 있는 삶으로 다시 회귀하고 싶은 갈망에 늘 허덕인다. 말하자면 지금 나는 과도한 노동의 늪에 스스로 풍덩하고 빠져들었다.

이유는 내 나이대의 가장이라면 금방 생각해 낼 그런 종류다. 그러니까 내 아이들이 학교를 끝내면 취업이 남았고, 취업을 하면 결혼인데, 부모 도움 없이 그게 불가능한 현실인 사회. 부모 노릇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를 알 수 없는, 자식들 뒷바라지와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셋집과 더 늙어 받아야 할 연금의 첫자리 같은 것들 말이다.

내게 코스피 5000은 그저 알쏭달쏭한 먼 세계의 이야기다. 10억짜리 집을 8억 전세금을 받고 사실상 2억을 주고 사서, 몇 년 후 20억이 된 집을 팔아치우는 억소리 나는 돈벌이도, 그저 나는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돈으로 돈을 벌고 아파트로 아파트를 버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슬기롭게 살지 못하고 그저 우매한 노동 하나로만 살아온 미련한 사람이다. 내가 택시를 시작했을 때 스스로 약속했던 3년의 기간은, 아직 6개월이 더 남았다. 그 후에 어떻게 할지는 그때가서 결정할 생각이다. 말하자면 내겐 미련하고 우매한 노동의 세월이 기약이 없다는 얘기다.

택시는 그런 직업이다. 오로지 내 몸 하나로 시간을 버티고 버텨서, 버틴 시간만큼이 정확하게 돈으로 환산되는 일이다. 내가 이 일을 하기로 한 것도 사실은 그것 때문이다. 소외된 노동이 아닌 내가 주인인 노동으로 내 삶을 감당할 수 있다는, 그래서 늙어가는 나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그것이었다.

택시에서 느낀 윤석열 시대의 민심, 그리고 계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킨 후의 모습.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인근에 모였으나 경찰 등이 막아서고 있다.권우성

택시에서 시간으로 환산되는 돈은 또한 세상을 반영했다.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지방에서는 손님도 같이 줄고 택시 기사들 수입도 함께 점점 줄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방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선배를 통해 알았다. 그런데도 지방의 개인택시 면허 시세가 서울보다 비싸다. 딱히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마땅치 않은 이유다.

그나마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이는 서울에서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지만 계절이나 시즌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졸업을 하고 새 학교로 진학하는 졸업과 입학 시즌에는 택시 손님이 눈에 띄게 적어지고 비가 잦은 장마철이나 연말 송년회 시즌에는 손님들을 실어 나르느라 택시가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런 택시 안으로 바깥세상이 함께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숱한 사람들이 내 택시를 타고 내렸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었는데, 그들 중 또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말은 이것이었다.

"기사님, 요즘 경기 어때요?"

윤석열이 대통령이었던 그때, 경제는 말도 아니게 형편없었다. 그에게서 비롯되는 말이 대개는 술이거나 도리도리거나 지금은 모두 드러난 뻔한 거짓말이었던 그때, 사람들이 내게 했던 말에는 부정적이면서도 우울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건 아무리 봐도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보이는 대통령의 진짜 모습이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기, 절망적인 정치현실을 바라보는 내 정서에 기반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확실히 엉망이었던 실물경제의 또 다른 징표였다. "요즘 경기 어때요"로 시작된 어느 자영업자의 심각한 하소연으로 나는 세상 물정을 감각했다. 다만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인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침탈했던 그날 이후엔, 또 다른 정서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 닿으면 위로 올라갈 일만 남는 법이다. 서둘러 달려간 시민들에게 빠르게 진압된 친위 쿠데타 세력의 잔당들이 국회와 정부 조직 안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던 그때도, 나는 당장은 비관했지만 미래는 낙관했다. 탄핵이 한 번 부결되는 날 저녁 택시 운전대를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달래면서도, 나는 희망을 거두지 않았다. 이미 물 건너간 계엄이 '바닥'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 택시로 실어 나르던 손님들 중에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을 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윤석열과 그의 잔당들을 신랄하게 저주했다. 그것이 내 택시 안에서의 민심이었다.

그 후로도 우리 사회는 극적인 우여곡절을 더 거쳐왔다.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석방,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재명 대표 유죄 파기환송 등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목을 칼에 찔리고도 살아남은 그의 운명은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코스피 5000p(종가 기준) 돌파’를 축하하며 직원들이 축하행사를 하고 있다.권우성

대선공약이었던 코스피 5000을 7개월 만에 이루어 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모두가 놀라는 그 주가지수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그건 내가 주가지수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었기 때문인데 더 놀라운 일은 나와 같았던 아내가 어느 날 스마트폰에 주식 앱을 깔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의 삶은 늘 겨울이다. 찬바람은 가난한 자의 문틈을 가장 먼저 파고들고, 물가 상승의 파도는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방을 가장 먼저 적신다. 거창한 경제 지표나 정치적 승리가 우리 집 식탁 위의 고기반찬을 매일 같이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본다. 계엄의 어둠을 뚫고 국회로 달려갔던 그 시민들의 마음이 살아있는 한, 칼날에 찔리고도 다시 일어선 그의 운명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한, 지금 나의 노동은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소박한 확신 하나로 나는 다시 내일의 시동을 건다. 서민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팍팍하지만, 그 고단함 끝에 '상식이 승리하는 세상'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설연휴다. 고향에는 아직도 육십 먹은 아들을 보면서 "사랑하는 내 새끼"를 연발하는 구순의 어머니가 건강한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어릴 적부터 맵디 매웠던 어머니의 거칠고 마른 손이 반갑게 내 등짝을 때릴 때 나는 등에 박히는 통증이 언젠가부터 눈물겹다.

"아이고, 내 새끼. 먹고 사느라 을매나 고생이 많냐?" 구순의 노모에게 나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일 뿐이다. 택시 운전대를 잡으며 굽어가는 내 허리를 아직도 빳빳한 당신의 허리로 감싸안으실 때, 나는 비로소 고된 노동이 남긴 피로를 씻어낸다.

사실 나는 여전히 주식 차트의 붉고 파란 막대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아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여보, 오늘 내 주식이 10% 올랐어!"라고 흥분 섞인 목소리로 말해도, 내 머릿속에는 내일 채워야 할 택시 가스비와 곧 올려줘야 할 전세금이 먼저 떠오른다.

내일도 나는 다시 희망의 시동을 걸 것이다

택시가 시민들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연합뉴스

남들은 아파트 갭투자로 몇억씩 벌었다는데, 나는 오로지 내 몸 하나로 시간을 버텨가며 그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우매한 노동에만 매달려 왔다. 누군가는 나를 미련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택시라는 좁은 공간은 나에게 단순한 일터 그 이상이었다.

그곳은 세상의 민심이 흐르는 강이었고, 시대의 공기가 쉬어 가는 정거장이었다. 윤석열 정부 시절, 손님들이 내뱉던 "요즘 경기 어떠냐"는 물음 속에는 짙은 절망과 우울함이 배어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의 공포가 서울 도심을 뒤덮었을 때, 나는 핸들을 잡은 손을 떨며 이 나라의 미래를 비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의 서민들은 위대했다. 계엄의 어둠 속에서도 국회로 달려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그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함께 여의도로 달려갔던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탄핵이 부결되던 날 소주잔을 기울이며 쏟았던 울분은 이제 조금씩 희망의 싹으로 자라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현실은 차갑다. 물가는 여전히 높고, 서민들의 삶은 칼날 같은 겨울바람에 베인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바로 내 노동이 나를 부자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가난에 빠트리지도 않을 거라는 믿음, 즉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끝내 올 거라는 희망을.

설 명절에 나는 고향 어머니 품을 찾아 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는 길 위를 달릴 예정이다. 그 길 위에서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내 택시 뒷좌석에 앉았던 손님들의 얼굴을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취업난에 허덕이던 청년, 손자 보러 가는 길이라며 연신 즐거워 하시던 할머니, 아직은 어렵지만 그래도 어떤 기대감이 조금씩 솟는 것 같다는 자영업자까지. 그들 모두가 나와 같은 서민들이다.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고단하지만, 긴 터널도 끝은 있게 마련이다. 그 끝에 대한 희망마저 놓을 수는 없다.

스스로 약속했던 3년의 시간 중 이제 6개월이 남았지만, 그 후에도 나는 지금의 노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들의 뒷바라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택시 미터기 올라가는 숫자보다 더 정직한 세상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모처럼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명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서민들의 삶은 대개는 춥고 고달픈 겨울이었지만 우리는 그 겨울을 견뎌내며 봄을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비록 내 손은 거칠고 주머니는 가볍지만 내 노동으로 내 삶이 풍요로운 세상의 길 위에서 내일도 나는 다시 희망의 시동을 걸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꾸는 유일하고 위대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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