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9 12:04최종 업데이트 26.03.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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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wesleyphotography on Unsplash

요즘 필자에게는 '행정심판 때문에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연락들이 온다. 시골의 평범한 주민들에게서 오는 것들이다.

얼마 전에는 어느 지역에서 채석장 문제로 연락이 왔다. 군청이 어떤 업체의 토석채취 허가신청을 불허했는데, 업체가 행정심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친환경농업을 하는 청정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군청공무원이 '만약 행정심판에서 군청이 지면, 군청은 허가해 줄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설명을 했다고 한다. 군청으로서는 무조건 행정심판 결과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군청 공무원의 얘기가 사실인지 필자에게 물어왔다. 그리고 필자는 '그 얘기가 기본적으로는 맞다'라고 얘기해 줄 수밖에 없었다.

업체를 위한 제도가 되고 있는 '행정심판'

행정심판제도는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 침해된 국민의 권리·이익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행정소송보다는 걸리는 시간이 짧고, 인지대 등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행정심판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농촌지역에서 토석채취 사업이나 산업폐기물처리시설 등을 추진하는 업체들이 행정심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체가 인·허가신청을 했는데, 지방자치단체 등의 행정관청이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것이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이 된 것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2~3개월 남짓 걸리는 행정심판을 제기해서 승소하면, 그걸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력을 얻을 수 있다. 행정심판에서 패소한 행정관청은 그 결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결정)에 '기속력'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새로운 사유가 없다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업체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만큼 좋은 제도가 없다. 반면에 난개발·환경오염시설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 주민들이라도 행정심판 재결(결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을까? 그런데 대법원은 여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주민들은 행정심판 재결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17. 10. 31. 선고 2015두45045 판결). 필자는 대법원의 법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법원 판례가 바뀌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로펌까지 선임해 행정심판 제기하는 업체들

그래서 요즘 농촌지역에서 난개발 사업이나 환경오염시설을 추진하는 업체들은 마치 '공식'처럼 행정심판을 제기하고 있다. 소송대리인으로 서울의 대형로펌이나 전관출신들을 선임하는 경우도 흔하다.

업체들 입장에서는 행정심판에서만 승소하면, 행정관청의 불허가를 불과 몇 개월 만에 뒤집을 수 있으니 이만큼 좋은 제도가 없다.

게다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불허가한 것에 대해 제기하는 행정심판은 시·도행정심판위원회에서 맡는다. 가령 경북의 어느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불허가 한 폐기물처리시설에 관한 행정심판은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도행정심판위원회의 구성은 객관적·전문적·독립적으로 되어 있을까?

대체로 시·도행정심판위원회의 위원장은 도지사나 행정부지사, 기획조정실장이 맡고 있다. 법률전문가로 보기도 어렵고, 독립성에도 의문이 있다. 그리고 행정심판위원들은 지역의 변호사, 교수, 퇴직공무원, 그 외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맡고 있다. 일종의 인력풀을 구성해놓고, 그때그때 위원들을 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어떤 사건에 대한 재결(결정)이 내려졌는데, 그 재결에 참여한 행정심판위원이 누구인지가 재결서(결정서)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원의 판결문에는 판사의 이름이 나오는데, 행정심판 재결서에는 재결에 참여한 행정심판위원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업체가 행정심판에서 승소하면, 사실상 대법원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대법관에 준하는 권력을 익명의 행정심판위원들이 휘두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경북 행정심판위원회

그리고 2024년 6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가 대법원 확정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어떤 폐기물업체가 경주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가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사실상 동일한 사건에 대해 이미 2019년 대법원에서 업체 측의 패소판결이 확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위를 보면 이렇다.

같은 위치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하려는 업체가 경주시의 불허가(부적합통보)처분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대법원에서는 업체가 패소했다. 이후 업체만 바꿔서 같은 위치에 산업폐기물매립장 인·허가 신청을 다시 했고, 경주시는 다시 불허가 처분을 했다. 그런데 업체가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2024년 6월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2019년 대법원 판결과 2024년 경북 행정심판위원회 재결서하승수

행정심판 제도의 허점이 법치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상황에까지 이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원이 분쟁에 대한 최종판결을 해야 하는데, 행정심판위원회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으니, 이보다 심각한 상황이 없다. 이런 상황이 되어도 경주시나 주민들은 행정소송조차 제기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행정심판 제도이다.

이런 제도의 허점을 고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행정심판 제도가 업체를 위한 제도가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행정관청의 불허가 처분을 뒤집는 시·도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결정)에 대해 주민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기회라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입법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상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 시·도 행정심판위원회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행정심판의 객관성·독립성을 강화할 대책을 시급하게 세워야 한다.

더불어 지금은 주민들이 행정심판이 제기된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행정심판이 제기된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질적 당사자인 주민들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업체가 행정심판에서 승소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행정관청이 주민들에 알려주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관계에 있는 제3자가 행정심판에 참가할 수 있는 '참가제도'를 활용할 기회라도 보장받을 수 있다.

오늘도 행정심판 때문에 환경권, 행복추구권을 위협받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행정심판이 업체를 위한 제도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행정심판법을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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