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학적 흉상 컬렉션브뤼셀 유럽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아프리카, 호주 등 식민지 인종의 흉상 컬렉션.
고정희
1904년 1월 12일, 헤레로족이 독일 식민 지배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다. 독일 정착민들의 토지 수탈, 가축 약탈, 강제 노역에 분노가 쌓인 게 이유였다. 하지만 독일군 증원 부대가 도착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고, 1904년 8월 바테르베르크 전투에서 헤레로 군대는 포위되어 궤멸했다.
독일군 사령관 로타르 폰 트로타는 같은 해 10월 '말살 명령'을 내렸다. 모든 헤레로 남성을 처형하고, 여성과 아이들은 오마헤케 사막으로 몰아붙이라는 명령이었다. 퇴로를 차단하여 여성과 아이들을 굶겨 죽이고 사막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이 최초의 강제수용소의 담당관은 강제 노동, 의학 실험, 기아 등의 사망 원인을 꼼꼼히 기록했다. 헤레로 민족의 80퍼센트가 사망했다. 뒤이어 나마 민족도 봉기했고 같은 운명을 맞았다. 나마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은 헤레로-나마족 집단학살의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117년이 걸렸다. 2021년 독일 정부는 공식 인정하고, 30년에 걸쳐 11억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합의에는 독특한 단어 선택이 있었다. '배상'이 아니라 '화해'의 이름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논리는 간단했다. "1904년 당시에는 집단학살을 금지하는 국제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1948년 제네바 협약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배상의 법적 근거가 없다." 좀 당혹스럽지만 매우 독일적 논리다. 법이 없었으니 범법이 아니고 그러므로 법적 배상의 의무가 없다는 발상이다. 용어의 정확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보상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화해금은 적선의 냄새가 난다.
독일의 탈식민화 담론이 학계를 벗어나 일반 대중의 의식세계로 들어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0년대 들어 훔볼트포럼 건립 논쟁이 불을 당겼다. 파괴된 프로이센 왕궁을 재건하면서 아프리카·아시아·남태평양 수집품 수십만 점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변신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탈식민화 단체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 수집품의 상당수가 식민지 시대에 약탈되거나 강제로 '구입'된 것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논쟁은 10년 이상 이어졌고, 훔볼트포럼은 2021년 논란 속에 문을 열었다.
결정적 전환점은 2020년이었다. 미국에서 벌어진 비극,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블랙 라이브스 매터(BLM) 운동이 독일도 강타했다. 탈식민화라는 단어가 갑자기 독일 신문 문화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탈식민론'은 라디오 토론과 SNS 논쟁의 중심 주제가 되었고, 베를린시 상원은 탈식민을 위한 기억의 장소 프로젝트에 공식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일의 기억 문화가 홀로코스트 청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온 탓이 크다. 식민지 역사는 그 거대한 나치 범죄사에 가려 수십 년 동안 '이류 역사'로 취급받았다.
그리고 독일은 1차대전 패전으로 1919년에 이미 모든 식민지를 잃었기 때문에,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본국에 정착해 그 역사를 가시화하는 과정도 없었다. 기억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억을 강제할 사람들이 없었다.
부메랑 효과
▲베를린회담 의정서브뤼셀 유럽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베를린 회담 의정서. 강대국들의 인장이 아직도 선명하다
고정희
그런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미 1951년에 이 역사적 사건들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유럽이 아프리카에서 먼저 실험하고 연습했던 것- 인종 분류, 강제 수용소, 집단 말살- 이 유럽 대륙 안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고 썼다. 식민지에서 "특정 인간 집단은 인류의 범주에 넣지 않아도 된다"라는 관념이 처음 실천되었고, 그 관념이 20세기 유럽 전체주의의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이 연결 고리를 독일 내부 역사에서 추적했다. 1차대전 이후 식민지를 모두 빼앗긴 독일은 실패한 식민 야망을 동유럽에서 실현하겠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슬라브 민족과 유대인 말살 계획은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족에게 행했던 것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하프너는 "독일인들이 계몽의 전통, 법치의 유산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스스로를 배반했다"라고 지적했다.
겹겹이 쌓인 과거의 범죄와 싸우는 독일인들을 생각하면 기가 찬다. 지금의 독일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에게 혹시 민족 말살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표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과거 청산에 전력을 다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세찬 도리질로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감당하기 벅찬 과거의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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