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본관(자료사진).
연합뉴스
나의 공직 퇴임은 그야말로 벼락같이 왔다. 그 시작은 2021년 7월 1일이었다. 민정수석실 재직 중 어떤 날이 안 그랬을까마는, 이 날도 아침부터 엄청 분주했다. 이 날은 자치경찰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첫날이었다.
2021년 1월 1일 자로 국정원법, 공수처법 등 권력기관 개혁 입법이 동시에 시행되었다. 그런데 자치경찰제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 구성이 선행되어야 했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자치경찰의 사령탑이었다. 법 시행 후 6개월의 시간을 두어 시도자치경찰위원회 구성 등 자치경찰제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7월 1일이 도래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자치경찰제 시행 메시지, 시도자치경찰위원회 출범을 포함한 전국적 상황 점검 등으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자치경찰제가 부디 잘 뿌리 내려 국민의 일상이 더욱 안전하면서도 권력기관 개혁의 중요한 진전으로 자리매김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전 업무들을 처리하였다. 그리고 점심, 여느 때처럼 식사하고 잠깐 산책한 후 자리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법무부와 소통을 담당하고 있던 법무비서관실 서상범 비서관이 황급히 내 방을 찾았다.
"김학의 출국금지 건으로 검찰이 이광철 비서관을 기소했다고 합니다."
나는 기소 소식을 들은 즉시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김진국 민정수석에게 제출했다. 검찰의 이 기소는 매우 부당한 것이었다. 실제 이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은 당시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는 적법했다고 하면서 나를 포함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였다.
하지만 부당함과 별개로 나는 대통령의 현직 비서관이었다. 대통령 비서관, 그것도 검찰을 소관하는 민정수석실의 선임 비서관이 현직을 유지한 채 법원에 피고인으로 나가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권력 분립이라는 헌법의 관점에서 법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행정부에 속해 있는 검찰이 대통령 비서관을 기소했다면, 그 연유와 의도가 무엇이든 사직해서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벼락같이 온 퇴임
나의 사직서를 받아 든 김진국 민정수석은 바로 민정수석실 비서관 회의를 소집했다. 비서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모두 검찰의 기소는 이광철에 대한 표적 기소이고 그래서 부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모두 나의 사의를 만류하였다.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사의를 철회하지 않았다.
김진국 민정수석이 나의 사의를 보고하려고 대통령 집무실로 갔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김진국 수석이 나를 불렀다. 대통령이 한참 동안 말없이 나의 사직서를 응시하다가 "이 비서관 뜻대로 하자"라고 했다는 말씀을 전했다. 대신 후임자도 인선해야 하고, 업무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근무하라는 말씀을 했다고 했다. 나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나의 사직서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본 그 뜻을 헤아려 봤다. 마음이 아렸다. 재임 중 검찰과 관련한 무수한 일들로 대통령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대변인실에서 사직의 변을 어찌할지 문의가 왔다. 담담한 마음으로 사직에 대한 나의 입장을 썼다. 세 문장이었다.
- 이번 기소는 법률적 판단에서든, 상식적 판단에서든 매우 부당한 결정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함.
- 그러나 사정 업무를 수행하는 민정수석실의 비서관으로서 직무 공정성에 대한 우려 및 국정운영의 부담을 깊이 숙고하여 사의를 표명함.
- 공직자로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함.

▲2021년 7월 2일 청와대 민정비서관 사직서를 내고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오찬 후 찍은 사진
이광철
다음날인 7월 2일 대통령께서 오찬을 내주셨다. 후임자로 이기헌 시민사회 비서관이 내정되었다. 2017년부터 민정비서관실에서 같이 일한 듬직한 형님이었다. 적임자였다.
후임자인 이기헌 비서관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모두 마치고 7월 30일 오전 대통령께 하직 인사를 드렸다. 지난 4년 3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없이 마음이 착잡했다. 검찰 등 권력기관개혁 업무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연일 격무에도 흔들림없이 국정 운영에 집중하는 대통령에게 나의 사직은 불충이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대통령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청와대를 나와 시민으로 돌아왔다. 2017년 5월 22일로부터 1530일 만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상반된 평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각의 비난들이 보인다. 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상반되는 평가의 근저에는 공화(共和)의 가치에 관한 인식 차가 담겨 있다고 본다.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은 공화의 마음가짐을 늘 견결히 유지하였다. 대통령의 직위가 자기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 그래서 자신의 대통령 권력의 행사에 사적 욕망을 철저히 차단하여야 한다는 자세를 일관하였다.
2022년 대선 직후 있었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 여부에 관한 일련의 과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견지한 공화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다. 야당, 그것도 윤석열로 정권 교체가 현실이되어가는 상황에서 당시 여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김경수의 사면을 진언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사면을 선택하지 않았다. 공화주의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김경수에 대한 마음이 몹시 미안하고 아팠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화의 가치를 짓밟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권력을 줘도 못 쓰느냐고 질타하면서 공화의 가치만으로 권력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개혁·진보를 염원하는 분들이 후자의 질타를 쏟아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대통령의 인품처럼 반듯한 권력, 절제하는 권력을 바라고 기대한 사람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공화의 가치에 대한 모순된 인식들이 어쩌면 문재인 정부 5년간 벌어진 온갖 격동은 물론, 지금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냉혹한 평가의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정치는 신념 윤리의 영역이 아닌, 책임 윤리의 영역이라는 막스 베버의 지적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막스 베버는 책임 윤리와 공화의 가치가 양립하는 방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였을까?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부인 김건희 씨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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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윤리의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은 윤석열의 난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이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발탁한 윤석열이 검찰권을 제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농단할 때 정무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나아가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한 것만도 국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혼돈에 빠뜨렸다가 급기야는 내란 망동에까지 이르렀다. 책임 윤리의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감당하고 성찰해야 할 뼈아픈 대목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늘 성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의 냉정한 평가에도 문재인 정부가 주어진 역사적 소임을 다하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특히 코로나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나라의 격과 기틀을 한 단계 올렸다. 만일 코로나 사태가 국민의힘 계열 정부 시절 발생했다면, 아마도 경찰과 나아가 군까지 동원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을 것이다. 미증유의 난국에서 국가주의와 질서주의적 사고를 갖는 정치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방역보다 결과로 관철되는 방역 질서를 추구한다. 초기 코로나 사태의 진원지였던 중국 우한에 대하여 중국 정부가 도시 전체를 봉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 코로나 국면 동안 문재인 정부는 단 한 번도 국민을 방역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 바가 없었다. 코로나 국면에서도 국회의원 총선거를 연기하거나 확진자에 대한 투표권을 전혀 제한하지 않고 총선을 안전하게 치러낸 것은 단적인 예이다. 나아가 코로나 국면에서 보여준 우리의 역량이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 성취가 대한민국을 선도 국가, 문화 국가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소중한 한표 행사하는 코로나19 자가격리자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5일 오후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자가격리 중인 유권자가 세종시 고운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고운동5투표소에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20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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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개인적으로 민정수석실 공직은 내게 대통령을 보필하면서 국정 수행을 경험하게 한 영광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고통과 상처를 안겨 준 시간이기도 했다. 그 때의 고통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지만, 선거 때마다 출마 안 하느냐는 질문은 민정수석실 공직의 후과다. 나의 소망은 그저 평범한 시민이자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직업 정치를 감당하기에는 내 깜냥이 결코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언제 출마할 것이냐라는 질문은 늘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한단지보(邯鄲之步: 본분을 잊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다가 본래 가졌던 것을 합하여 두 가지 다 잃는다는 뜻)의 교훈을 늘 경계하고자 한다. 이제 그런 질문들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
오늘 30회로 그간의 연재를 모두 마친다. 그동안 보잘 것없는 이 글을 읽어주시고, 잘 보았다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하여 혼신을 다해 일한 민정수석실 선배님들 그리고 각 부처 파견관들을 포함한 동료분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이들 공직자들의 애국심과 놀라우리만치 유능한 모습을 곁에서 매일 체감하면서 동료로 일한 것이 내게는 평생에 걸친 영광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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