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1 11:27최종 업데이트 26.05.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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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식당. 자료사진.연합=OGQ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표현 중에 '외국 같다'라는 말이 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 유럽풍의 거리, 노천카페, 오래된 벽돌 건물, 넓은 초원 위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집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이다. 왜 이런 표현이 생겼을까? 19~20세기 급격한 근대화를 겪으면서 '서구 도시 풍경 = 세련된 근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 할리우드 영화와 TV 광고 속에 등장하는 유럽 도시의 낭만적인 풍경, 뉴욕 도심의 세련된 카페, 파리의 노천카페 등은 꿈에서나 가 볼 만한 동경의 공간이었다. 고밀도 아파트, 어수선한 상가 간판, 깔끔하지 않은 거리 풍경에 익숙한 우리가 어쩌다 만나는 멋진 골목이나 건물, 노천카페 등에 '외국 같다'라는 수식어를 자연스럽게 붙였다. 건물을 짓거나 카페를 차리는 사람 중에는 외국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로망도 생겨났다.

이렇듯 우리 말 표현 '외국 같다'에서 말하는 외국은 당연히 유럽이나 미국이다. 아시아나 중남미, 아프리카는 외국임에도 '외국'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을 쓰는 나라가 또 있을까?

가까운 일본에도 '해외 같다'(海外みたい)거나 '유럽 같다'(ヨーロッパみたい)라는 표현이 있다. 유럽을 닮은 도시인 홋카이도, 고베, 가루이자와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이 특이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근대 초기에 '서양 = 세련됨'이라는 인식이 만들어낸 표현이다. 중국에서도 '외국 같다'(像国外一样)거나 '유럽 같다'(很欧洲)라는 표현을 쓴다. 역시 상하이 조계지나 유럽풍 카페 거리 등에서 자주 듣게 된다.

특이한 나라는 태국이다. 방콕의 세련된 카페나 외국인이 많은 휴양지 등에서 현지인들은 '외국 같다'(เหมือนเมืองนอก)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멤멩 나~ㅋ'로 들린다. 이 표현에서 태국인들이 의미하는 '외국'에는 유럽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도 포함된다는 것이 특이하다. 한류, 특히 한국의 세련된 카페 문화가 준 영향이 적지 않다.

태국뿐이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서울 같다', '한국 카페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감성 카페, 미니멀 인테리어, 디저트 카페 등 우리나라 카페가 지닌 특징을 동경하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문화의 역전 현상을 이끌고 있는 것이 한국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파리 여행의 경험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외국 같다'라는 표현에 등장하는 외국 중 대표적인 장소의 하나는 프랑스 파리다. 그렇다면 요즘의 파리는 정말 우리가 동경할 만한 풍경의 도시일까? 3년 전 겨울 파리 여행에서의 경험은 이런 환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파리에서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주차장이었다. 개선문 가까이 있는 꽤 비싼 호텔이었는데도 주차장이 불편했다. 투숙객에게도 유료인 게 문제는 아니었다. 주차장 차단기 인터폰으로 투숙객이라고 영어로 반복해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것은 낯선 프랑스어였고 차단기는 열리지 않았다. 간단한 프랑스어로 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매우 낯선 프랑스어 대답만 돌아왔다. 차를 세워놓고 1층 리셉션에 가서 예약 확인 메일을 보여준 다음에야 주차장이 열렸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나니 밤 아홉 시가 넘었다. 개선문 주변 번화가였지만 문을 연 음식점은 없었다. 패스트푸드점 샌드위치를 사러 중학생 아들과 호텔을 나섰다. 손에는 우산을 하나씩 들었다. 비가 와서가 아니라 호신용이었다. 개선문 근처 샹젤리제 거리는 노숙자 천지였다. 특히 인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통풍구 주위는 담요를 두르고 누워 있는 사람이 많았다. 따듯한 바람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피해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차도로 내려서 걷는 것이 나았다.

이튿날 파리 관광객 필수 코스인 센강 유람선 바토 무슈를 탔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주한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올 때마다 봤던 멋진 노트르담이 아니라 불에 타고 그을린 노트르담의 앙상한 모습이었다. 오래전 불에 타던 남대문과 낙산사 모습이 떠올랐다. 저들이나 우리나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에 큰 차이는 없는 듯했다.

바토 무슈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좋아진 흔적이 없다. 화장실 출입구는 고장 난 상태였고 내부는 악취로 가득했다. 바토 무슈에서 경험한 가장 신기한 일은 유람선 안내 방송이었다. 7개 언어로 방송하는데 한국어가 포함되어 있었고, 일본어는 들리지 않았다. 40년 전 이 유람선을 처음 탔을 때 일본어 안내 방송을 듣고 부러웠던 때가 떠올랐다.

파리에 올 때마다 찾는 곳 중의 하나는 파리 전경을 볼 수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이다. 그림 그리는 무명 화가들로 북적이는 곳이고, 주변은 온통 카페와 기념품 가게 천지다. 매우 시끄럽다.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니, 친절하게 길거리가 보이는 야외 의자로 안내했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커피를 마시고 언덕을 내려왔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유명한 클럽 물랭루주를 만난다. 그리고 물랭루주 조금 못 미치는 곳에 푸른 대문의 집이 하나 있다. 반고흐가 동생 테오와 살던 집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주소와 사진을 보고 찾아왔지만, 건물에 있던 표지판은 사라지고 없었다. 표지판이 있던 자리에 떼어낸 흔적만 남았다. 방문객들의 소란함에 지친 집주인이 표지판을 떼어낸 것으로 보였다.

스타벅스가 설 자리를 잃는 날

19일 서울 시내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외국인 관광객 세계 1위 도시 파리를 보면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외국 같다'의 그 외국은 사라진 지 오래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는 외국인들이 '한국 같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 같은 문화나 경치를 동경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서구문화와 동양 문화 사이의 대역전을 주도하고 있다.

문화 대전환의 징후가 농후한 이 시대에도 여전한 것은 외국 유명 상표나 프랜차이즈에 대한 맹목적 신뢰다. 1999년 7월에 국내 1호점이 문을 연 미국을 대표하는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는 현재 우리나라에 2000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종주국 미국 다음으로 많다. 일본을 넘어섰다. 서울은 뉴욕을 추월하여 OECD 국가 중에서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다. 도심의 스타벅스에는 늘 빈 자리 찾기가 어렵다.

스타벅스 커피 맛은 결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커피 전문가 중에 스타벅스를 선호하는 사람은 드물다. 스타벅스의 고향 미국에서는 이미 로컬 카페나 스페셜티 카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에도 스타벅스보다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가 수없이 많다.

한국인들이 스타벅스를 선호해 온 심리적 바탕에는 뭔가 멋진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 세계와 소통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래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최근 '탱크데이', '책상에 탁!' 이벤트를 보면 스타벅스는 더 이상 멋진 사람을 상징하는 공간일 수 없다. 역사의식이 마비된 자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차려 놓은 야만의 공간일 뿐이다.

내가 방문하는 카페가 내 삶의 수준과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스타벅스를 방문할 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다가왔다. 스타벅스가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것이다.

지난 한 세대 동안 보여준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타벅스 선호는 멋진 풍경 앞에서 '외국 같다'를 외치던 심리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외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런 외국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반대로 세계인들이 '한국 같다'라는 표현을 쓰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탱크데이'를 외치는 스타벅스가 이 땅에서 설 자리를 잃는 날이 우리 민족이 문화적 자존감을 회복하는 날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기필코.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의 저자)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5).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싱긋.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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