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이면 베를린 도시생태계를 장악하는 애기똥풀.
고정희
5월 말, 독일 베를린에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길섶에, 가로수 아래, 공원 입구, 건물 벽에 기대어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애기똥풀이다. 산미나리처럼 미친 듯이 번져 생태학자들 속을 썩이지도 않고 퇴화하지도 않으며 늘 그만그만한 부피와 크기로 나타나는 베를린의 상수와 같은 풀이다. 흔하디흔한 길가 풀이지만 '도시 자연'이라 불리며 귀여움을 받는다.
"거리에 애기똥풀이 엄청 많이 폈는데 그거 캐다가 정원에 심으면 안 될까요?"
정원일을 도와주는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이 며칠 전 이렇게 물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안 된다고 답했다. 단호한 대답에 놀란 학생에게 왜 안 되는지 다음 주까지 답을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설명해 주는 것보다 스스로 깨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가 답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명민한 학생이지만 베를린에 온 지 5개월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애기똥풀뿐 아니라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에서 자라는 치커리나 우단담배풀, 포장석 사이를 빈틈없이 채우는 질경이와 민들레 등을 도시 비오톱이라 부르며 손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가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문일답을 이어가며 천천히 이해시킬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그게 어느새 내 숙제가 되어버렸다.
같은 날 들려온 '서울 어느 공원 안에 조성해 놓은 정원에서 사람들이 식물을 캐간다'는 소식과 겹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소식을 듣고 물론 노여웠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어느 동료의 탄식처럼 '아직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어서 그렇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정직하다. 유럽에서 흔한 핸드폰 도둑, 자전거 도둑도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한국의 공원이나 정원에서 식물이 사라지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트의 채소 한 단을 천연스럽게 그냥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원에 심어진 '채소'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캐가는 듯했다. 짐작하건대 그 행위를 절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절도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리고 마트의 채소와 정원에 심은 '채소'는 무엇이 다를까?
공원이나 정원에서 식물을 캐가는 행위와 길가의 애기똥풀을 캐다가 정원에 심자는 제안은 서로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듯하지만 사실 그 뿌리는 같다.
우리에겐 아직 산이나 들에서 나물과 쑥을 뜯던 시절의 기억이 유전자처럼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납득할 만한 다른 해석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원과 정원을 산과 들처럼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나 보다.
이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자연적 요소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공원과 정원은 분명 인위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공원의 식물은 스스로 자란 것이 아니라 재배원에서 구매하여 심은 것이다. 그런데 마트의 채소는 상품이지만, 공원의 식물은 상품이 아니라 채취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나물공원

▲취나물(Aster spp.)과 출신이 같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가꿔져 가을이면 이렇게 미모를 뽐낸다.
고정희
우리는 수렵채집사회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왔다. 정말 그럴까? 채집의 양상은 문화권마다 달랐을 것이다. 육식을 선호하는 유럽인들은 주로 약초나 허브를 취했고 먹는 것은 버섯 정도? 산과 들에서 나는 식물을 나물로 만들어 먹을 줄은 몰랐다.
우리가 맛나게 먹는 산나물, 들나물이 영국, 독일에서는 정원식물이다. 같은 식물인데 먹으면 나물이고 심으면 정원식물인 것이다. 유럽인들은 나물의 맛을 모르고 우리는 나물의 꽃을 모른다. 꽃이 피기 전의 어린 식물을 먹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사리와 취나물이다. 유럽에도 참취, 곰취, 미역취, 개미취 다 있다. 다만 이들은 모두 꽃을 보기 위해 심는 원예 식물이다.
고사리는 숲 생태계의 지킴이로서 엄격히 보호되고 있다. 이곳 동료들에게 우리는 고사리의 어린 순을 맛있게 먹는다고 얘기해 주면, 나를 외계인 바라보듯 한다. 그들은 고사리의 어린 순을 잘 모르고 우리는 다 자란 고사리를 못 보고 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위의 정원엔 나물의 꽃을 보여주고 싶어 의도적으로 한국 자생종 위주로 심었다.
농업이 자리잡힌 뒤에도 산과 들에서 나물을 직접 채집하여 먹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땅의 향기가 나물의 맛이 되어 우리 몸속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리라 짐작해 본다. 마트에서 사는 것과 흙에서 직접 캐는 것 사이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러니 정원의 '흙'에 심겨있는 나물을 보고 웬 떡인가 싶어 캐갔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도시에 살면서도 나물 유전자를 통해 아직 흙과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선진문화 운운하면서 억누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보존해야 할 귀중한 자산인지도 모른다. 공원을 아예 통째로 나물밭, 채마밭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하면 산과 들의 생태계를 보호할 명분도 생긴다. "나물은 공원에 가서 캐세요."
도시자연 낭만주의

▲베를린 도심의 라이프치히플라츠의 풀밭. 베를린 장벽의 근사한 배경을 이루어준다.
고정희
자연생태계를 지켜내야 하는 건 전 세계가 공유하는 원칙이 되었지만 도시의 포장석 틈이나 도로변에서 자라는 식물, 소위 '잡초'를 도시자연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는 나라는 유럽에서도 몇 군데 없다. 그중 독일, 특히 베를린의 도시자연에 대한 애착은 거의 시적인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도시자연 낭만주의라 해도 좋겠다.
지난 23일 주말, 베를린에선 문화카니발이라는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오는 30일 주말에는 '도시 자연의 날'이 개최된다. 지난 1일 노동절 행진으로 출발해 5월에 맞이하는 세 번째 도시 축제다. 느낌상 베를린은 5월 내내 축제만 하는 것 같다. 5월 중순이 되어야 비로소 얼음 여왕 소피아가 물러가니 그럴 만도 하다.
'도시자연의 날'의 다른 이름은 '도시자연의 긴 하루'다. 문자 그대로 낮이 길어져서 5월 말이면 무려 낮의 길이가 16시간 반이다. 긴 낮시간을 온전히 자연에서 보내자는 뜻이다. 베를린 자연보호재단이 매년 한 번, 생물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형 행사다. 150여 곳에서 400~500개 프로그램이 동시에 열리며 해설 탐방 형태로 진행된다.
각종 협회, 행정기관, 시민단체에서 나온 350명 넘는 전문가들과 함께, 베를린 시민들은 자기 집 문 앞에 어떤 식물이 자라고 어떤 동물이 살고 있는지 직접 듣게 될 뿐 아니라,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자연 공간도 만날 수 있다. 풀과 나무가 거칠게 우거진 안마당에서부터 자연보호구역에 이르기까지 장소도 다양하다.
2017년에 출발한 도시자연축제는 독일 다른 지역에서도 본보기가 되었다. 함부르크, 킬, 뮌헨 같은 도시에서도 이제 저마다 한 해에 한 번씩 도시자연에서 긴 하루를 보낸다.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물론 도시 숲과 공원녹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잘 가꾸어진 공원보다는 애기똥풀처럼 심은 적이 없는데도 스스로 나타나는 풀에 쏠리고 있다. 특히 기후 위기와 종 다양성 상실의 시대를 맞아 이런 '잡풀 생태계'가 더욱 중요해졌다. 풀 한 포기가 아쉬운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런 곳의 종 다양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도심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풀밭. 한때는 잘 다듬어진, 그러나 생태점수는 영점인 잔디밭이었다.
고정희
언제부터인가 베를린 녹지과에서는 도시녹지의 잔디를 깎지 않고 방치하기 시작했다. 곱게 깎은 잔디밭의 생태 점수는 영점에 가깝다고 한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더부룩해지면서 각종 야생화가 피고 벌도 날아든다.
그 벌이 만드는 '베를린 녹지 꿀'은 고가에 거래된다. 농약 성분이 없는 깨끗한 꿀이기 때문이다. 애기똥풀도 꿀벌이 제법 좋아한다는데 미모가 떨어져 정원식물로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눈과 간을 다스리는 약으로는 널리 쓰였다. 지금도 제약 소재로 폴란드에서 대량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베를린 도시생태계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고 있는데 굳이 정원에 옮겨 심을 이유가 없다. 정원이라는 서식처는 애기똥풀에게 낯선 곳이어서 적응해 낼지도 미지수지만 나물로 먹지도 못하니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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