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히는 소수를 피하기 위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지나쳐야 하는 택시 기사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김지영
택시 기사인 나는 거리에서 손 흔드는 사람을 여간해서는 내 택시에 태우지 않는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다. 앱을 잘 모르거나 손 들어 택시 타던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일부러 앱을 끄고 차를 세웠다. 그게 문제였다.
그들 중 일부는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나에게 타박을 놓았다. 훈계였고, 호통이었다. 억울했지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합리적인 대응이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이 가라는대로 갔을 뿐이라는 말은 효과적인 답이 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모름지기 택시 기사란 서울 구석구석 어떤 골목길도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답답함을 내가 당장 해소해 줄 방법은 없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반사적으로 거리 손님을 피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건 택시를 시작하고 3년 동안 카드 결제가 안 되거나 대놓고 '배째'라면서 택시비를 안 낸 사람이 두 명이었는데 그 둘 다 손을 들어 택시를 탄 손님들이었다.
큰돈이 아닌데도 소심한 나는 그들의 옷차림이나 말의 억양과 인상착의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건 어쩌면 돈의 크기가 아니라 내 노동을 갈취당한 데 대한 억울함 때문이다. 하지만 택시를 타서는 얌전하게 앉아 있다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하차하는 더 많은 사람이 거리에 손을 들고 서 있다는 걸 안다.
나를 간혹 괴롭히는 소수의 사람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의도치 않게 더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적인 계엄극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굳이 국회 밖 당사로 국회의원들을 유인하며 계엄 해제를 방해한 의혹을 받는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내란 특검에 의해 기소됐다.
국민의힘은 1차 탄핵안 투표 시 아예 당론으로 본회의 참석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탄핵을 좌절시키며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는 불법 계엄을 저지른 윤석열의 대통령 지위를 계속 유지시켜야 한다는 노골적인 반헌법적 주장과 다름없었다. 그들에게 헌법 수호나 국민 주권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최상의 가치는 정치권력이었다.
12월 3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윤석열의 체포·수색영장을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했다. 2025년 1월 3일 공수처는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경호처와 군 인력까지 동원한 강력한 물리력에 막혀 6시간 만에 철수했다. 백주대낮에 사법부의 체포영장이 현직 대통령이 지휘한 무력에 의해 좌절되는 기막힌 상황도 전 국민이 지켜봤다.
2025년 1월 15일 재발부된 체포영장이 집행되기까지 꼬박 2주였다. 그 2주가 내 인생에서 가장 숨 막혔던 시간이었다. 내란을 일으킨 수괴의 체포 소식을 매일 밤잠을 설쳐가며 기다려야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경호처의 무력으로 법 집행을 가로막는 상황을.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2차 체포영장이 집행되던 새벽 관저 입구에 인간 띠를 만들어 섰던 3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발부된 체포영장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계엄과 윤석열을 옹호했다.
글 서두에 쓴 연구를 떠올려보자. 집단 내 소수의, 주변 모든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핵심 갈등 유발자. 그는 대한민국 전체 분위기와 생산성을 실제로 파괴했고 국민의 일상을 혼란에 빠트리고 감정노동의 절대치를 우울과 불안이라는 단어로 가득 채운 장본인이었다. 단 한 명의 학부모가 45명 학교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8개월.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불법 계엄을 저지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수로는 정확하게 1000일, 2년 8개월 하고 24일이었다.
그에게 부화뇌동하며 합법을 불법이라 우겼던 정치인들 역시 사회적 공감 능력이 결여된 집단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소수의 극단적 행위가 다수의 일상을 먹어 치운다는 것, 1%가 99%의 삶을 흔든다는 것. 택시 안에서 내가 따끔하게 배웠던 교훈을 대한민국 전체가 혹독하게 배웠다.
역사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예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개시를 하루 앞둔 28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컨벤션홀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사전투표소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6.3지방선거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말은 격렬해지고 숨어 있던 비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지역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계엄과 윤석열을 기준으로 갈렸던 전선이 희미해졌다. 어제는 일등이었던 후보가 오늘은 뒤로 밀리고 깃발만 들면 당선이던 지역의 정당 공천자가 무소속 후보에도 밀린다.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혼탁함이 점점 짙어진다.
이상한 현상도 발견된다.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계엄과 내란 정권을 심판하겠다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간다. 대한민국 선거판의 오랜 망령인 지역주의로의 회귀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그 쏠림이 심해진다. 계엄과 내란을 옹호했던 정치인들이 그 쏠림의 물결 위로 올라탔다. 아니, 정확하게는 정치인들이 그걸 만들어낸다.
선거판에서 쉽게 보아오던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최소한 이것 하나 정도는 지켜야 한다. 계엄과 내란을 옹호했던 정치인을 가려내는 것, 내란 수괴를 비호하고 그가 저지른 불법을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했던 정치인들을 걸러내는 것.
이것마저 우리가 지켜내지 못하면 또 다른 계엄과 내란의 여지를 우리 스스로가 남기는 것이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반드시 되살아나서 현재를 고통에 빠트린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계엄과 내란은 오랜 과거도 아니다. 아직 재판도 다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식의 반영이라고 했다. 불과 얼마 전 생방송으로 목격했던 내란의 불법성.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던 체포영장 집행의 정당성. 아직 채 가시지 않은, 99% 선량한 국민 가슴에 찍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이번 선거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어쩌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민들이 미래의 역사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나는 어쩌면 곧 다시 거리에 차를 세울 것이다. 그곳이 '빈 차' 등을 켜고 달리다 햇빛 쏟아지는 거리에서 더위에 지친 모습으로 손을 흔드는 노인 앞일 수 있다. 간혹 마주칠 나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선량한 시민들을 내 택시 안에서 확인하는 즐거움도 빠뜨릴 수 없는 일상의 소중함이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극단적 정치 행위가 선량한 다수의 일상을 파괴하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선거의 오랜 망령인 지역주의 표심이 우리 공동체에 남긴 상흔을 우리는 공통의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지역주의의 발호는 결국 역사의 퇴행을 불러온다. 며칠 남지 않았다.
충격적인 계엄 선포와 극적인 탄핵, 그리고 윤석열을 다시 감옥에 보내기까지의 지난했던 과정이 아직 우리 기억 속에 또렷하다. 6월 3일은 그 기억을 역사적 사실로 확인하는 날이다. 그건 불과 얼마 전 우리 모두가 뜬눈으로 밤새우며 어렵게 지켜낸 민주주의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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