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5월 31일 제주시 도두동 무지개해안도로에서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
선거가 코 앞이다. 여느 때보다도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요구와 일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개선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하는 시기란 얘기다. 선거 공약(公約)이 실현되지 않아 공약(空約)에 그친다는 비판도 있으나, 어찌 됐든 공약은 시민의 표심을 얻고자 하는 정치인이 지역 현안을 고민하여 내놓은 최선의 약속이다. 현실의 문제를 온전히 담아낼 실력이 부족하거나 구상이 허황될지언정, 각 지역의 선거 공약이 대변하는 지역의 고통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건강과 관련하여 단골로 등장하는 공약 중 하나는 의료기관 유치다. 지리적으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기초지자체에서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도 있지만, 소위 서울 '빅5 병원' 분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한국 평균보다 의료 자원이 한참 많은 부산, 대구 등 광역지자체장 선거에 나선 이들조차 빅5병원 분원 유치를 주장한다.
하지만 의료는 제조업도 가맹사업도 아닌지라 분원을 짓는다고 본원과 같은 의료가 제공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대개 빅5 분원 같은 공약을 내걸었던 예비후보들은 경선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지금까지 지자체장 후보들이 약속한 의료기관을 설립한 사례는 무척 드물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병원 유치' 공약의 허상과 실상
첫째, 의료는 삶의 기반을 이루는 필수 서비스인 동시에, 지역의 입장에서 상당한 규모의 고용을 창출하는 지역 기반 '산업'이다. 병원 유치가 대개 '표가 된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예컨대 김해 공공의료원 설립을 공약으로 제시한 더불어민주당 정영두 김해시장 후보는 "김해를 동부 경남 공공의료의 거점으로 만들고, 의료와 교육과 산업이 어우러지는 혁신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병원은 어느 지역에서든 꽤 안정적인 고용원이자 인근 상권을 먹여 살리고 연계 사업체들의 유입을 기대하게 만드는 집적 산업으로 성격을 가진다. 건물주들이 메디컬 빌딩을 선호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메디컬 빌딩이 잘나간다 한들, 신축은커녕 기존 건물 공실이 골칫거리인 지역에서는 형편이 다르다. 산업으로서 의료의 시장 경쟁력은 입지별로 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김해시장의 의료 공약이 복잡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해시장에 출마한 정영두 후보는 "단순히 병원 하나를 짓는 것이 아니라 모자보건, 소아 야간진료, 취약계층 진료 등 동부 경남의 부족한 의료 기능을 보강"하고, "양산부산대병원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영두 "김해 공공의료원 정상화… 동부경남 의료거점 만들겠다).
의료가 독자적 산업적 가능성을 넘어 더 넓은 의료 체계의 구성요소로 기능하며, 다른 가치를 담고 있단 의미다. 오랜 기간 김해에서 공공의료원 설립과 대학병원 유치 논의가 지속되었음에도 뚜렷한 진척이 없었던 고민이 대안에 담겨있지만, 그만큼 복잡해지기도 한다.

▲2023년 말 기준 시군구별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 지도. 전국 시군구 중 의사가 가장 적은 지역은 영양군으로 6명, 가장 많은 지역은 강남구로 6125명이다. 강남구의 인구는 55만 3260명, 영양군의 인구는 1만 5991명이므로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는 강남구 1108명, 영양군 37.5명이다.
헬스맵
둘째, 시민들의 오랜 요구였던 공공병원 강화에 대한 의제 외에도, 자신이 사는 지역의 병원보다 수도권의 빅5 병원을 신뢰하는 주민들의 선호가 의제화되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원정 진료를 떠나는 환자의 규모,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심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수도권 빅5 병원에서 의료의 질이 실제로 지역 대학병원들보다 더 높을까?
사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명확치 않지만,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은 수도권과 지역 병원 의료의 질 격차를 기정사실화하는 조바심을 보이곤 한다. 빅5 병원 분원 유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부산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한 후보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이재성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서울대병원의 의료 신뢰도"가 부산 지역의 의료 역량과 결합하면 "아시아 최고 수준의 의료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 자원은 있으되 신뢰를 받지 못하니, 신뢰를 담보하는 최고의 브랜드를 유치하자는 발상이다. 부산의 대학병원들이 반발하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서울대병원 유치는 기존 대학병원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의료 수요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참고:
부산시장 출마 이재성, 디즈니랜드, e스포츠박물관, 서울대병원 유치 공약).
서울대병원이라면 부산에서도 압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리라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까? 무릇 한국의 병원이란 상호 학습과 협력의 전통보다는 치열한 시장 경쟁을 통해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경쟁 관계다. 게다가 의료는 통상의 제조업이나 프렌차이즈 업종과 달리, 브랜드 네임보다 거기서 일하는 의료인력의 특성, 문화를 더 많이 따라간다. 소위 빅5 분원의 간판을 단다고 해서 해당 병원의 의료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미 의료자원이 전국 평균 이상인 광역시의 빅5 병원 유치 공약이 그저 황당해지는 이유다.
셋째, 의료를 둘러싼 지자체의 사정은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기초지자체와 광역지자체, 대도시 광역권과 중소 도시, 군에서 운영 가능한 의료기관의 모습도, 고용 가능한 의료인력의 규모도 차이가 크다. 이를 인정한다면, 지자체마다 의료에 대한 대책 역시 달라져야 한다. 예컨대 같은 군이어도 인구 10만에 육박하는 도청 소재지 군이나 KTX가 흐르는 군, 인구 3만 미만의 도로교통뿐인 군에서 돌봄과 의료를 연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은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건강 지킬 후보 고르는 세 가지 기준

▲6·3 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지방선거 기준 최고치 23.51%의 투표율로 마무리된 다음 날인 5월 31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종합상황실에 사전투표 현황화면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부터 일 년 넘게 지속된 의료대란, 그리고 국가적 의제가 된 지역 필수 의료 공백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인지 요번 지방선거 공약에는 비교적 지역의 상황을 반영하는 보건의료 공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보건소를 지방의료원으로 증축하거나, 의료원 운영도 어려운 지역에서는 공공종합의원, 찾아가는 의료 버스나 병원 동행 서비스 등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인근 지역 병원들과 협력하며 의료 주변의 돌봄까지 책임지겠다는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그만큼 각 지역에서 의료가 절박하고 고민스러운 문제가 되었단 뜻이다.
여덟 번째 지방선거, 30년을 넘어서는 한국의 지방자치는 의료를 둘러싼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까? 건강과 보건의료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에게 세 가지 공약 판단 기준을 제안한다.
1. 공약이 있는가?
내가 사는 지자체장 선거에 나온 후보가 보건의료 분야를 공약에 포함했는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건강과 의료 정책을 고민해 본 흔적이 있는가? 아예 찾아볼 수 없다면, 민생에 대한 성의 부족이다. 의사가 많든 적든, 전국 어디에서든 의료를 둘러싼 국민들의 고민은 중요하다.
2. 공약은 현실적인가?
후보의 공약은 내가 사는 지자체의 현실에 부합하는 보건의료 공약인가? 빅5 병원 분원이나 대학병원 유치 공약이 있다면, 해당 병원의 의향은 확인되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희망 고문일 따름이다. 지자체장이 바라고 원한다고 하더라도 병원은커녕 필요한 전문의조차 구하지 못한 숱한 사례를 기억하자.
3. 공약은 공공성·형평성을 추구하는가?
후보가 제시한 보건의료 공약은 공공성, 형평성을 추구하는가? 건강검진비용 지원사업, 노인 영양수액 바우처 사업처럼 주민들의 건강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효과가 없는 것이 많다. 하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의료는 많은 경우 환자에게 독이 되며, 심지어 비싸다. 공공 자원을 더 보편적이고 평등한 의료에 지원하는 정책에 가점을 주자.
이번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23.51%로 지방선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본 투표에 나서야 할 사람이 넷 중 셋을 넘는다. 소중한 나의 한 표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려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지, 냉소하지 않고 촘촘하게 따져보고 결정하는 현명한 시민의 자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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